b가 아프다. 어제부터 오한이 든다고 하더니 결국 앓아누웠다. 그럼에도 출근은 해야 했다. 병원에 들렀다가라는 나의 성화에 가까스로 직접 회사에 가야만 연차든 조퇴든 할 수 있다는 대답을 들었다.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하면서 내복 위에 스웨이드 셔츠와 청바지를 껴입고 집을 나서는 모습이 흡사 좀비 같았다. 조수석에 앉아 차가 덜컹거릴 때마다 맥없이 흐물거리는 b를 곁눈질로 보았다. 두 눈을 꼭 감은 창백한 얼굴이 금방이라도 무너질까 봐 무서웠다.
결국 연가를 낸 b와 함께 병원에 들렀다. 몸살이나 독감의 증상은 전혀 없으나 온몸이 두들긴 것처럼 아프대서 의사 선생님은 이름하여 칵테일 수액이라는 꽤나 호사스러운 처방을 내렸다. b가 인생 첫 수액의 맛을 보는 동안 나는 짧지 않은 시간을 대기실에서 보냈다. 직장이라는 소속이 얼마나 안전하고 치졸한지에 대해 생각하면서. 몇 달 전처럼 차로 한 시간 거리의 직장에 다니고 있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아픈 동거인을 병원과 집에 데려다줄 수 없었을 테니까. b는 다 큰 성인이니 무엇이든 혼자 할 수 있지만, 나보다도 같이 사는 사람의 상태가 더 신경 쓰이는 게 가족이란 이름의 힘이었다.
아픈 건 역시 싫어. 견고한 근육들이 물렁해지는 것도 싫다. 어지럽고 울렁거리고 피곤한 상태를 최대한 피하고 싶다. 만약 컨디션이 좋지 않거나 감기라도 걸린 날에는 나 자신에게 화가 난다. 왜 그랬어. 어째서 바이러스에 감염된 거야. 어째서 더 조심하지 않았던 거야. 안그래도 서러운 나를 보살펴주기보다는 다그치기 바빠서 아픈 기간이 길면 길어질수록 피폐해진다. 물론 그만큼 병원도 자주 간다. 당장이라도 이 질병을 깨끗이 나아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에 쫓기듯이 의사 선생님을 찾는다. 엄마 손을 잡고 동네 이비인후과나 안과, 치과를 학교 가듯이 가던 생활이 몸에 배어있어서 어떤 상황이라도 병원에 가야 마음이 편해진다.
문제는 다른 사람에게도 이 강박을 똑같이 적용한다는 것이었다. 누구의 책임도 아니라는 걸 머리로는 분명히 알고 있으면서도, 막상 누군가 아프다고 말할 때마다 늘 당사자에게 모든 책임을 돌리고 말았다. 이러한 사실을 인지하게 된 것은 b와 함께 살면서부터다. 콜록대며 쓰고 벗었던 마스크들을 버리고 빨면서, 약 봉투 속 알약을 수없이 삼키면서, 물을 머금어 불어난 쌀알을 나무 주걱으로 천천히 휘저으면서. 아마 나는 타인의 아픔을 마주할 때마다 죽음을 생각하는 것 같다. 기침 소리 하나에도, 축 처진 어깨선에도, 언젠가 반드시 올 이별의 장면이 덧씌워졌다. 그 장면이 너무 빠르고 잔인해서 나는 슬퍼할 틈도 없이 화를 냈다. 마치 따져 묻기라도 하면 죽음이 한 발짝 물러설 것처럼. 그냥 네가 아파서 슬프다고 말하면 될 일이었는데.
집에 도착해 보일러를 올렸다. 엉망으로 포개어져 있던 이불을 끌어다 b에게 덮어주고, 팔팔 끓인 보리차와 약을 책상에 올려두었다. 한숨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지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