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운명인 것 같아. "
너는 참 쉽게도 말했지. 그 말을 믿을 만큼 우린 참 순진했어. 뱉은 말을 지키기라도 하듯 우린 서로가 없어서는 안될 사람인 것 처럼 호들갑을 떨었지. 하루라도 못보면 일년은 떨어져 있던 것 처럼 한참을 부둥켜 않았지. 영원할 거라 믿었어. 네가, 우린 운명이라고 했으니까. 그렇게 헤어지는 순간까지, 아니 헤어진 이후에도 나는 한동안 우리가 운명이라 믿었어.
시간이 지나, 우리가 함께했던 만큼의 시간이 더 흘러 너를 다시 만났을 때, 너는 여자친구가 있었고, 나는 여전히 혼자였어. 만나는 사람이 없었던 건 아니야. 하지만 누구를 만나도 헤어질 걸 알았어. 운명이라고 믿어지는 사람이 없었어.
너는 대체 뭐가 특별했던걸까. 한참이 지나서 알았다. 특별했던 건 네가 아니라 그때였음을.
네가 한 운명이라는 말을 믿을 만큼 우리는 멍청했고, 그 멍청함이 우리를 특별하게 만들었다. 잊을 수 없는 추억을 새겼다.
이제 다시 안할 그 멍청한 사랑은, 우리도 한 때 이야기의 주인공이었음을, 다사다난한 영화보다 아무것도 아닌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일깨웠다. 너를 이따금씩 떠올리는 까닭이다.
한 때는 바보같은 사랑을 했음을, 어쩌다 너같은 사람을 만났음을, 그래서 헤어진 지금도 떠올릴 추억이 있음을.
그 때 하필 너를 만나서 참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