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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 꿀벌 Jul 07. 2021

매일 마카롱과 초콜릿에 빠져 살던 나는

달콤한 세계

그 후 한참 메신저로 연락을 주고받던 우리는 그의 식단이 끝난 기념으로 오랜만에 외식을 위해 만났다. 영어와 한국어를 둘 다 구사하는 그와 대화하는 일은 퍽 재미있었다. 언어가 통한다는 건 얼마나 근사한 일인가! 어디선가 사람은 태어나서 말을 익힘과 동시에 처음 생각을 할 수 있게 된다는 글을 읽을 적이 있다. 실제로 언어가 주는 소통의 힘은 굉장하다. 특히 농담 속에서 그 영향력을 알 수 있는데, 각국의 유머 코드가 다른 건, 그 언어를 사용하는 자만이 알 수 있는 고급 유희다. 한국어로 하면 퍽 시시한 농담이 영어로 하면 익살스러운 표현이 되기도 한다.


앉아서 대화를 나눌 만한 곳을 찾아 푸드코트를 두리번거리던 우리는 한 이태리 레스토랑에 멈춰 섰다. 커피 한잔에 팔천 원. 비록 커피이지만 이정도 가격이면 앉아서 먹을 수 있지 않을까? 아직 코로나 백신이 퍼지기 전이었던 탓에 커피숍 대신 ‘커피를 파는 음식점’을 찾던 것이다.


“커피만 시켜도 앉을 수 있게 해줄까요?”


“Holy shit! $10 for a cup of coffee. Let us sit. (미친, 커피 한잔에 만원이라니. 적어도 앉게 해달라고!)”


그의 익살스러운 표정과 말투에 나는 킥킥거리며 물었다. 아니, 왜 그 부분만 영어로 하는 거에요?

그는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한국어로 하면 다 종업원이 듣잖아요. 불평은 외국어로 해야죠.”


사실 그러면 안 되지만 나도 호주에서 늘 써먹던 방법이었다. 정확히는 불평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이 엿듣지 않았으면 싶은 이야기들을 나눌 때 외국어, 그러니까 한국어나 일본어로 이야기하고는 했다. 주변에 알아듣는 사람이 있는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았다. 우리만 알아들을 수 있다는 묘한 안정감. 꼭 무슨 은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 같은 묘한 재미가 있다.


하지만 비싼 가격에도 따로 음식을 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에 우리는 결국 근처에 있던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시간을 보냈다. 커피는 안되고 아이스크림은 된다는 건가?


“호주에서도 젤라토 진짜 많이 먹었는데.”


“저번에도 단 거 찾더니, 살찌는 거 좋아하나 봐요.”


“살찌는 거 싫어하는 사람도 있어요?”


사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나는 정말 심각한 달달구리 광이었다. 특히 안에 슈가 들어간 초콜릿이나 마카롱을 사랑했다. 그들은 하나하나 수제로 만들어져 아기자기한 모습과 달콤한 맛으로 나를 유혹했다. 초콜릿 카페에서 일하던 시절에는 정말 미친 듯이 먹었지만, 그때를 제외하고라도 한 달에 백에서 이백 불 정도는 간식에 투자할 만큼, 나는 항상 간식을 찾았다.


특히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마카롱 샵은 멜버른에서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La Belle Miette 라는 곳이었다. 리치몬드(Richmond)에 본점을 둔 이 마카롱 샵은 매일 새로운 마카롱을 만들어 그날만 판매하고 남은 재고는 처분하는 아주 정직한 마카롱 샵으로, 한국에서는 잘 팔지 않는 얼 그레이 맛, 블루베리 맛, 살구 맛 등의 다양한 마카롱을 팔고 있었다. 또 파스텔 빛깔의 색은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아지는 마카롱을 예쁜 민트색 상자에 포장해 돌아갈 때면 벌써 달콤한 티타임이 머릿속에 그려지고는 했다. 

또 그 맛은 어떤가! 당일에 만들어 삼일 안에 먹기를 권장하는 마카롱은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러우며 입에 넣으면 찐득거리는 것 하나 없이 사르르 녹아내렸다. 귀국한 후로 한국에 유명하다는 마카롱 집을 찾아 돌아다녔지만 아직도 이만큼 맛있는 마카롱을 찾지 못했다.


어디 그뿐인가, 내가 마카롱에 마음을 빼앗기기 전, 산츄로(Sanchurro)라는 디저트 카페에서 일하며, 나는 초콜릿에 푹 빠져 지냈었다. 그곳은 호주 전역에 퍼져 있는 프랜차이즈 샵이었는데, 당시 유학생이었던 나는 학교가 끝나고 생활비를 벌기 위해 그곳에서 일했었다. 새로 들어온 시험 작 초콜릿 트뤼프(chocolate truffle)와 방금 튀긴 추로스를 공짜로 먹을 수 있는, 말하자면 살찌기 아주 좋은 천국이었다. 그곳에서 딸기, 블루베리 같은 과일 슈가 들어간 초콜릿부터 럼, 보드카 같은 주류가 들어간 초콜릿까지, 나는 당시 쓰고 달고 짠맛을 내는 초콜릿들에 매료되어 있었다. 단단한 초콜릿 코팅으로 싸인 초콜릿은 입에 넣고 톡 씹는 그 순간 때론 씁쓸하고, 또 때론 달콤한 슈를 입안 가득 퍼뜨리며 녹아내렸다.

덕분에 몸무게가 몇 달 사이 훅 찌는 바람에 빼느라 고생 좀 했지.


“그런데도 마른 걸 보면 잘 안 찌는 타입 인가봐요?”


놀리는 건지 칭찬인지. 나는 옷들이 작아져 곤란했던 기억을 더듬으며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초콜릿만 아니면 괜찮은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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