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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 꿀벌 Mar 17. 2022

퇴사만 세 번째


짧은 기간이지만 수고하셨습니다.”


다 같이 일어나 수고했다는 말을 전하고 박수로 배웅한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는 말을 끝으로 문을 열고 나와 걷는다. 아직 밖이 환하다. 아직 오후 두시다. 이 순간부터 나는 자유다. 백수로 돌아왔다.


나는 지금까지 일곱 번의 퇴사를 했고, 그 중 세 번이 한국이었다.


첫 번째 회사는 잠깐 파트로 일하던 회사였다. 원하던 대로 취직이 안되던 차에, 당장 용돈이라도 벌 요량으로 시작했던 일을 일 년 가까이 지속했었다. 일은 쉽고, 매니저와 사이도 좋아 일 년 가까이 일했다. 하지만 파트타임으로는 원하는 만큼의 수익을 얻을 수 없었고, 결국 풀타임으로 이직하며 퇴사했다.

당시에 나는 100%재택근무를 했던 탓에 퇴사도 원격으로 이루어졌다. 사 주의 노티스를 내고, 통화로 지시를 받으며 마무리 작업을 진행했다. 특별히 다른 절차는 없었다. 파트 타임이라 그런지 사직서를 제출할 필요가 없었다.


두 번째 회사는 풀 타임으로 근무하던 한국 기업이었다. 아마도 내가 처음으로 취직한 전형적인 한국 회사가 아닐까 싶다. 해외영업과 관련된 일을 하다보니 외국어를 쓸 일은 여전히 많았지만 문화는 완벽히 한국식. 지금보다는 조금 구시대적 한국 문화를 가진 회사였다. 출근 시간 십 분 전에 회사에 들어서면 모든 직원이 벌써 나와 일을 하고 있었다. 높은 직급의 사람들은 늘 회의에 들어가 있고, 실무는 늘 사원과 대리가 도맡아했다. 회식은 간간이 있었는데, 메뉴는 늘 제일 높은 사람이 정했다. 정시에 퇴근하는 직원은 그 큰 건물에 한 사람밖에 없었다. 그게 나였다.

외국 생활에 익숙해져 있던 나는 크게 게의치 않았다. 주위에서도 ‘외국 생활이 길어 그런가보다’하고 넘어가는 눈치였다. 옆자리에 있던 사원은 늘 야근을 했다. 같은 자리에서  삼 년째 같은 업무를 보던 사원이었다. 그 회사는 특이했다. 앞 자리에 앉아있던 과장은 오 년만에 과장을 달았는데, 옆 자리에 있던 여사원은 삼 년째 사원이었다. 십 년 동안 일한 여대리도 있다고 들었다. 상장되어 있을 만큼 큰 회사였지만, 그 건물에 (내가 아는 한)여자 과장은 한 명 밖에 없었다. 그녀는 연구원이었다.

퇴사할 때는 사직서를 제출하고 결제를 받아야 했다. 이 때도 나는 딱 한 달 전에 사직서를 제출했었다. 한 가지 특이했던 점이라면 퇴사하는 날은 오전 근무만 하면 된다는 것 정도. 사직서를 제출했을 때 들었다. 그런 규정이 있는 건 아니지만 다들 그렇게 해왔다고.


세 번째 회사는 외국계 기업이었다. 여기서는 꽤 재밌게 일했다. 외국어를 공부할 기회가 있어 좋았고, 새로운 나라의 기업 문화를 경험 할 수 있었다. 전에 다니던 곳에 비해 시간적으로 자유로웠다. 십 분 일찍 회사에 도착하면 한 두 명이 출근 해 있는 정도였고, 대부분은 출근 시간에 맞춰 들어왔다. 야근을 하는 사람도 적었다. 야근을 할 때면 꼬박꼬박 야근 수당을 신청하라 권유했고, 연차는 남기지 말고 그때그때 쓰도록 권유했다.

중간에 커피를 마시러 가거나, 잠깐 산책을 가는 것 정도는 허용되는 듯 했고, 탕비실에는 커피 머신과 간식이 늘 구비되어 있었다. 교통비와 주거비를 일부 지원받았고, 회식에도 돈을 아끼지 않았다. 꼭 외국계라서 그렇다기 보다, 사람들이 젊었다. 임원분들도 상당히 젊은 편에 속했고, 대부분이 2030으로 구성된 회사였다. 덕분에 전보다는 재밌는 회사 생활을 할 수 있었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계속 다녀도 괜찮겠다는 생각으로 다녔던 것 같다.


그리고 오늘, 세 번째 회사를 나왔다.


뭐랄까, 마무리가 가장 깔끔했던 회사였다. 사내에 퇴사 메일을 돌리고, 당일에는 비밀 서약 등의 서류에 싸인한 뒤, 사람들의 간단한 배웅을 받으며 퇴사했다.



한국에서 겪은 세 번의 회사 모두 업종도, 종류도, 직종도 달랐지만 공통점이 있었다. 퇴사하는 날은 낮에 집에 갈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리 슬프지는 않다는 것. 굳이 어느쪽이냐고 묻는다면 기쁜 쪽에 가까웠다. 드디어 자유다! 그런 느낌에 기분이 좋았다.


아무래도 나의 경우 퇴사원인에 따라 느낌이 달라지는 것 같다. 대부분의 퇴사는 시원 섭섭에서 시원하다는 느낌이 더 강했지만, 딱 한번 외국에서 퇴사할 때 무척이나 슬펐던 기억이 있다. 그 때의 퇴사 이유는 ‘귀국’이었다. 귀국만 아니었다면 회사를 그만 둘 생각도 없었거니와, 단순한 퇴사보다 ‘이별’이라는 느낌이 강했다. 그래서 펑펑 울었다. 이 때는 삼 개월 정도 미리 언지를 주고 한 달 전에 공식으로 노티스를 냈는데, 한 일주일 정도 울었다.

같이 일하던 사람들만 만나면 그렇게 눈물이 났다. 회사에 정이 들었다기에는 다른 일에 비해 그리 오래 일한 것도 아니다. 사람들이 좋았던 것도 있겠지만, 역시 원인은 ‘귀국’이라는 데에 있던 듯 싶다. 뭐랄까, 일종의 강제성을 띈 이유라고 할까.

퇴사의 원인이 이직이라면 더 나은 곳으로 가는 데다 원하면 언제든 보고 싶은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있다. 하지만 귀국의 경우는 달랐다. 당시에 나는 딱히 다음 회사를 알아보지 않았고, 미래를 고민하던 차에 여러 일들이 터지는 바람에 (물론 결국 내 선택이었지만) 반쯤 떠밀리듯 귀국 했다. 회사를 그만 둔 뒤에도 귀국할 때 까지 당시 친하게 지내던 상사와 어울려 지냈다. 지금까지도 연락하고 지낸다.


그러고보면, 퇴사의 이유도 방법도 참 여럿 있지만 그 기간, 이유, 관계에 따라 많이 달라지는 것 같다. 최근에는 며칠 일하고 no show퇴사를 통보하는 직원들도 많이 생겼다. 나도 이직을 꽤 많이 하는 편이라 생각하지만, 이 삼일 만에 그만 둘 회사를 굳이 왜 들어오는지는 잘 이해가 안된다.

굳이 직접 찾아올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솔직한 퇴사 이유를 전하기라도 해야 하지 않은가. 게다가 단 하루를 일했어도, 돈은 받아야지 않겠는가. 이렇게 퇴사하는 젊은이들은 그 끝 모습이 안좋게 남는다. 아무리 어려서 그런가 이해하려 해도, 좋게 볼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다.


입사할 때의 마음으로, 라는 건 솔직히 억지가 있지만 그래도 마무리 정도는 제대로 짓는 것이 지난날의 나에 대한 예의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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