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을 돌아보며
SNS에 나누어 올린 걸 하나로 모았어요. 올해의 키워드 3-2-1위 입니다 :)
올해의 회고 타임에 내가 세번째로 뽑은 2021년 키워드
아이가 달라지는 것은 곧 나의 불안의 크기와 반비례한다. 내 불안이 줄어들어 아이의 자립의 범위가 넓어지는 것인지, 아이 스스로 선택하고 실행할 수 있는 영역이 커지면서 내 불안이 줄어드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올 한해 내내 아이는 꾸준하게 성장했고, 덕분에 이 에미도 (아이로부터) 많이 독립했다.
내가 중요한 변화의 순간을 만날 때마다 아이도 곁에서 그 변화를 온 몸으로 맞으며 같이 고생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있다. 그리고 아이는 짧지만 긴 10년 생애 동안 단 한순간도 나를 가로막거나 뒤에서 매달린 적이 없다. 나는 무슨 복이 이렇게 많아서 보석같은 이 아이를 선물로 받고 대체 무슨 자격이 있어서 에미랍시고 잔소리를 해가면서 키우는지 모르겠다.
아이를 보듬고 지키며 가장 많은 혜택을 입은 사람은 바로 나다. 아이의 스무살, 물리적인 자립의 순간에 이를 때까지 (우리는 그렇게 약속함) 남은 10년동안 내가 아이에게 잘 부탁해야 한다. 이 시간들을 아이가 어떻게 기억해줄까? 미안하지 않으려면 나는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 아이가 자신의 행복을 끝까지 찾기 바라는 만큼 나도 내 행복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살아갈 거다.
2022년도 잘 부탁해, 꽉 채운 열살 어린이.
올해의 회고 타임에 내가 두번째로 뽑은 2021년 키워드
애호가라니, 나는 애호가라는 단어를 정말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의 나의 상태를 설명하기에 그보다 나은 말이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 것이다. 예술을 애정하고 예술(가)에게 호의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리라 짐작이 되는 단어. (사전 찾아보지 않음)
올 한해는 코로나 시국에도 불구하고 나의 뉴욕시절 이후 최다 공연 및 전시 관람의 해가 아니었을까 싶다. 퇴사 후 지친 몸과 마음을 회복하러 오래 머무른 곳도 예술을 위한 공간들이었고 얼떨결에 올라탄 로켓에서 잠깐 쉬는 시간마다 도망친 곳도 예술 언저리였다.
인문학의 세계나 쇼핑, 운동, 다른 취미, 다른 소비, 다른 돈벌이까지 옵션이 너무나 많은 세상인데 내가 돌고 돌아 아낌없이 즐기고 소비하는 영역은 결국 예술이었다.
운이 좋아서 꽤 일찍부터 예술을 보고 듣고 생각하고 머무를 수 있는 경험들을 쌓았다. 잘 되짚어보면 나는 이미 그 때부터 꽤나 호불호가 분명했는데, 그 분명한 좋음과 싫음을 어떻게 소화해야 하는지 잘 모르는 채로 성인이 되고 길을 바꾸고 조직에 들어가고 가정을 이루면서 이래저래 고생을 좀 했다.
삶이 전반적으로 많이 또렷해진 한 해, 그리고 그 지표가 되어준 것이 바로 '예술에다가 내가 쓴 돈'의 크기! 으음 여전히 애호가라는 말은 별로다. 다른 말 없나요...(흠)
올해의 회고 타임에 내가 첫번째로 뽑은 2021년 키워드
그 어느 때보다 스스로 고민하고 선택하고 실패하고 도전하고 배운 것이 많았던 일년이었다. 살면서 이 정도 노력과 이 정도 시도를 해본 적이 없다는 사실에 문득 놀라면서, 마치 이제 갓 사춘기를 지나 성인의 대열에 처음으로 발을 내딛은 것처럼.
올해 내게 주어진 기회들은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라는 걸 안다. 지난 몇 년간 헤매고 넘어지고 다치고 치료하면서 내가 얻은 가장 귀한 배움은, 힘들 때 어떻게 도움을 찾아야 하는지 알게 된 것이다. 손을 뻗어 도와달라고 말할 수 있는 환경에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아낌없이 버리고 내려놓고 털어낼 수 있음에 감사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수 있음에 감사한다.
내 몸과 마음에 방어기제가 너무 강하면 처음 만나는 많은 것들에 알러지가 발동하겠지, 나는 그러고 싶지 않다, 힘이 남아있는 동안 할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늘 새로운 것을 얻고 싶다. 어쩔 수 없이 나는 항상 어느 정도는 초보자일 것이고 어느 정도는 면역 반응(?) 때문에 고통스러울 것이고 어느 정도는 지나간 것들을 비워내야 할 것이다. 사서 고생도 팔자려니, 이게 내 오리지널 모습이려니 (흑)
남들이 말하는 내 모습이 나인 줄 알고 살던 때에는 주체적인 결정들도 늘 괴롭고 불안했다. 하지만 내가 나를 조금씩 더 이해하게 되면서 두려움도 조금씩 작아진다. 최소한 내가 왜 그렇게 선택했는지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고, 뭐 좀 잘못되면 또 고치고 다시 쓰면 되니까.
인생 절대로 다시 살 수 없다고 누가 그랬지? 시간이 앞으로 앞으로만 가는 건 맞지만, 그 와중에 여전히 수정하고 바꾸고 새로 섞고 빼고 해도 된다. 그렇게 좌충우돌 가는 게 당연하고 자연스럽다, 좀 늦게 알았지만 아주 늦게 안 건 아니어서 다행이야!
음... 그런데 이렇게 자꾸 안 가본 길로 넘어가는 걸 다른 분들께는 딱히 추천하지 않는다. 굳이 하겠다면 말리지는 않겠지만, 내가 좋아하는 분들 너무 괴롭게 살지는 않았으면 해서 (후후)
2021년 고마웠다, 2022년 잘 부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