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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씨 Sep 04. 2022

나의 '렛미플라이'

달에 가는 것이 꿈인 줄 알았는데 현실이었어

총 아홉번의 공연을 보았다.

코로나에 걸려 첫 예매 티켓을 미루지만 않았더라면 아마도 열 번을 꽉 채웠을 게 틀림없다. 


많은 분들은 내가 늘상 이렇게 무언가를 덕질하며 사는 줄 아시지만, 나름 바쁜 회사 다니고 아이 키우면서 빡세게 삶의 균형을 맞추고 사는 워킹맘이라 마음처럼 완전히 뛰어들지 못한다. 그러니까 올 상반기 내 일상을 견인한 단 하나가 렛미플라이였던 것은 아주 특별하고 운이 좋은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첫 공연을 보기 위해 객석에 앉아 시작 안내방송을 듣고 무대가 어두워지는 그 순간까지도 나는 이 작품에서 내가 무엇을 만나게 될지 상상도 하지 못했다. 폭풍같은 2시간이 지나 다시 객석이 밝아질 때 내 작은 심장에 담긴 수많은 감정들을 어찌해야 좋을지 몰라 외마디 감탄사만 내뱉던 기억이 난다.


렛미플라이는 작품 자체로 높은 완성도를 가진 아름다운 뮤지컬이다. 음악도 배우들도 무대와 조명과 극 전체의 연출도 탁월했다. 하지만 내가 그토록 렛미플라이를 사랑한 이유를 하나만 콕 집어 말하자면 가슴을 치는 몇 마디 말들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설명할 수 없던 나의 어떤 순간들을 묘사해주는 문장들.


왜 나는 다른 여자들처럼 현실적인 꿈을 꾸지 못하는 걸까?
그랬다면 이렇게 내 자신이 작고 초라하게 느껴지지 않았을텐데.


아홉 번 공연을 관람하는 동안 눈물을 쏟지 않은 날이 단 하루도 없었는데, 아마 제일 많이 울었던 것은 두번째 관람 때가 아니었나 싶다. 오프닝 바로 다음 장면으로 스무 살 두 주인공이 함께 미래를 꿈꾸는 때부터 나는 이미 펑펑 울었지 (주책) 그들의 남은 삶을 생각하니 가슴이 저릿저릿해서. 


우리는 모두 꿈을 꾼다. 그리고 살면서 매 순간마다 선택을 한다. 꿈을 향하기로, 타협하기로, 변경하기로, 단념하기로, 바꾸기로, 많은 이유들 때문에 처음의 마음과 다른 결정을 하고 그 결과에 책임지며 하루 하루를 감당한다. 그걸 인생이라고 부르지 아마. "추억은 추억일 뿐, 좋았어도 과거일 뿐"


이야기를 끌고 가는 것은 분명 남원인데, 감정은 선희의 시선을 따라 흘러간다. 선희는 안타까운 남원의 꿈을 얘기하지만, 나는 정분이와 선희의 꿈이 가슴아파서 매번 울었다. 해맑게 잃어버린 과거를 찾는 남원을 바라보며 선희는 대체 어떤 마음이었을까, 나중에 이를 알게 되는 남원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지금 그렇게 행복하다면, 돌아오지 않아도 괜찮아


선희의 지나간 시간, 접어둔 꿈, 그렇지만 함께할 수 있어 아름다웠던 세월, "여기가 이제 우리 달이야" 라고 말하는 두 사람은 결코 웃기만 하지 않는다. 렛미플라이를 보고 온 날이면 밤새도록 나는 "난 여행 안해, 살아왔어 평생을 뿌리내린 채 이 땅에서, 나를 봐" 하며 흥얼거렸다. 


많은 사람들이 렛미플라이를 보며 자신의 시간들을 그려보거나 돌아봤으리라 생각한다. 그만큼 작품이 다정하고 일상적이면서도 상상할 수 있는 이야기를 층층이 담고 있다. 작품을 만든 팀이 이를 위해 얼마나 심혈을 기울여 고민하고 또 고민하며 정교하게 다듬었을지 그 애정과 노력이 모든 장면에서 배어난다.


웬만한 소극장 공연에서는 절대 사지 않는 (사실 클래식 공연에서도 프로그램북이나 음반을 거의 사지 않는 1인) 내가 프로그램북도 사고 OST도 사서 아직까지도 이틀에 한번은 듣는다. 대본집이 없으니까 선희의 말들을 그렇게라도 읽고 듣고 싶어서, 노래라도 들으며 그 마음을 기억하고 싶어서.


달에 가는 것이 꿈인 줄 알았는데, 현실이었어


언제쯤 재연으로 다시 찾아오려나. 머리를 신선하게 열어주고, 감각 너머를 깨뜨려주고, 충격과 감동을 주는 예술 작품은 앞으로도 더 많이 만나게 되겠지. 하지만 렛미플라이처럼 나로 하여금 삶을 더욱 사랑하게 만드는 작품을 또 만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빨리 다음 시즌이 돌아왔으면, 그 때는 꼭 열 번 가야지.


(하 영상 첨부하려고 잠깐 유튜브 켰는데 또 눈물 나네)


https://youtu.be/2xPEcwZSuY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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