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서야 고백하지만
최근 삶의 큰 변화를 결정한 후 서울의 풍경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곤 한다. 태어난 곳은 아니지만 내 삶의 80% 이상을 보낸 곳. 운전을 하기 때문에 막히지 않는 한강의 대교들을 건널 때나 강변으로 신호 없는 고속화도로를 달릴 때면 시원한 전경을 자주 만날 수 있다.
며칠 전 언제나처럼 도시 건물 불빛들과 가로등이 빛을 뿌리고 있는 강변을 달리다가 문득 내 안에 공존하는 두 가지 생각, 두 가지 감정을 발견했다. 하나는 야경을 볼 때마다 자동 반사처럼 튀어나오는 '와-' 하는 감탄사의 존재, 그리고 다른 하나는 '전혀 예쁘지 않은 걸.'
사실, 나는 한 번도 도시의 야경이 아름답다 느낀 적이 없다.
살면서 꽤 많은 여행을 했고 놀랄만한, 유명한 야경을 많이 만났다. 그 때마다 감탄하고 박수치고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감상적이 되거나 흥이 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순간들을 잘 돌이켜보니 나는 무의식중에 분위기를 잘 맞추고 철저하게 기대되는 행동을 보였던 것이다.
홍콩 야경도, 상하이 불꽃쇼도, 뉴욕 마천루도 에펠탑에서 내려다보는 파리의 야경도 내게는 다양한 불빛들의 조합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깜깜한 밤에 불빛들이 펼쳐져 있는 풍경이 우리집 크리스마스 트리와 다른 어떤 감동을 만들어내야 하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늘 있었다.
다만 오히려 내가 분명하게 감지했던 것은, 나를 그런 야경 앞에 데려다 놓은 사람의 기대치, 그리고 그 앞에서 내가 어떤 태도를 보여야 하는가였다. 어떤 언덕을 넘어, 어떤 모퉁이를 돌아, 어떤 코너를 꺾어 눈 앞에 수많은 건물들이 불빛들로만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탄성을 내뱉는 것'이 자동응답기처럼 입력되었다.
언제부터였을까? 그 순간의 환호가 단 한번이라도 진심이었던 적이 있을까?
일일이 다 설명할 수 없지만 나는 마치 숨쉬는 것처럼 본능적으로 안전한 공간, 안전한 관계를 찾는다. 동시대의 수많은 동료들이 비슷한 안테나를 항상 곤두세우고 살고 있다. 누구도 너에게 강요한 적 없어, 라는 메시지 너머로 실은 온 사회가 평생에 걸쳐 나를 교육했다. 그 순간 잘 맞추는 것이 삶의 지혜야.
감각에, 감정에 솔직할 수 있는 것이야말로 정말 안전한 공간이자 관계이다. 주변 사람들을 떠올렸을 때 '굳이 사람을 가려야 하거나 솔직하지 못할 이유가 없는데?' 싶다면 아마 나와 다른 행성에 살고 있는 분이리라. 어제 지인의 SNS에서 읽은 두 개의 단어가 심장을 몹시 파고들었다. 외로워, 피곤해.
이 얘기를 하려고 굳이 야경까지 끌어다 쓰다니 좀 허탈하긴 해도 슬픔과 분노를 어찌할 바 모르겠는 최근의 마음들을 이렇게라도 꺼내본다. 내 자신에 솔직하다는 이유로 타인에 의해 갑자기 일상이, 커리어가, 생이 끝나버리지 않을 수 있는 세상.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싶다.
덧.
내가 온 몸으로 감동하는 풍경은 선명한 햇살 아래 드러나는 자연을 만날 때다. 인간의 흔적이 지워진 모습일수록 나는 감격하고 떨리고 눈물이 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