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음씨 Sep 18. 2022

나는 야경이 아름답지 않다

이제서야 고백하지만

최근 삶의 큰 변화를 결정한 후 서울의 풍경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곤 한다. 태어난 곳은 아니지만 내 삶의 80% 이상을 보낸 곳. 운전을 하기 때문에 막히지 않는 한강의 대교들을 건널 때나 강변으로 신호 없는 고속화도로를 달릴 때면 시원한 전경을 자주 만날 수 있다.


며칠 전 언제나처럼 도시 건물 불빛들과 가로등이 빛을 뿌리고 있는 강변을 달리다가 문득 내 안에 공존하는 두 가지 생각, 두 가지 감정을 발견했다. 하나는 야경을 볼 때마다 자동 반사처럼 튀어나오는 '와-' 하는 감탄사의 존재, 그리고 다른 하나는 '전혀 예쁘지 않은 걸.'


사실, 나는 한 번도 도시의 야경이 아름답다 느낀 적이 없다. 


살면서 꽤 많은 여행을 했고 놀랄만한, 유명한 야경을 많이 만났다. 그 때마다 감탄하고 박수치고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감상적이 되거나 흥이 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순간들을 잘 돌이켜보니 나는 무의식중에 분위기를 잘 맞추고 철저하게 기대되는 행동을 보였던 것이다.


홍콩 야경도, 상하이 불꽃쇼도, 뉴욕 마천루도 에펠탑에서 내려다보는 파리의 야경도 내게는 다양한 불빛들의 조합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깜깜한 밤에 불빛들이 펼쳐져 있는 풍경이 우리집 크리스마스 트리와 다른 어떤 감동을 만들어내야 하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늘 있었다.


다만 오히려 내가 분명하게 감지했던 것은, 나를 그런 야경 앞에 데려다 놓은 사람의 기대치, 그리고 그 앞에서 내가 어떤 태도를 보여야 하는가였다. 어떤 언덕을 넘어, 어떤 모퉁이를 돌아, 어떤 코너를 꺾어 눈 앞에 수많은 건물들이 불빛들로만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탄성을 내뱉는 것'이 자동응답기처럼 입력되었다. 


언제부터였을까? 그 순간의 환호가 단 한번이라도 진심이었던 적이 있을까?


일일이 다 설명할 수 없지만 나는 마치 숨쉬는 것처럼 본능적으로 안전한 공간, 안전한 관계를 찾는다. 동시대의 수많은 동료들이 비슷한 안테나를 항상 곤두세우고 살고 있다. 누구도 너에게 강요한 적 없어, 라는 메시지 너머로 실은 온 사회가 평생에 걸쳐 나를 교육했다. 그 순간 잘 맞추는 것이 삶의 지혜야.


감각에, 감정에 솔직할 수 있는 것이야말로 정말 안전한 공간이자 관계이다. 주변 사람들을 떠올렸을 때 '굳이 사람을 가려야 하거나 솔직하지 못할 이유가 없는데?' 싶다면 아마 나와 다른 행성에 살고 있는 분이리라. 어제 지인의 SNS에서 읽은 두 개의 단어가 심장을 몹시 파고들었다. 외로워, 피곤해. 


이 얘기를 하려고 굳이 야경까지 끌어다 쓰다니 좀 허탈하긴 해도 슬픔과 분노를 어찌할 바 모르겠는 최근의 마음들을 이렇게라도 꺼내본다. 내 자신에 솔직하다는 이유로 타인에 의해 갑자기 일상이, 커리어가, 생이 끝나버리지 않을 수 있는 세상.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싶다.


덧.

내가 온 몸으로 감동하는 풍경은 선명한 햇살 아래 드러나는 자연을 만날 때다. 인간의 흔적이 지워진 모습일수록 나는 감격하고 떨리고 눈물이 나더라.

매거진의 이전글 나의 '렛미플라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