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생 되기를 반복하는 내 자신에게
최근 오래간만에 클래식 공연을 연달아 세 번 관람했다. 아주 탁월하고 젊은 피아니스트들의 무대였고, 불안한 마음 0.1도 없이 마음껏 몰입하고 즐기고 후련하게 관람했다. (오래 전 음악을 했다는 이유 때문에 종종 공연을 보고 나서도 후련함이 없는 경우가 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굉장히 좋은 퍼포먼스를 감상하는 동안 나도 모르게 일이나 미래와 관련된 생각을 많이 한다. 좋은 클래식 실황 연주는 뭔가 내 업무 DNA를 활성화시키는 트리거가 있는 듯 한데, 이번에 객석에 앉아서는 유난히 노련함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빛나는 연주자들도 이미 익숙한 음악을 더 잘 표현하기 위해 끝없이 연마하고, 이미 기술적으로 탁월하지만 무대에서 최선을 다해 집중하고, 그 결과로 음악을 이끌어가는 순간에는 자유자재로 악기와 음악을 다룬다. 잠결에도 완벽하게 연주할 수 있어야 진짜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그렇게 노련해지다 보면 함정이 생기는데, 바로 신선도의 문제다. 새로운 것에 몰입할 때 발생하는 밀도와 긴장감은 노련해질수록 줄어든다. 연주자에게 관객의 호흡을 휘젓는 노련함과 함께 닳지 않은 신선한 매력을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도전이기도 하다.
대략 이쯤에서 생각은 하염없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기 시작했다. 익히 경험해본 적 있는, 하지만 최근 몇년간은 '새로움의 맛'에 밀려 기억에서 완전히 잊혀졌던 '노련함의 맛'이 문득 떠올랐기 때문이다.
한 번의 결정이 어렵지 두번 세번은 쉽다고, 20년 함께한 반려 악기를 그만둔 이후 나는 언제나 해보지 않은 일을 선택해왔다. 새로운 일은 명백하게 내게 배움을 준다. 성장하게 해주고, 이전에 보지 못했던 세계를 볼 수 있게 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 '노련함'이란 키워드는 없다.
연주자들을 보며 새삼 기억했다. 피터지게 연습하고, 매일 골방에서 한마디 한마디 깎는 시간을 보내다 마침내 음악을 무대 위로 끌어냈을 때, 내가 표현하고 싶은 만큼 노래하고 싶은 만큼 몸과 마음과 공연장의 호흡이 온전히 나를 따라줄 때, 얼마나 짜릿했는지 - 지금 무대 위의 저들은 얼마나 행복할지.
일을 해온 시간을 돌아보면 익숙하고 만족스러운 감정보다는, 늘 될까 안될까 마음 졸이는 순간이 훨씬 더 많았다. 불안과 안도함의 반복은 자꾸 낯선 곳으로 자리를 옮기는 내 선택의 탓이 클테다. 제 아무리 용가리 통뼈라도 처음 해보는 일에 능수능란함을 팍팍 뽐낼 수는 없으니까.
지금의 시공간을 내가 완전히 장악하고 있다는 감각. 뭔가 과거를 그리워하는 건 지금의 나에게 썩 어울리는 모습이 아니지만, 유일하게 음악하던 시절로부터 되찾고 싶은 것이 하나 있다면 바로 그 감각인 것 같다. 그렇다고 다시 10년씩 20년씩 마디 마디 깎는 것은 더 이상 못하겠지만.
일터에서 정말 내가 되고 싶은 모습은 무엇일까? 한 명의 탁월한 실무자가 되면 충족될까? 모두가 내게 주목하는 리더가 되면 만족스러울까? 스타 플레이어가 되는 것이 '나의 일'에서 내가 추구하는 목표가 맞을까? 일에서도 노련함을 찾고 싶다. 그러면서도 새로운 물에 뛰어들고 싶은 욕구도 멈출 수가 없다.
올해 들어와 강도 높은 업무시간 틈에 긴장을 풀기 위해 공연장을 자주 찾는다. 2009년 귀국 이후 관람 기록은 아마 올 상반기가 최고치일 것이다. (뮤지컬 렛미플라이가 한몫...) 그런데 공연장으로의 발걸음은 자꾸만 나를 생각하게 만든다. 내가 왜 여기 있는지, 정말 얻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어디에 도달하고 싶은 것인지.
모두가 자신의 갈길을 또렷하게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살다 보면 자연스러운 발견과 깨달음이 있기도 하니까. 하지만 2022년을 보내며 2023년을 준비하는 이 시점의 나에게는 중요한 고민을 안겨주는 주제가 맞다. 설명하긴 어려워도 지금 인생 챕터 하나를 넘어가는 과도기라고 온 우주가 나에게 말해주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