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서없는 연말의 한 장면
"왜 한국에서 캐나다로 이사했어요?" 출국을 앞둔 때를 제외하면, 여기 와서 1년을 보내는 동안 거의 들어본 적 없는 말이었다. 다민족이 모자이크처럼 모여 사는 이 사회 특성상 '너의 출신 국가가 어디냐'는 질문은 관공서에서나 받는다. 그런데 지난 주말 저녁, 시간차를 얼마 두지도 않고 두 번이나 같은 질문을 받았다. 그것도 우연히 마주친 사람들로부터.
시작은 큰 공구 매장에서 열쇠 복사를 해주던 아저씨였다. 엘리베이터 틈새로 출입키 뭉치를 빠뜨린 덕분에 여벌까지 만들 겸 남은 열쇠 꾸러미를 들고 공구 매장에 갔다. 블랙 프라이데이 세일로 분주하게 바쁜 매장 한 쪽에서 차근 차근 열쇠들을 복사해주던 나이 지긋하신 아저씨가 나와 아이의 대화를 유심히 보더니 물었다. 혹시 한국에서 왔느냐고.
맞다고, 온지 얼마 안 되었다고 답을 하는데 하필 사이즈 맞는 복제용 열쇠 수가 모자란 걸 발견한 아저씨는 근처 다른 매장으로 가는 길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원래는 대학 강의를 하셨었는데 학생들을 가르치던 시절 지금 나와 아이가 사는 동네에 사셨었단다. 열쇠 복사 뿐 아니라 '밴쿠버에서 제일 맛있는' 베이커리라며 동네 빵집 위치까지 열심히 알려주시더니 힘내라고 잘 정착하라고 응원도 덧붙이셨다.
알고 있다, 수많은 이민자들이 나보다 훨씬 힘들고 어려운 과정을 거쳐 거주와 취업의 자격을 얻는다. 여전히 모국어 억양이 강하게 남아 있는 아저씨도 어쩌면 긴 시간 많이 고단하셨을 테고, 그런 날들을 보냈던 동네 구석 구석이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아 있었나보다. 내 요즘이 물론 험난하긴 해도 절망은 별로 등장하지 않는데, 라고 중얼거리면서도 뭔가 설명할 수 없는 마음이 일렁거렸다.
그렇게 아저씨가 알려주신 다른 매장에 도착해 무사히 열쇠 복사를 끝냈다. 돈을 내려고 계산대에 섰는데 이번에는 캐셔로 있는, 나보다 조금 젊어보이는 여성분이 묻는다. 혹시 한국에서 왔느냐고. 그렇다고 대답하며 신용카드를 단말기에 대는데 그 분이 덧붙였다. 왜 한국을 떠나 캐나다로 왔느냐고, 한국 정말 좋은 나라 아니냐고. 혹시 왜 여기를 왔는지 물어봐도 되겠냐고.
나는 조금 신기한 기분이 되어 그 여성분을 바라봤다. 무례함 1도 없이 아주 조심스럽게 말을 건네는 그 분은 어쩌면 제한된 비자를 연장해가며 시간제 근무를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1초 사이에 머릿속에 오만가지 답변이 스쳐 지나갔다. 한국에서 주변 분들과 얘기할 때는 "...그래서 캐나다로 이사하려고." 하는 말 뒤에 특별한 부연 설명이 필요 없었다.
그런데 이미 여기 와 있는 나를 향해 도대체 왜 그 좋은 한국을 떠나왔냐고 묻는 사람에게는 어떤 얘기를 들려주어야 할까. 잠깐 망설이는 사이 내가 불쾌할까봐 걱정했는지 그 분의 표정이 흔들리는 걸 보고 나는 재빨리 답을 했다. 한국이랑 여기 환경이 많이 다르고 나와 남편은 아이를 여기서 키우는 게 더 좋겠다고 생각했어. 그러자 그 분의 눈빛은 아까보다 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모호해졌다.
한국은 경쟁이 심해. 여기만큼 자연이 많지도 않고. 난 가족도 여기 있어. 더 늦기 전에 여기서 살아보는 걸 우리 모두 원했어. '아름다운 한국을 두고 왜 사서 고생을 하고 있는가' 의 대화가 이어지려는 순간 내 뒤에 다른 손님이 등장했다. 계산대 위의 열쇠들을 서둘러 가방에 쓸어넣고 ’우리’는 지금 여기가 좋아, 라고 매듭짓자 그 분은 대답해줘서 정말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뒷손님의 물건을 받아 계산을 시작했다.
저녁 식사 시간도 채 되지 않았는데 한밤중처럼 깜깜한 겨울 밤거리로 아이와 함께 걸어나왔다. 그들이 내게 물어보는 마음, 내가 답을 하는 마음, 요즘의 나, 지난 일년간의 나, 서울을 떠나기 전의 나, 고국을 떠나기 전의 그들, 그들이 지금 각자 살고 있는 시간들, 이런 생각들이 두서없이 밀려들어 코가 매웠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