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업무 얘기가 아니다
내가 살고 있는 집을 기준으로 설명하고 있으므로, 우리 집 구조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그다지 와 닿지 않는 내용일 수 있음 주의.
내가 운영 업무를 매력적으로 생각하는 데에는 2가지 큰 이유가 있다. 하나는 끝없는 개인화를 고민할 수 있다는 사실이고(내 강점 개별화 individualization 이랑 찰떡) 다른 하나는 끝없는 효율 개선을 고민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내 강점 복구 restorative 랑 찰떡). 남들은 알아차리지 못하는 아주 미세한 변화와 개선에도 기쁨을 느낄 수 있으니 삶의 에너지가 부족할 일이 없다. 그 중에서 결혼 후 십여 년 사이 드라마틱하게 개발된 영역은 단연코 효율 추구이다.
나는 좀 게으르다. 평소 내 일상을 아시는 분들은 약간 갸우뚱 하실 수도 있는데, 나는 쉴새없이 움직이는 자체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그냥 호기심이 많아서 이것 저것 들춰보고 발 담궈보는 것 뿐이다. 소위 말하는 엉덩이가 가볍고 바지런한 성향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하고 싶은 게 많음에도 단순히 '원하는 마음'만으로는 도무지 스스로를 움직일 수 없어 강제로 여러가지 루틴에 자신을 억지로 밀어넣는 쪽에 가깝다. 그게 도가 지나치면 웬만한 돈을 쓰고도 '정신 건강이 중요해'라며 헌신짝처럼 중도 포기도 쉽게 한다.
그러다 보니 내겐 효율이 최우선이다. 최소한의 동선으로 최대한의 미션을 해결할 수 있을 때 나의 만족도는 최상이 된다. 그 와중에 짧은 시간에 적은 힘을 들이고 많은 걸 소화하겠다고 욕심 내다가 용량을 초과하거나 결과가 안 좋거나 실수를 연발하거나 하면 몹시 좌절한다. 그래서 내 자신의 리소스에 대한 가시성도 무척이나 중요하다. 내가 해낼 수 있는 적정선에서 극대화된 업무 효율을 내면 그렇게 뿌듯하고 기쁠 수가 없다.
다시 말하지만 이건 업무 얘기가 아니라 살림 얘기다.
자금의 나는 서울과 북미 동서부 시차로 리모트 근무를 하면서 오롯이 혼자 초등 아이의 일상을 챙기며 산다. 한국에서는 그나마 돈이라도 펑펑 쓰면 해결될 일들이 여기서는 아예 불가능하거나 구조가 달라 여의치 않다. 내 시간표는 3중 4중 테트리스이고 몸은 천천히 움직일 지언정 머리는 1초도 쉬지 않는다. 빼먹지 않기 위해, 제 때 하기 위해, 그리고 조금이라도 간편하게 해내기 위해. 내가 부지런해서가 아니라, 게으르고 싶어서, 1분이라도 더 눕고 싶어서, 10분이라도 더 아무것도 안 하고 싶어서.
아침 알람을 듣고 눈을 뜨면 일단 누운 채로 생각한다. 도시락을 싸기 위한 냉동밥을 꺼내는게 먼저일까, 아이가 아침으로 먹을 식빵을 토스터기에 넣는 게 먼저일까? 주차장 반대편에 있는 분리수거실에 들르는 건 등교길이 나을까, 내려주고 오는 길에 들러야 할까? 아이가 아침을 먹는 동안 도시락을 만들고 시간이 남으면 빨래를 돌리는 게 먼저인가 식기세척기에 그릇을 쌓는 게 먼저인가?
안방부터 아이 방까지 가는 동안 바닥에 떨어진 과자 껍질이 눈에 띄었다. 지금 저걸 주워서 주방 선반에 올려두고 갈까, 어차피 아이 깨우고 돌아오는 길에 주방으로 들어가니 그 때 주워서 버리는 게 나을까? 등교시키러 나가기 전 전 딱 하나 정도만 더 해결할 수 있는 시간이 남았는데, 커피 포트를 동작시키고 가는 것과 내가 먹을 토스트를 눌러놓고 가는 것 중에 뭐가 더 귀가 후 업무 시작 전까지 시간을 절약해줄까?
사실 생각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은 대충 5초 안팎이다. 재빨리 여러 옵션을 머릿속으로 훑어본 후 곧바로 하나를 선택해 실행해야 한다(시간은 늘 부족하므로!) 그리고 행동에 옮기며 과정과 결과를 분석하는 거다. 막상 해보니 생각처럼 동선이 나오지 않을 수도, 의외로 적절한 미션이 없어 순간을 낭비할 수도 있다. 그럼 다음 날 아침에는 아무렇게나 의자에 걸쳐 있는 점퍼를 주워 방에 던져두는 미션 하나를 추가할 수도 있는 거다.
운영이란, 달성 목표를 세우고 다양한 시나리오를 검토해본 후 리스크가 가장 적거나 이득이 가장 클 것으로 예상되는 방법을 선택해 실행하면서 예상치 못한 빈틈 또는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는 지점을 빠르게 발견해 대안을 찾고 재실행하여 이를 개선하는 사이클의 무한 반복이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회사 업무와 나 자신 뿐 아니라 가정의 태스크까지 나의 업무 스콥에 들어오게 되면서 효율을 좇는 내 성향은 극대화되었다.
이제는 훈련인지 본능인지 알 수 없는 계산이 항상 돌고 있다고 느껴진다. (그래서 가끔 쉴 때 기진맥진 한 것 같다) 키 포인트를 덧붙이자면, 절대로 큰 욕심을 내면 안된다. 나만 알아차릴 아주 작은, 아주 미세한 개선, 어제보다 약간 더 나은 오늘, 여기에 내가 원하는 수준의 효율을 달성한 순간에도 만족감 더하기 '혹시 이거보다 더 나은 방법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 도전 정신 - 그게 바로 내 일상의 생기, 내 삶의 큰 원동력인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