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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씨 Apr 05. 2020

양육과 불확실성

아이 생일 그리고 나의 짧은 휴직 15일 전.

아이를 키우는 일에는 정말 정답이 없다. 더 나을 거라 생각하는 방향으로 이끌더라도 그것이 실제로 아이의 인생에 좋은 일이었는지, 그리고 아이의 주변에 필요한 것이었는지는 세월이 다 지나야만 알 수 있는 것이다. 강압과 훈육의 경계를 배우고 언어와 상황도 충분히 폭력이 될 수 있음을 알게 된 후 부모의 역할이란 것이 한편으로는 더 쉬워지고 한편으로는 더 어려워졌다. 내 경험을 돌이켜볼 때 상처로 남아 후유증이 있었던 것은 아이에게 저지르고 싶지 않고, 나중에라도 도움이 되었던 것은 무리해서라도 입력하고 싶어진다. 하지만 이내 깨닫게 되는 것은, 이 또한 철저하게 '나'를 기준으로 했을 뿐 '아이'에게 어떨지는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불확실성과 예측 불가능함을 인정하는 부분에 있어서 나와 남편의 견해 차이가 크다. 나는 '짐작할 수 없는 영역'을 인정한 상태에서 '그렇다면 이 방향이 어떨까' 하고 먼저 제안하기 때문에 아이의 생각을 끊어놓는다면, 남편은 '달라져봤자 거기서 거기'라는 관점에서 과거에 보편적으로 효과가 좋았다고 여겨지는 방법으로 아이와의 관계를 다루려고 하는 편이다. 우리 아이가 우리의 경험치 안에 들어있지 않은 예외적인 한 명일수도 있음을 인정하지 않는 남편의 생각이 나는 답답하고, 이를 방어하면서도 아이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갔으면 하는 나의 욕심 또한 버리지 못해 무언가 통제하려고 하는 내 모습이 남편에게는 과도하게 보인다고 한다. 


미루어 짐작해서도 안되고 섣불리 예측해서도 안된다. 철저하게 객관적이고 다정한 태도로 아이를 관찰하고 적극적으로 반응하며 아이를 파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정하지 않으면 아이는 솔직하지 못하고, 객관적이지 않으면 부모는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없다. 남편과 나는 어떤 부모인가? 약간의 다정함, 불완전한 객관성. 어정쩡한 태도가 아이를 더 힘들게 하고 있지는 않을까?


오늘은 아이가 약속을 지키지 않아 밀린 학습지를 울면서 풀다가 중재안을 극적 합의하고 잠이 들었다. 쉬운지 어려운지 잘하는지 못하는지 보다는 약속을 잊지 않는 것, 가볍게 흘려보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경험의 반복을 만들지 않기 위해 강행했다. 네 살 무렵, 쏟은 사람이 다 치우기로 약속하고 아무렇게나 한가득 어지른 블럭을 혼자 한시간에 걸쳐 블럭통에 담으면서 엉엉 울던 아이 생각이 난다. 그 때 이후로 아이는 귀찮아 하면서도 제법 스스로 뒷정리를 하게 되었다. 오늘의 기억도 모쪼록 아이에게 '억지로 나를 앉혀둔 엄마'에 대한 것보다 '밀리면 힘들다'는 경험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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