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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ttle Creatures Mar 22. 2020

아들의 수술

호주에서 아데노이드 비대증 수술

[시기:2015.5 / J:초6 / 장소:호주]


간단한 수술이라고 했다.

Day operation이라고 했다. 의사인 사촌 형도 하라고 했다. 그래서 하기로 결정했던 J의 아데노이드 비대증 수술.... 하지만 수술일이 가까워 오면서 이상하게도 좋지 않은 이야기만 눈에 귀에 쏙쏙 들어온다.

J는 아주 어릴 때부터 코막힘이 잦았고 중이염까지 달고 살아왔다. 지금은 좀 커서 중이염은 사라졌는데, 비염과 코막힘은 여전해서 우리는 호주의 맑은 공기에 기대를 했었었다.

그런데 최근 환절기에 부쩍 더 심해진 코막힘 때문에 특히, 밤에는 코골이가 심해 엄마가 자주 깨야만 했다. J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는 듯 하지만, 부모로서 공부에 집중력이 필요한 시기를 놓치는 게 아닌가 하는 조바심이 전신마취를 한다고 하는데도 불구하고 수술을 결정하게 만들었다. 그것도 말도 잘 통하지 않는 호주에서...

얼떨결에 병원과 수술일 그리고 수술의사/마취의사를 예약하는 사회적 시스템이 진행되고 나니, 이제 와서의 취소는 상당한 근거와 용기 그리고 불이익을 초래하게 해서 생각하기가 힘든 옵션이 되어버렸다.


모든 것이 불안하다.

수술하면 학교를 쉰다고 며칠 전부터 기대가 만땅인 J와 수술일이 다가올수록 뭔가 불안한 부모의 마음이 엇갈리는 가운데 수술일은 오고야 말았다.

새벽 6:30까지 병원 도착이라고 해서 어제 일찍 누웠지만 잠자리가 편치 않았다.

또 병원에 도착해서 기다리는 동안에도 수술의 순서가 먼저 도착한 순서가 아닌듯해서 살짝 신경이 거슬렸지만, 간호사가 아이들은 나이 어린 순서로 수술을 진행한다고 설명을 해주었다.

수술 대기실 침대에 누워서 J는 여전히 놀러 온 표정이었다. 간호사들이 이름과 생년월일을 여러 차례 확인할 때도 J는 잘 이해하고 영어로 씩씩하게 잘 대답해서 부모로서 그 순간의 깨알 즐거움과 보람을 느꼈다.

드디어 수술실에 들어갔다. 다른 분위기에 살짝 쫄은 표정의 J

바로 마스크를 씌워 마취를 시작했고 눈빛을 주고받은 찰나의 순간이 지나고 J가 잠드는 데는 채 5초도 걸리지 않았다. 마지막 잠드는 순간까지도 J는 용감하고 의젓함을 잃지 않았다.


수술은 잘 되었다고 한다.

수술은 30분 정도 소요되었고 회복실에 돌아온 J는 눈을 감고 있었지만 마취에서는 깨어났다고 한다. 감겨있는 J의 눈가에 눈물이 맺혀있어 안쓰럽다. J는 코막힘과 목의 통증 그리고 두통까지 호소하면서도 심한 보챔보단 J 특유의 기다림과 의연함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눈이 상글해졌고 눈물이 맺혀있고 약간 충열까지 돼있어서 더 애처롭다. 이후 진통제와 수술 붓기를 가라앉치는데 도움이 되는 아이스크림 한 통을 먹고 한 시간 정도를 자고 난 J는 상당히 괜찮아져 있었고 예정대로 오후 1시에 퇴원했다.


감사합니다.

퇴원하고 나서는 진통제의 힘인 듯 하지만 너무 원상태로 회복한듯한 J는 어젯밤부터 힘든 시간을 보낸 아빠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정상이다. 하지만 다행이다. 진심으로 감사하다. 하나님께 감사하며 코로 자유롭게 숨 쉬는 J를 상상한다.

J만큼이나 힘든 시간을 보낸 엄마 아빠의 안도감으로 인한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 엄마는 J주려고 끓여둔 죽 한 그릇에 맨 밥 한 그릇을 먹어치웠고, 나는 J의 대용량 아이스크림 한통을 내가 수술한 듯이 해치웠다.




J가 좋아졌다.

하룻밤을 자고 난 J는 더 생생해졌다. 밤새 코가 막혀 고생했지만, 아침의 J는 예전과 전혀 다르지 않게 깨방정을 부리며 논다. 다만 이 수술로 인해 일주일 정도는 학교 안가는 줄 알았는데 너무 괜찮아서 엄마. 아빠가 학교를 일찍 보낼까 봐 걱정하는 것 빼고는....


너무도 감사한 일이지만 부모의 환자 케어 집중력을 떨어뜨리는 부작용이 있다.

흰 죽만 먹이리라 다짐했건만 밥과 소시지, 빵을 가리지 않고 마구 먹인다.

부드러운 아이스크림을 먹여야 하는데 평소에 먹는 딱딱한 크리스피 바를 그대로 주었다.

약은 계량컵으로 정량을 정확하게 주려 했건만, 1회 5ml인 항생제를 진통제 용량과 착각한 RJ가 넉넉하게 12ml를 먹여버렸다.

게다가 움직이지 않고 무조건 쉬게 하라고 했는데, J를 데리고 쇼핑센터를 옮겨가며 무려 4시간 이상을 끌고 다닌다.

낫는 게 이상할 정도다. 부모의 Careless에도 그래도 나아주는 J가 고맙다.

[항생제 과다투약 증거물]

그래도 쇼핑은 즐거워

한편, J는 아픈 몸을 이끌고도 쇼핑을 알차게 즐긴다.

모아둔 돈 $100을 마침 생일인 엄마의 생일선물에 아낌없이 투자하는 J에 감동한 우리는 뽕맞은듯 J의 옷과 그리고 갖고 싶어 하던 손목시계를 거금 $180을 주고 사주어버렸다. 뭔가 아는 넘 같다.

사실 쇼핑은 RJ가 지 생일이라고 미리 나에게 삥 뜯어간 $300으로 반지 사고 남은 돈으로 보아둔 선글라스만 빨리 사서 올 생각이었다. 하지만 오클리 매장에서 맘에 드는 선글라스 신상을 한국보다 싸게 구입한 RJ는 나와 아이들이 맘에 걸렸고 그러다 보니 인심이 넉넉해져서 서로 격려해가며 마구 지르게 되었다. 인피니트 오빠들에 빠져있는 P는 따라오지도 않았지만, 인심이 후해진 우리는 예전부터 사주고 싶었던 예쁜 학교 구두를 하나를 쇼핑백에 넣었다.

그렇게 즐겁게 평소의 주말처럼 하루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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