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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교진 Oct 13. 2016

소년이 올까요?

[다섯 번째 책] 한강의 '소년이 온다'

어떤 기억은 아물지 않습니다. 시간이 흘러 기억이 흐릿해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기억만 남기고 다른 모든 것이 서서히 마모됩니다. 색 전구가 하나씩 나가듯 세계가 어두워집니다. -<소년이 온다>, P134-


<소년이 온다>는 1980년 5월 광주에서 있었던 학살 사건을 다룬다. 1980년 광주의 5월은 문학과 다큐멘터리에 빈번하게 등장하는 '소재'이고 그만큼 수없이 접했지만 그중 한강의 <소년이 온다>는 단연 최고라고 말하고 싶다.


<소년이 온다>는 총 7장으로 각각의 장마다 그날을 겪은 인물들이 한 사람씩 등장해 본인의 이야기를 풀어간다.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 누나를 찾으러 나갔다가 봉변을 당한 정대, 그런 정대를 보고 도청을 떠나지 못 하는 동호, 그런 동호를 잃은 어머니의 이야기. 그리고 인생의 시공간이 1980년 광주로 멈춰버린 사람들이 생존 이후의 삶을 이어가는 이야기까지.      


<소년이 온다> 역시 광주를 소재로 한다면 익숙하게 느끼는 슬픔, 독재 정권에 대한 분노, 그날과 다른 바 없는 현실에 대한 개탄스러움, 반복되서는 안 된다는 반성 등의 감정 등이 밀려오고 독자는 그대로 느낀다. 그러나 이 책은 그보다는 더 깊은 또 다른 무언가를 독자에게 던져준다.      



시상에 옥상이여. 옥상에서 영규를 쐈어.  

이번에는 옥상에서 총을 쏘지 않았다. 하지만 너는 정대를 향해 그들처럼 달려가지 않았다.-<소년이 온다>, p31-    

하지만 동시에 당신은 안다. 그해 봄과 같은 순간이 다시 닥쳐온다면 비슷한 선택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소년이 온다>, p175-

각 장에서 전개되는 이야기들의 시점이 조금씩 다르게 하며 독자로 하여금 공감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



특히 이 소설 속 어떤 장은 ‘너는’, ‘당신은’ 이라는 지칭을 사용하면서 그 주위를 둘러싼 상황과 감정을 자세하게 묘사하는데, 이는 마치 최면과도 같았다. 요즘 말처럼 하면 나는 작가에 의해 그때 그 시간, 그 공간으로 소환된 것이다. 그러더니 슬픔이 구체적으로 다가왔다.      



이 책의 인물들이 공유하는 감정을 이야기하라고 한다면 ‘슬픔’이라는 이 한 단어로 모든 게 다 설명될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친구를 잃은 슬픔, 동료가 짓밟히는 것을 봐야만 했던 슬픔, 자식을 잃은 슬픔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고, 진짜 그러함을 이 소설이 체험시켜 주고 있다.   



그리고 그 개별적인 슬픔을 바라보지 못하고, 그저 큰 그림으로만 봤던 우리 모습도 발견시켜 준다.


2009년 1월 새벽, 용산에서 망루가 불타는 영상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불쑥 중얼거렸던 것을 기억한다. 저건 광주잖아. 그러니까 광주는 고립된 것, 힘으로 짓밟힌 것, 훼손된 것, 훼손되지 말았어야 했던 것의 다른 이름이었다. 피폭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광주가 수없이 되태어나 살해되었다. 덧나고 폭발하며 피투성이로 재건되었다. -<소년이 온다>, p207-     

1980년 5월, 한참이나 지난 이야기이다. 그런데도 책의 재목은 <소년이 온다>, 현재형이다. 책의 제목이 현재형인 이유는 작가에게는 현재에도 광주가 수없이 되태어나고 그 속에서 짓밟힌 소년들의 행렬이 멈추지 않고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작가의 말처럼 오늘날은 그렇다 치자. 그렇다면 이 책의 의미는 언제쯤이면, 어느 시대쯤이면 퇴색될 것인지는 책을 덮고 새롭게 시작될 독자들의 이야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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