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의 정직한 목격자

# 나 다큐하고 있니

by 김은진

방송일을 그만둔 지금, 나는 가끔 내가 제작했던 프로그램을 포털에 검색해본다. 마치 옛 연인의 SNS를 찾아보는 것처럼 방송작가 시절이 생각나면 ‘별일 없나?’ 하는 마음으로 찾아보게 되는 것이다. 내 짧은 작가 생활 중에서 애증의 기억으로 남아있는 ‘PD수첩’을 검색해보다 기사 하나를 보게 됐다.


기사엔 낯익은 작가님들의 인터뷰가 실려 있었다. MBC 파업으로 제작이 중단된 시기, PD수첩 작가들도 제작거부에 동참한다는 내용이 담긴 인터뷰 기사였다.


MBC라서, <PD수첩>이라서 가능했던 아이템들은 김재철 사장으로 바뀌면서 순식간에 MBC라서, <PD수첩>이라서 불가능하게 됐다. 제보하기 위해 <PD수첩>을 찾는 전화는 울리지 않았다.
한순간에 다 무너졌다.
- “MBC라 죄송합니다,<그것이 알고 싶다>로 가세요” PD수첩의 자괴감 17.08.29 오마이뉴스-


기사를 읽는 동안 5년 전인 2012년 MBC 파업이 생각났다. 2012년 7월, MBC는 작가들이 파업에 뜻을 함께한다는 성명서를 냈다는 이유로 PD수첩에 일하던 작가 6명을 해고했다.


사실 작가는 MBC 직원이 아니기 때문에 파업에 동참해야 할 의무는 없었다. 작가 입장에선 파업이 달갑지 않을 수 있다. 왜냐하면 작가는 프리랜서이기 때문에 방송이 제작되지 않으면 원고료를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파업에 동참한다는 건, 그야말로 밥줄을 걸고 방송인으로서의 신념을 지키는 행동인 것이다.


PD수첩은 탐사보도 프로그램이다. 탐사보도 프로그램은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어느 정권이든 예외 없이 날카로운 눈으로 권력을 감시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배웠는데. 그렇게 권력을 감시하는 역할을 했다고 PD와 작가를 해고한 것이다.


MBC에서 일하는 작가들 전부가 모여 비상대책 회의를 하던 날. PD수첩의 메인 작가님들이 한 명씩 돌아가며 허망한 표정으로 앞으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이야기를 나눴다. PD수첩에서 무려 12년을 일 해온 메인작가님이 눈물을 보이며 착잡한 심정을 이야기하실 때는 나도 모르게 울컥했던 기억이 난다.


방송은 체력전이라며 담배를 끊고, 방송이 끝나면 항상 등산을 가시던 분. 혹여 PD수첩에 누가 될까 은행 대출도 받지 않으셨다는 작가님은 그 어떤 팀장과 PD들보다 가장 오래 PD수첩을 지켜 온 분이었다.


역대 최장 기간의 파업이 끝나고 PD수첩이 다시 방송을 시작했던 2013년에도 작가님은 팀에 돌아오지 못했다. 국장 선에서는 PD수첩 기존 작가 중 2명만 복귀할 수 있다고 못 박았다. 작가님이 배제된 이유는 유독 정권을 비판하는 아이템을 주로 해왔기 때문이었다.


PD수첩은 내가 TV를 보고 자라던 시절 그리고 방송작가를 꿈꾸던 시절 가장 선망하던 프로그램이었다. PD수첩이 밝혀낸 진실들은 그 자체로 드라마틱했고, 언젠가 방송일을 하게 된다면 PD수첩에서 일해보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모름지기 PD수첩이라면 쉽게 건드리지 못할 영역도 거침없이 방송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었다. 하지만 일할 당시의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내가 PD수첩 취재 작가로 일하던 때는 2013년 1월. 파업이 끝나고 PD수첩이 다시 제작에 들어갔을 시기였다. 파업 후의 여파로 아이템 검열은 더욱 심해졌다. 현 정권에서 싫어할 만한 아이템은 배제하고, 생활 밀착형 시사 이슈로 방송을 제작하라고 지시했다. 그래서 우리 팀에서 제작한 아이템들은 당시 사회 이슈였던 하우스푸어 현상, 주식방송 사기 사건, 재개발 재건축 조합 비리, 소자본 창업 분쟁들이었다.


‘생활 밀착형’시사 이슈들도 분명 시청자의 알 권리를 위해 보도가 되어야 하는 내용이지만 나는 무척 아쉬웠다. 시사프로그램이라면 분야를 막론하고 비판의 칼날을 겨눌 수 있어야 하는데 말이다.


PD수첩의 슬로건은 ‘우리 시대의 정직한 목격자.’ 밤낮으로 일하다 잠시 고개를 들어 자리 위에 걸린 슬로건을 바라볼 때면 왠지 마음이 뭉클해지곤 했었다. 시사교양국 안에서도 작가들의 일이 많아 새벽까지 늘 불이 켜져 있던 자리. 낮에는 종일 전화를 붙들고 인터뷰를 해줄 취재원을 찾아내고, 저녁엔 관련 전문가에게 자문을 듣고 내용을 정리하느라 매번 나와 막내 작가들은 막차를 놓치기 일쑤였다. 방송 5일 전부터는 밤샘 업무에 집에 가지 못하고 회사 숙직실에서 쪽잠을 청하면서도 다들 쉽게 그만두지 못했다.


가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사람들은 무엇을 위해 이렇게 일하는 걸까. 자기 생활도 없이, 온갖 협박에 노출되면서까지. 무엇을 위해, 도대체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고생을 자처하는 걸까. 일한 만큼 경제적인 보상도 없고 언제 잘릴지 모르는 프리랜서 신분인데 말이다.


그래도 많은 탐사보도 프로그램의 작가들이 밤새우며 일했던 이유는 시청자의 알 권리를 위해 진실을 보도한다는 자긍심이었을 것이다. 내가 하는 일이 조금이라도 나은 세상을 만드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

그 마음이 모여 우리 시대의 정직한 목격자가 만들어진 게 아닐까.


*2017년 11월 MBC 파업이 종료되었고, 방송이 중단되었던 PD수첩은 12월 방송을 재개했다. 5년간 PD수첩으로 돌아오지 못했던 메인 작가님은 ‘MBC 몰락, 7년의 기록’ 방송을 시작으로 PD수첩에 복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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