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낳을 곳이 사라지고 있다

by 김은진

방송이 끝난 후 다음 아이템을 정하기 위한 회의 시간. 각자가 생각해 온 아이템을 돌아가면서 이야기하는데 딱히 "오 괜찮다!" 하는 아이템은 나오지 않자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때 메인 작가님이 한 통계자료를 보여주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산부인과가 많이 없어지고 있어요. 그러면서 산모 사망률도 높아지고 있고요. 피디수첩에서 다뤄볼 만할 것 같아요. 방송에선 나온 적이 없어서"

다들 솔깃해하며 메인 작가님이 모아 온 자료들을 확인했다. 통계자료는 분만하기 위해선 차로 1시간 이상 가야 하는 분만 취약지(시, 군, 구)가 30곳이 넘었고 매년 산모 사망률이 증가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분만처럼 긴급 상황에 차로 1시간 정도 가야 한다는 건 상당히 위험한 일이다. 우리 팀은 만장일치로 산부인과 부족 현상에 대해 다뤄보기로 결정했다. 산부인과 의사협회에 접촉해 필요한 자료들을 받기로 하고 나와 다른 취재작가는 실제 출산을 앞둔 분만 취약지의 산모들을 찾아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분만 취약지에 대해 자료조사를 해보니 ‘찾아가는 산부인과'라고 해서 매달 2번씩 보건소에서 무료 검진을 해주고 있다는 기사를 발견했다. 분만 취약지의 산모들이 모이는 곳! 여기서 사례자를 찾을 수 있겠다 싶었다.

분만 취약지역의 보건소를 리스트업하고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MBC 시사교양국입니다. 지방에서 출산을 준비하는 산모들의 모습을 담으려고 하거든요. 여기 보건소에서 하는 찾아가는 산부인과 진료 오는 산모분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요.” 라며 조심스럽게 운을 띄었다.


(*보통 취재를 할 때 프로그램 이름을 처음부터 밝히지 않는다. 시작부터 취재를 거절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차라리 섭외 해 놓고 나중에 상황을 말하는 게 성공 확률이 높기 때문!)


그렇게 보건소에 전화를 돌리고 난 후, 생각보다 여러 지방 도시의 보건소로부터 출산을 앞둔 산모들의 연락처를 건네받을 수 있었다. 섭외 기간 동안 총 열 명 가까이 산모들과 통화를 했는데 하나 같이 지방에서 출산을 하는 것에 대해 불편해하는 것을 넘어 상당한 불안함을 가지고 있었다.


인구 11만의 도시 영주. 영주시의 마지막 분만 병원이 분만을 포기하면서, 이 지역 산모들은 대도시로 원치 않는 원정출산을 떠나고 있다.

- 내레이션 중에서-


-보건복지부 조사에 따르면 지역 내에 산부인과가 없거나 있어도 분만시설이 없는 분만 취약이 전국 37곳 (43%)에 이른다 (2017년 기준)-


군인인 남편을 따라 강원도 양구로 오게 된 세린 씨. 임신테스트기로 임신 사실을 알았지만 한 달간 산부인과 검진을 받지 못했다. 이사 오기 전엔 몰랐는데 양구에는 산부인과가 없었던 것이다. 다른 지역에 있는 산부인과에 가려면 버스를 타고 한 시간 넘게 가야 했고, 혼자서 긴 시간 버스를 타고 갈 엄두가 나지 않았던 그녀는 남편이 휴가 받을 날만을 기다렸고 그 사이 임신 테스트기만 네 개를 더 샀다고 했다. 친정이 있는 대전에서 출산 예정이라는 그녀는 한 달에 한번 진료를 위해 대전으로 향했다.

역시 산부인과가 없는 경북 군위군에 사는 효진 씨. 한 번의 유산을 경험한 이후 안정기에 접어들었음에도 매주 대구로 산부인과 진료를 다니고 있었다. 그녀는 혹시 산부인과가 가까웠다면 유산을 막을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무겁다며 인터뷰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당시 산부인과가 대중교통을 타고 2시간 거리에 있었기 때문에 검진을 며칠 미루다 보니 아이를 잃은 것 같다는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사실 산모분들을 소개받아 취재를 할 때 산부인과 부족 현상에 대해 문제점을 지적하는 프로그램이라고 밝히지 못해 혹시 피디수첩이라는 걸 밝히면 촬영을 취소하는 분들이 있을까 봐 좀 불안했었다. 출산 과정에 대한 긍정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의 유산 경험, 출산과정의 힘듦을 방송에 말하는 게 불편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행히 모든 산모들이 산부인과 부족 현상에 대한 내용이 꼭 방송되어야 한다며 문제에 공감했고, 촬영에 도움을 주어 무사히 방송을 제작할 수 있었다.

방송에서 미처 소개되지 않았던 산모들도 하나같이 출산을 준비하는 과정이 힘들고 버거워 보였다. 출산 때문에 주말 부부를 하는 건 양호한 편에 속하고 구급차를 타고 한 시간 가량을 타고 가 겨우 고비를 넘기는 위험천만한 출산을 경험한 사례도 흔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위험할 수 있는 출산에 어째서 우리는 이토록 무관심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사람의 생명이 달린 문제에 우리가 너무 관심을 두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맨날 출산율이 낮아지고 있다, 인구절벽이다 이런 이야기만 해왔지 실제 출산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는 무지했고 무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여성인 나조차도 분만 취약지 통계자료를 보고 의문을 갖지 않았다면, 지방 보건소를 통해 실제 소도시에 사는 산모들을 취재하지 못했다면 지금까지도 아마 몰랐을 것이다. TV 뉴스나 신문에서도 자세히 다뤄지지 않은 문제였기 때문이다. 사실 한 번의 방송으로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 그래도 사람들이 몰랐던, 관심 갖지 않았던 문제를 수면 위에 올린다는 게 새삼 당연하지만 중요하다는 걸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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