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 다큐하고 있니
아침방송팀에서 일하던 시절, 출근하면 제일 먼저 해야 하는 일이 있었다. 그날의 방송 시청률을 사무실 칠판에 적어 놓는 일. 그리고 매일의 방송 큐시트를 파일에 꽂아두는 일이었다. A4 용지 한 장 짜리 방송 큐시트를 살펴보면, 그날의 방송이 어떤 내용으로 구성이 되었는지 살펴볼 수가 있다.
전날 일어난 사건사고부터 가족 간에 일어나는 심각한 고민을 전문가와 함께 상담받아보는 코너, 그리고 시청자의 제보를 받아서 취재하는 코너까지. 아침방송을 일 년 정도 제작하다 보니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가장 빠르게, 그리고 자극적으로 볼 수 있는 게 아침방송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방송팀에서 함께 일했던 작가는 큐시트를 보며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방송 큐시트만 봐도 우리나라의 문제를 볼 수 있지 않아? 이렇게 매번 반복된다는 게 신기할 정도야 ”
·‘수은 테러’ 대피 소동, 전 남자 친구의 보복? ·가족이 마음만 먹으면 끝? ‘정신병원 강제입원’
·지하철은 불안철? 문에 끼인 채 끌려간 할머니! ·정으로 꿔준 돈이 살인까지? 이성간 위험한 돈 관계
큐시트만 보면 이게 오늘 방송인지 몇 년 전 방송인지 모를 정도로 매번 비슷한 사건 사고와 가족 문제가 반복되고 있었다. 그리고 제목만 봐도 느껴지듯이 한결같이 자극적인 내용으로 구성되었다.
아침방송에서 가장 자극적인 코너는 <新가족기획>이었다. <新가족기획>은 가족 간에 풀리지 않는 문제를 상담받고 나아지는 과정을 보여주는 코너였다. 그래서 출연자 섭외가 어려웠다. 선뜻 자신의 치부를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 드물기 때문이다.
사실 자신들의 치부를 방송에 내보이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당시엔 방송까지 나와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지금에서야 그만큼 간절하게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마음에 방송의 문을 두드린 게 아닐까 어렴풋이 짐작해 볼 따름이다.
내가 <新가족기획> 코너에서 담당한 사연은 이랬다. 사연자는 동거하고 있는 애인에게 자신이 너무 화를 많이 내고, 감정 조절이 안 된다고. 심리상담을 받고 애인과 사이를 회복해 무사히 결혼하고 싶다며 사연을 남겼다. 전화통화로 간단하게 상황을 들은 나와 담당 PD는 그날 퇴근길에 사연자를 만나러 갔다.
방송을 아직 확정 짓지 못한 채 갈등하는 사연자에게 우리는 “스스로 변화하려는 모습을 상대방에게 방송을 통해 보여줄 수도 있고, 상담을 받으면서 문제를 해결해 나가 보자”며 설득했다.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누고 사연자는 고민 끝에 촬영을 허락했다. 우리는 집 안에 카메라를 설치하며 평소처럼 행동해야 한다고, 카메라가 있는 걸 의식해서 평소와 다르게 행동하면 안 된다고 주의를 주었다. 며칠이 지난 후 담당 PD는 사연자의 집에 방문해 촬영본을 가져왔고, 우리는 사무실에서 그 영상을 함께 확인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세네”
촬영된 화면을 확인하며 PD는 말했다. 화면에는 사연자와 그의 애인이 다투는 장면이 담겨있었다. 담당 PD는 대화를 나누다 욕설을 내뱉는 사연자의 모습이 담긴 화면을 따로 편집해두었다. 나는 이어질 사연자의 인터뷰 촬영과 상담일정을 알아봤다. 상담은 센터의 도움을 받아 진행했는데, 추후 사연자가 원할 경우 3회까지는 무료로 상담할 수 있도록 연결해주었다. 그게 우리가 출연자에게 제공할 수 있는 공식적인 혜택이었다.
아침방송의 담당 CP는 욕설이나 삐 처리된 음성이 나오고, 서로 다투는 모습이 등장하는 센 그림이 이 방송의 재미라고 했다. 사실 처음엔 이 이야기가 의아했다.
아침부터 남이 싸우고 욕하는 모습을 사람들이 보고 싶어 할까 의문이었다. 하지만 매번 분당 시청률 표를 확인해보면 꼭 자극적인 화면에서 그래프가 높게 올라갔다. 신기했다. 좋은 이야기보다 나쁜 이야기에 더 끌리는 게 사람의 마음인 걸까? 방송을 만들면서도 혼란스러웠다
그렇게 <新가족기획> 코너를 촬영해 방송에 내보내면, 다행스럽게도 관계가 나아진 가족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았다. 그렇지 못한 경우, 촬영한 내용이 방송되는 걸 사연자가 원치 않아했다.
그럴 때마다 우리의 유일한 대응은 “다시 보기 내려 드릴게요”였다.
이미 촬영을 진행했으니 방송을 안 내보낼 순 없고, 원한다면 다른 사람들이 나중에 찾아볼 수 있는 다시 보기 영상을 올리지 않는 게 우리가 사연자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기껏 밤을 새워 방송을 만들고 나서 사람들이 보지 못하게 막는 상황이 좀 웃기고 아이러니했다. 이런 상황이 자주 반복되다 보니 ‘과연 무엇을 위해 방송을 만드는 것일까?’ 심오한 주제까지 생각이 뻗어 나가게 되었다.
정말 방송을 내보내기 위해 방송을 만드는 느낌이랄까. 더 나아가서는 물론 사람들의 동의를 받고 진행된 촬영이지만 사람의 고민을 방송 소재로 쉽게 이용한다는 생각이 들면서 미안해지기 시작했다. 이런 방송을 만들고 싶었던 건 아닌데. 아마 이때부터였던 것 같다. 과연 이 길이 내 길이 맞을까 하는 고민이 시작된 시점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