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방송은 섭외 전쟁터

# 나 다큐하고 있니

by 김은진

4,50kg을 감량해 자랑스럽게 다이어트 성공담을 이야기하는 사람들. 이름은 들어봤지만 먹어본 적 없는 건강식품을 보여주며 오랜 지병을 이겨냈다는 사람들.


아마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채널을 돌리다 한 번쯤은 이들의 사연을 봤을 것이다. TV 속에는 항상 주변에선 볼 수 없는, 저런 사람이 진짜 있구나 싶은 남다른 사람들이 등장하곤 했다.


나는 항상 TV를 보며 궁금했다. 방송 제작진들은 이 사람들을 어떻게 찾아내는 걸까?


방송작가가 되고 보니 섭외는 (가장 중요하지만!) 정말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일 중 하나였다. 매번 새로운 아이템을 할 때마다 그 아이템에 맞는 출연자를 찾아야 하는 게 정말 고역이었다. 할 수 있다면 내가 나를 방송에 출연시키고 싶을 정도였다. 아침방송을 제작하면서 꽤 많은 사람을 섭외해야 했는데 그 가운데서도 가장 힘들었던 섭외가 있었다.


사연의 시작은 이랬다. 한 기사를 발견했는데 말린 토마토가 전립선 암에 효과가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 기사만 가지고 우리는 이 내용을 방송하기로 결정했다. 그리하여 나는 전립선 암 예방을 위해서 말린 토마토를 먹는 사람을 찾아야 했다.


정말 당시엔 황당하게 그지없던 미션이었다. 암 예방을 위해 말린 과일을 먹는 사람이 있을지, 그리고 그런 사람이 있다고 해도 과연 2,3일 안에 찾아낼 수 있을지가 의문이었다. 당시 나는 마치 로또의 기적을 바라는 마음으로 암 승리자 모임 카페에 글을 올렸다.


생과일보다 말린 과일이 영양가가 더 높고 암을 예방해주는 효과가 있습니다. 현재 환우님들 가운데서 '말린 과일'을 즐겨 드시는 분, 말린 과일을 섭취하신 후 암이 재발하지 않았거나 효과를 보신 분을 찾고 있습니다. 카페 환우님들 모두 암 극복하시고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카페 회원들의 비웃음을 사고도 남았을 아이템인데 다행히도 악플 세례는 면했다. 하지만 역시나 아무런 연락이 오지 않았다. 나는 2차 단계에 돌입해 블로그를 뒤지기 시작했다. ‘말린 토마토’, ‘토마토 건강’ 이렇게 키워드를 조합해서 검색하기 시작했고, 검색 결과로 나오는 게시물을 올린 사람에게 섭외 메일과 쪽지를 보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예상하듯이 말린 토마토를 먹어서 전립선암을 이겨낸 사람은 찾을 수 없었다.


그나마 찾은 사람은 과일을 말려 먹는 주부였다. 그 주부를 섭외해 남편 건강을 위해 토마토를 말려 먹는 콘셉트로 촬영했다.


이렇게 섭외는 마치 낚시처럼 여러 곳(기사·블로그·카페 게시물)에 밑밥을 뿌려놓고 기다렸다가 누군가 물기를 기다리는 정신 싸움이었다. 초조한 기다림 끝에 누군가가 기적처럼 연락을 주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그러다 끝내 연락이 오지 않는다면 미련 없이 포기하고 다른 아이템을 찾아야 하는 결정을 내리기도 한다.

아침방송에서는 이런 과정을 매주 한 번씩, 혹은 아이템이 엎어지면 두세 번씩 겪어야 했는데 그런 과정이 정신적으로 상당한 피로감을 주었다.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편하게 섭외하는 얕은 꼼수를 부리기도 했다.

내가 사용했던 꼼수는 바로 ‘엄마 찬스’였다. 아침방송에서는 요리, 살림법 등의 코너가 많아서 일반인 주부들을 섭외해야 하는 일이 많았다. 엄마의 전화 한 통이면 흔쾌히 부탁을 들어주는 엄마 친구들 덕분에, 나는 손쉽게 몇 번의 섭외를 해결했다. 나는 엄마로 하여금 친구들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게 만들었다. 그것도 모자라 엄마 친구들을 동원하고 난 후에는 엄마와 고모까지 출연시켰다.


사실 처음엔 죄책감도 안 들었다. 어쨌건 출연료로 3만 원을 지급하기도 했고, 나름 당당했다. ‘섭외만 하면 됐지 그게 누구든 무슨 상관이람!’ 이런 마인드였다. 그렇게 엄마를 출연시킨 촬영본을 보게 되었고, 나는 그제야 내가 얼마나 못난 짓을 한 건지 반성했다.


방송에서 주방의 달인으로 소개된 엄마는 식초와 베이킹소다를 섞어 "저의 살림 비결은 바로 이거예요~!" 라며 PD가 시키는 대로 멘트를 했다. 몇 번의 NG 끝에 겨우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는 모습을 영상으로 확인하는데 맨 처음엔 엄마가 등장해 어색하게 멘트 하는 게 그저 웃기기만 했다. 그 뒤에 이어지는 엄마의 모습은 베이킹소다와 식초를 섞은 액체를 가지고 싱크대와 냉장고 구석구석을 닦는 모습이었다.


무릎과 허리가 안 좋아 평소에 힘들어하던 엄마는 딸이 만드는 방송을 위해 바닥에 쭈그려 앉아 힘들게 청소를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는 게 불편해 테이프를 빨리 감기 했지만, 청소하는 모습만 무려 20분이 넘게 이어졌다.


“도대체 청소하는 걸 왜 이렇게 오래 시킨 거야.”


괜히 PD에게 화가 났다. 영상 속 엄마의 모습을 계속 확인하는데 마음이 싱숭생숭해졌다. 그제야 내 일 때문에 엄마를 고생시킨 상황이 정확히 보였다. 섭외 전쟁터에서 비겁하게 살아남은 나는 부끄러운 불효자가 되었다.

나의 무능력 때문에. 방송이 뭐라고. 엄마와 엄마의 친구들, 친척까지 불러 모아 촬영을 해야 하는 건지. 출연자 섭외 하나도 힘들어하면서 방송일을 계속하는 게 과연 옳은 건지. 이 일을 그만둬야 되는 건 아닌지 회의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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