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365일 TV를 틀면 볼 수 있는 수많은 방송들. 이 방송들을 누가 만드는지 아마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다. 물론 방송국 직원인 프로듀서가 총책임을 맡아 방송을 만들지만 절대 혼자 방송을 만들 순 없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하나의 방송을 만들지만 흔히 사람들에게 알려진 방송 제작진이라 하면 PD, 구성을 짜는 작가, 촬영을 담당하는 카메라 감독 정도를 손에 꼽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 말고도 음식에 적게 들어가도 꼭 필요한 양념처럼 작지만 큰 역할을 해주는 사람들이 있다. 나 역시 방송을 제작하지 않았다면 아마 몰랐을 다양한 방송국 사람들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방송국에서 일하는 사람들 중 가장 흥미로웠던 직업은 바로 몰카 전문 VJ였다. PD수첩에서 일할 때였다. 탐사보도 프로그램의 특성상 어딘가에 잠입하거나 몰래 찍어와야 할 상황이 자주 생겼더랬다. 매번 그런 중요한 취재가 잡히면 구세주처럼 연락하는 분이 있었다. 바로 국내 유일! 몰카 전문 아줌마 VJ였다.
이분으로 말할 것 같으면 무려 20년 가까이 몰래카메라 취재 경력을 가지고 있는 분이었는데 노래방 도우미, 산모 변장 등을 불사하며 각종 음식점, 여타 업소에 위장 취업해 그곳에서 벌어지는 악행들을 카메라에 담아왔다.
겉으로 봤을 땐 친근한 이웃집 아주머니처럼 보이는 이분은 PD와 작가들도 엄지를 지켜 들 정도로 잠입취재의 달인이었다. (아마 주변 어디에서든 볼 수 있는 외모와 성품 덕분에 아무런 의심도 사지 않았을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재개발·재건축 비리 관련 취재 때 녹즙 아주머니 행세를 하며 사무실로 들어가 한 명씩 친근하게 말을 붙이며 안경 몰카로 (안경대 옆 나사 구멍처럼 작은 렌즈가 달려있다) 사무실 구석구석의 모습과 책상 위에 놓인 문서들까지 촬영해 온 모습을 보고 혀를 내둘렀었다. 보통 몰래카메라 촬영을 보내기 전에 담당 취재작가가 VJ에게 촬영에 대해 설명을 해주는데 이분은 워낙 베테랑이다 보니 취재작가가 1을 설명해도 알아서 10을 만들어오는 분이어서 경력 많은 PD들도 많이 의지했다.
까칠한 방송국 사람들을 매번 넉살 좋게 받아주고 특유의 엄마 말투로 취재작가들에게 “일하느라 많이 힘들지?” 하며 따뜻한 말을 건네주곤 하셨던 게 생각난다. 자기 딸도 방송작가 지망생이라 견학시키려고 함께 왔다며 다정하게 딸과 방송국을 오고 가던 모습도.
두 번째로 소개하고 싶은 사람은 방송자막 기사님이다. 막내 작가가 방송 마지막에 하는 작업이 바로 화면에 들어갈 자막을 쓰는 일인데, 자막 기사님은 막내작가가 쓴 자막을 영상에 맞게 넣어주는 일을 해준다.
보통 제작 스케줄상 자막 작업이 막바지에 급하게 이뤄지다 보니 오탈자나 띄어쓰기가 잘못될 때가 많은데, 그런 잘못된 자막 실수들을 교정해주고 효과적인 폰트로 강조하며 넣어주는 막내작가에겐 무척 고맙고 든든한 존재였다.
내가 방송국에서 일할 땐 거의 한 분이 예능, 교양 분야를 통틀어 작업하시곤 했었다. 40대 정도 되는 긴 머리의 남성분이셨는데 항상 한쪽 구석에서 침착하게 선생님처럼 잘못된 걸 설명해주시곤 했었다.
더 놀라웠던 건 국문학과나 관련 전공자도 아니고 음악을 하시던 분인데 (그것도 무려 락밴드!!) 우연히 아르바이트로 참여하게 된 후 개인적으로 문법을 공부하며 방송 자막일을 해오고 있었던 사실이었다. 사실 자막을 넣는 과정(종합편집)은 방송의 가장 마지막 단계에 이뤄지기 때문에 매번 촌각을 다투고 사람들끼리 고성도 오가고 예민해져 있는 다소 살벌한 분위기다. 그럼에도 다른 사람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혼자 한쪽 구석 컴퓨터 앞에서 조용히 자막을 교정 보며 작업하던 뒷모습이 떠오른다.
마지막으로 이야기할 사람은 바로 음악감독님이다. 요즘은 드라마뿐 아니라 예능, 교양, 심지어 뉴스룸 같은 보도 프로그램에서도 음악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는걸 자주 볼 수 있다. 사실 방송을 만들기 전까진 교양 프로그램에서 음악이 배경에 깔리는지 인식하지 못했었다. 방송에 집중해 내용을 따라가다 보면 음악이 전혀 들리지 않았다.
내가 방송에서 음악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 건 철저히 방송을 제작하게 되면서부터다. 보통의 편집 과정은 일단 촬영한 내용을 기승전결에 맞춰 잘 편집하고 설명이 필요한 부분에 적절히 내레이션을 입힌다. 그렇게 1차로 만들어진 영상을 확인해보면 대게 지루하고 심심하다. 그런데 영상에 음악을 입히면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영상이 만들어진다. 마치 흑백인 영화가 갑자기 컬러 화면으로 바뀌면서 생동감을 갖는 것처럼 말이다.
음악을 입히는 작업은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아침방송에서도 빠지지 않았다. 아침방송은 항상 빠듯하게 돌아가다 보니 대본을 쓰는 시간도 매번 빠듯했었다. 그럴 때마다 메인작가님은 대본에 자신 없으면 차라리 빨리 음악감독님에게 대본을 넘겨서 음악을 잘 고르게 하는 게 방송엔 효과적이라고 매번 강조하곤 했었다. 음악감독님은 작가들이 쓴 대본이 나와야 방송 내용과 내레이션을 읽고 영상에 맞는 음악을 고르기 때문에 대본이 늦게 전달되면 VCR화면에 음악이 깔리지 못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벌어지곤 했다. 잘 선곡된 음악은 그냥 채워진 한 문장보다 더 확실하게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는 걸 시간이 부족해 의미 없는 말로 채워진 내가 쓴 VCR 영상을 보고 깨달았다.
방송은 정말 여러 사람이 만들어내는 하나의 결과물이고, 참여하는 모든 사람이 돋보이진 않지만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부분이 없다는 걸 깨닫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