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 다큐하고 있니
시청자들은 모르겠지만 교양 프로그램에서도 PPL이 들어가는 협찬방송이 있다. 교양 프로그램에 어떻게 PPL이 들어갈까 싶겠지만 과정은 이렇다. 내가 아침방송팀에 처음 들어갔을 당시, 아이템을 정하는 회의에 참여하게 됐다. PD와 작가가 함께 모여있는 자리에서 팀장은 말했다.
협찬 코너가 제작될 거라고. 대행사에서 대략적 인구 성과 원하는 내용을 정리해줄 것이라고 설명했다. 나는 팀장의 설명을 듣고도 교양 프로그램에서 왜 협찬 방송을 하는 것인지, 이 협찬 방송이 어떻게 진행될지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았다.
‘다양한 시사, 이유, 정보를 르포 형식으로 전달한다’는 이 프로그램에서 협찬 코너라니! 당시 나는 아침방송을 처음 제작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의아했다. 하지만 작가들을 통해 아침·저녁 방송에서는 협찬 코너가 꽤 자주 있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얼마 후, 나 역시 협찬 코너 제작을 맡게 되었다. 주제는 유아 안전용품의 안전성에 대한 내용이었다. 협찬사는 유아 안전용품을 만드는 회사였는데, 유아용품도 꼼꼼하게 안전 인증을 받은 제품을 사용해야 한다는 걸 방송으로 홍보하고 싶어 했다. (정리하자면 자신들의 제품을 사용하는 게 좋다는 정보를 은연중에 방송에 노출하는 코너를 제안한 것이다.)
아침, 저녁 방송의 제작사들은 매주 한 편의 방송 (코너는 무려 7개)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매번 아이템 선정에 애를 먹는다. 그런데 협찬 코너를 하게 되면, 한 코너라도 아이템 찾을 수고가 줄어드니 방송 제작사 입장에선 마다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게다가 제작비처럼 최소 몇백만 원 이상을 지원받을 수 있으니 1석 2조인 셈이다. 협찬 방송은 협찬사와 직접 커뮤니케이션하지 않고 방송 협찬을 연결해주는 언론 홍보대행사와 구성안을 작업했다.
물론, 대행사에서는 노골적으로 제품을 홍보해달라는 무리한 요구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협찬사의 컨펌이 필요하다며 제작 과정의 세세한 내용까지 보고해야 하고, 대본의 단어 하나하나까지 검토받는 과정이 썩 좋진 않았다. 최종 대본도 홍보 대행사의 담당자의 컨펌이 필요했다. 방송 아이템을 찾아야 하는 부담은 덜었지만 방송을 내보내는 순간까지 왠지 모를 꺼림칙한 기분이 들었다.
이 찝찝함은 뭘까? 생각을 곰곰이 해보니 시청자들을 속인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인 것 같았다. 이 코너가 협찬으로 이뤄졌다는 걸 굳이 방송에서 명시하지 않으니 시청자들은 보이는 그대로 아무 의심 없이 정보를 받아들이게 될 테니 말이다.
돈을 받고 해당 제품을 노출시키는 방송을 제작하는 것. 공중파 방송이 홍보의 도구로 사용되는 걸 직접 경험한 터라 뒷맛이 씁쓸한 것이었다. 문득 이런 교양 프로그램에서의 PPL에 대해 사람들이 알고 있을까 궁금해 포털에 검색을 해봤다. 그러다 콘텐츠 제작사에서 블로그에 올려놓은 홍보용 게시물을 발견했다.
광고주의 비용적인 부담은 덜고, 시청자들이 자연스럽게 인식하는 교양, 정보 프로그램!
주부 시청자층이 많이 시청하는 프로그램의 장르이니 앞으로도 롱런할 교양, 정보 프로그램을 통해
PPL을 진행하시는 건 어떨까요?
이렇게 암암리에 시청자들에게 공개되지 않는 협찬 방송은 지금도 이뤄지고 있다. 교양 프로그램에서 PPL이 들어가는 건,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자연스럽게 화면으로 제품을 노출하는 것과 협찬비를 받고 그 제품을 자연스럽게 홍보하기 위해 한 코너를 할당해 방송을 만드는 건 차이가 크다.
시청자들이 알아야 하는 정보를 객관적으로 전달해야 하는 방송에서 정보의 선별이 제작진의 주관이 아닌 자본의 힘으로 결정되는 현실이 씁쓸했다. 그리고 그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 의문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