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방송일을 하는데요

# 나 다큐하고 있니

by 김은진

처음 보는 사람에게 직업을 이야기할 때, 나는 이렇게 이야기하곤 했다.


저는 방송국에서 일해요


직업이 생기니 생각보다 내 일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가 많았다. 가령 소개팅을 나간다거나, 대학 시절 활동했던 동아리 모임에 오랜만에 나간다거나 하는 일이 종종 생겼다. 보통 그날 처음 본 소개팅남이나, 얼굴도 몰랐던 후배들한테 나를 소개할 때 가장 먼저 이야기하게 되는 건 나이나 이름보다 오히려 직업이었다.


내가 방송일을 한다고 운을 떼면, 다들 눈을 동그랗게 뜨고 호기심 어린 눈빛을 보내곤 했다. 대화를 하는 상대방이 방송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거의 99%가 내 직업에 대해 관심을 보였다.


“방송작가는 처음 만나본다”, “방송국에서 일하면 연예인 많이 보냐”라는 질문을 시작으로 그날 대화의 주제는 ‘방송작가’와 ‘방송국’으로 모아지곤 했다. 그러면서 이어지는 질문들. “방송작가를 왜 하시게 된 거냐” “어느 프로그램을 했냐” 와 같은 질문에, 나는 신나게 방송국 입성기를 흥미진진하게 들려주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이렇게 내 일에 대해 사람들이 신기해하고 궁금해하는 걸 즐겼다. TV를 안 보는 사람은 거의 없으니까. 어느 연령대의 누구와 만나도 어색함 없이 내 일에 대한 이야기로 즐겁게 대화를 이어갈 수 있었다. 그런 대화가 쌓일수록, 내 직업이 처음 만나는 사람과도 즐겁게 이야기하기에 좋은 직업이구나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의 친한 동기 언니 L이 말했다.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아침시간에 영어학원을 등록했는데 (방송국은 거의 10시 출근이다. 왜냐면 정해진 퇴근시간이 없기 때문……) 다른 수강생들에게 방송작가라는 직업을 이야기하니 다들 너무 신기해하고 궁금해하더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우스갯소리를 덧붙였다.


내가 방송작가라고 다른 사람한테 말하고 다니려고 이 일을 하나 싶었다니까

언니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나 역시 비슷한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언젠가 내 친한 친구 B양이 나에게 말했다. “너는 사람들한테 네 직업을 이야기를 할 때 눈이 반짝이는 거 알아?” 그 말을 듣고 골똘히 생각해봤다.


나는 내 일을 좋아하는 걸까, 내 직업을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는 걸까


솔직히 고백하면 후자가 더 컸던 것 같다. 정작 일할 때는 “못 해 먹겠다, 때려치워야지”라고 징징대며 일하면서, 낯선 사람들에게 내 직업을 이야기할 때는 항상 신이 나서 이야기했다.


나는 내 일을 좋아한다기보다, 방송작가라는 남들이 조금은 신기해할 만한 직업을 가진 나의 모습을 좋아했구나 싶었다. 결국 나는 재미있어 보이는 일, 힘들지만 보람되어 보이는 일을 하는 나를 사람들한테 자랑하고 싶었던 거구나.


어쩌면 나는 내 일을 진심으로 좋아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더 힘들었을까?


마음에 아무런 거리낌 없이 “나는 이 일을 정말 좋아한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부럽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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