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같은 사랑을 찾아요

전직 방송작가의 다큐 제작기 #4

by 김은진

사실 한 편의 방송을 털고 나면 방송했던 아이템에 대해서도 여러 감정이 들지만, 상황이 되지 않아 방송하지 못했던 아이템도 괜스레 떠오르면서 여러 상념에 빠지게 된다. 나에겐 ‘휴먼다큐 사랑’ 이 특히 그랬다. 방송된 아이템은 두가지였지만 여러 이유로 방송 촬영이 성사되지 못하고 취재 단계에서 끝난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특히 출연자 선정에 무척 공을 들였지만 적당한 출연자를 찾지 못해 무산된 <남녀 간의 사랑> 이 미련이 남는다.


당시 피디는 나에게 “왜 남녀 간의 사랑 있잖아, 영화 같고 아름다운 그런 사랑!” 이라며 구체적인 설명 없이 ‘아름다운 사랑을 찾아서 내 앞에 내놔라’ 태도였는데 당시 나는 신참 막내작가였고 어떻게든 ‘영화 같은 사랑’을 찾아와서 나의 능력을 인정받아야 했다.

(*취재작가의 가장 큰 역할 중 하나가 아이템을 찾는 것이고 그걸로 취재작가의 능력 유무를 판가름하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아름다운... 영화 같은 사랑을 하는 남녀를 도대체 어떻게 찾아야 되는 건지. 나의 기나긴 고민이 시작되었다. 뾰족한 방법이 없으니 주변 지인들에게 무작정 ‘혹시 주변에 아름다운 사랑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없냐’며 묻기 시작했고,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으로 포털에 ‘아름다운 사랑’, ‘위대한 사랑’ ‘반대 극복 사랑’ 등 단어를 조합해 검색하는 삽질을 한 달 정도 했을 때였다. 그러다 운명같이 내 눈에 걸려든 기사가 하나 있었다. 기사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았다.


태어나자마자 버려져 장애인 생활시설에서 23년간 살아온 여자가 있다. 그녀는 뇌병변 장애를 가지고 있었는데 시설 직원들에게 폭력을 당하고, 제대로 교육도 받지 못한 채 살아왔다. 그러던 어느 날 시설 인권연대에서 온 한 남자를 만나게 되었다. 남자는 대학생 시절부터 장애인 야학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시설에서 부당한 처우를 받고 있는 장애인들을 탈출시키는 일을 하고 있었고, 여자를 시설에서 탈출시켰다. 그렇게 인연이 된 그들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다.


기사를 보고 나는 이 사람들이다! 싶었다. 장애를 가지고 있는 여자와 그 여자를 시설에서 구출해낸 남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연인인 경우 대부분 남자가 장애인이고 여자가 비장애인인 경우가 많은데 이 커플의 경우는 반대니까 더 끌렸다. 나이도 여자가 스물셋, 남자가 서른하나.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에 나오는 주인공들이 생각났다. 이 둘의 이야기를 좀 더 알아봐야겠다 싶었고 남자가 일하고 있는 야학의 전화번호를 찾아 연락했다.


통화를 해보니 아직도 사귀고 있는 사이라고 했고 방송 촬영과 관련된 미팅을 이야기했더니 흔쾌히 수락해주었다. 나는 신이 나서 담당 피디에게 대박을 찾았다며 떠들었는데, 조용히 이야기를 듣던 피디의 첫마디는 “이 여자 말하는 게 가능해?”였다. "어... 그게..." 라며 내가 확답을 못하자 담당 피디는 만나서 제일 중요한 건 여자가 스스로 자신의 감정을 말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고 그래야 다큐 촬영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했다. 다큐멘터리의 주인공 본인이 자신의 입으로 감정을 이야기해야 사람들이 몰입할 수 있다는 이유였다.


내심 불안해진 나는 남자에게 미팅 장소를 다시 확인하는 척하며 전화를 걸어 은근슬쩍 “ 저.. 근데 두 분이 의사소통은 잘 되시는 거죠?” 물었다. 남자는 “네 당연하죠”라고 대답했다. 나는 그날의 업무를 마치고 편안한 마음으로 현실판 조제와 츠네오를 만나러 갔다.


센터에 도착하자 통화했던 남자가 조금 쑥스러워하며 문을 열어주었다. 남자는 생각보다 더 앳돼고 학생 같은 모습이었고 나는 방송국에서 온 사람이라는 신뢰감을 주고 싶어 아카데미 시절 과제로 만들었던 내 돈 주고 만든 명함을 건네며 인사했다. 여자 친구는 곧 올 거라고 해서 같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문을 열고 들어오는 여자의 모습을 보자마자 나는 당황했다.


그녀는 생각했던 것보다 더 움직임이 힘든 상태였다. 휠체어를 끌고 들어오는 활동가와 휠체어에 탄 그녀가 나를 보며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하는데, 놀랐던 건 그녀가 다른사람과의 의사소통이 힘들정도로 말이 많이 어눌했기 때문이었다.


정말 미안하게도 나는 그날 그녀가 했던 이야기를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 그때마다 신기할 정도로 옆에서 바로 그녀가 한 말을 전달해주는 남자가 정말 신기했다. ‘아 이런 게 사랑의 힘인 걸까’ 싶을 정도로. 어떻게 저 말들을 다 알아들을 수 있는 건가 싶었다.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녀와의 대화를 여러 번 시도했지만 누가 봐도 그녀는 인터뷰 촬영을 불가능할 정도로 장애가 심한 상태였다. 그들과 대화를 이어나가는 와중에도 나는 ‘이 사람들로 촬영을 할 방법은 없을까? 그럼 다른 사람들을 찾아야 하나?’ 머리 속에서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그러면서도 어쨌건 취재는 계속해야 했으니 질문을 계속 했다.


그러다 “결혼을 할 생각 있느냐, 결혼을 집안에서 반대하진 않느냐, 결혼 허락은 어떻게 받을 거냐” 등의 다소 무례한 질문까지 해버렸다. 그 사람들을 과연 촬영할 수 있을지 머리 속으로는 간을 보면서, 끊임없이 질문을 하는 내 모습이 조금 야비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방송을 빌미로 무례한 질문을 던져도 두 분은 진지하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차근차근 대답해주었다.

“아무래도 바로 결혼하진 못할 것 같다. 여자 친구가 좀 더 자립할 수 있게끔 훈련을 시키고 있고 혼자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많아질 때 결혼하고 싶다. 사실 부모님이 반대를 하긴 하지만 조금씩 설득하고 있다.”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서로 다정하게 바라봤다. 그러면서 남자는 담담한 표정으로 한 마디를 얹었다.

“사실 휴먼다큐 사랑이 좀 힘든 사람들이라 해야 하나? 불쌍한 사람들 위주로 나오던데, 사실 저흰 불쌍하지 않거든요.”라고 말했다.


순간 나는 당황하며 “아... 저희가 '휴먼다큐'라서 남다른 사연을 가진 분들이 나오니 그렇게 느끼실 수 있긴 한데요” 하며 해명을 시작했지만 좀 뜨끔했다. 연인 중 한 명이 장애를 가지고 있으니까 그들을 보며 내 멋대로 주변의 편견과 반대를 비롯한 온갖 역경을 극복해나가는 영화같은 사랑 이야기를 만들면 되겠다고 생각한 걸 들킨것 같았다.

남자는 자신들은 정말 평범하다고 그냥 보통의 2,30대 커플처럼 평범하게 사랑하고 있다고 이야기하는데 그제서야 나의 편견 어린 생각들이 부끄러웠다. 취재 후 집에 돌아가는 길. 대화 속에서 내가 던진 무례한 질문들에 혹여라도 마음이 상하지 않을까 내심 마음이 무거웠고, 그들에게 더 이상의 컨택은 하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어리숙하고 미숙했다. 방송을 만들면서도 나는 얼마나 편견 어린 생각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접근했을까? 방송 때문이라는 이유로 내가 만난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이 실례되는 말을 하고, 묻지 말아야 할 것을 물어왔을지.....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면 정말 한 없이 나한테 부끄러워진다. 핵심적이고 날카로운 질문이라는 자뻑으로 혹시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하진 않았는지, 사람들을 불쾌하게 만든건 아닌지 여러 생각이 꼬리를 물고 늘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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