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이 없다면 대한민국은 더 행복할 것이다
*** 개인적이고 두서없는 글입니다.
나는 설날이 싫다.
삼십몇년을 살면서 설날을 좋아한 적은 정말 드물다. 좋아했던 적은 오로지 아무 데도 가지 않고 혼자 쉬었을 때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나는 설날이면 아빠의 가르침에 따라 아빠의 고향인 경상북도 문경에 가야 했다. 그곳에 가는 건 고역이었다.
그리고 결혼을 하고는 설날에 시댁 고향인 여주에 차례를 지내러 가고 그다음 날 친정에 간다. 이렇게 3년 보냈다. 역시 싫다.
1. 지금처럼 고속도로가 만들어지지 않았던 옛날엔 가는 길에만 5~7시간이 소요됐다. 엉덩이가 배기고 멀미가 나고 힘들었다.
2. 큰아버지댁은 문경에서도 한참을 들어가야 하는 시골집이었다. 안방과 사랑방 2방에서 모두가 모이는 곳이었다. 다닥다닥 붙어서 잠을 자는 게 쉽지 않았다.
3. 큰아버지댁은 화장실이 외양간 안에 있는 푸세식이었다. 외양간을 열면 소가 혀를 내밀며 내쪽으로 다가왔고 화장실로 들어가면 아주 작은 불빛만 있을 뿐 캄캄했다. 밤 중에 화장실이 급하면 엄마를 깨워 외양간 앞까지 같이 갔다. 낮이나 밤이나 대변을 보지는 못했다. 보통 2박 3일, 3박 4일을 머무는데 나를 비롯한 어린아이들은 변비에 걸렸다.
4. 죄송하게도 큰어머니 음식이 맛이 없었다. 떡국조차 맛이 없었다.
5. 어른들은 나와 동갑내기인 사촌들을 비교했다. 키가 누가 더 큰지, 더 자라서는 누가 더 공부를 잘하는지, 어느 대학을 가는지. 비교는 나이가 어리든 많든 짜증 나는 것이다.
6. 사촌들은 큰아버지/큰어머니의 손주, 손녀인 거고 나는 큰아버지 막냇동생의 자식이니 손주, 손녀가 더 이쁠 수밖에 없다. 큰어머니를 비롯한 분들은 동갑 손녀를 '공주'라고 불렀다.
7. 나는 동갑내기인 사촌들보다 촌수가 높았는데, 촌수 낮은 비슷한 또래의 여자애들이 은근히 나를 따돌렸다. 내가 촌수가 더 높고, 서울에서 살아서 그런 것 같았다.
8. 친할아버지, 친할어머니는 아빠가 어릴 때 모두 돌아가셨기에 나는 한 번도 뵌 적도, 사진을 본 적도 없다. 그러니 그 위의 조상님에 대한 정보는 전혀 아는 바가 없다. 설날 당일 아침부터 큰 집인 큰아버지댁을 중심으로 장소를 바꾸며 오랜 시간 동안 차례가 진행됐는데, 어느 조상님께 하는지 들은 바가 없는 나는 어느 조상님께 왜 해야 하는지 전혀 와닿지 않았다. 그저 절하면 따라 하는 것이었다.
9. 큰아버지댁 사랑방에는 계속 먼 친척들의 방문이 이어졌고 술을 드셨다. 그리고 안방에는 종종 손님들이 피곤해서, 술에 취해서 낮잠을 주무셨다. 사랑방에 작은 TV가 있었지만 손님이 와서 앉으면 가려지거나 볼륨을 키울 수가 없었다. 나는 막걸리 냄새를 맡으며 사랑방 구석에서 시간을 보냈다.
10. 아빠는 가족들과 했던 집으로 돌아가는 일정에 대한 약속을 늘 어겼다. 예를 들어 목요일 아침에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약속하면, 아빠는 친구와 만나서 술을 마셔서 자느라 목요일 저녁에 간다던지 약속을 여기는 일이 잦았다. 아빠한테 돌아가자고 하면 화를 내셨다. (약속을 잘 안 지키니 시골에 가는 것 자체가 싫었다. 어차피 돌아올 시간도 무시하는데.)
11. 시골에서는 내가 하고 있는 학습지를 할 수도 없었다. 숙제가 밀렸다. 결국 명절엔 시골에 가서 하릴없이 있다가 집에 돌아와서 밀린 숙제를 하는 것의 반복이었다.
1. 설날 당일에는 남편의 시댁에 제사가 있어서 여주에 간다. 나는 설날 당일에는 친청에 못 가는 건가? 당일에 시댁 제사에 가는 게 당연 시 되는 것 같아서 싫다.
2. 시댁에서의 제사는 매우 가부장적이다. 남자들 중심으로 제사를 지낸다. 시어머니를 비롯한 여자 어른들이 음식을 준비한다. 부엌에서 나를 포함한 6명이 차례음식을 준비하면 시아버지를 포함한 남자 어른들이 제사를 하는 형태다. 여자 어른들은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 여자는 음식만 하는 식모 같다.
3. 제사 후 떡국도 남자 어른들이 따로 먼저 먹는다. 그 이후 여자가 먹는다. 남편이 마침 떡국을 먹고 있고 옆에 자리가 비어 있길래 그냥 앉아 먹었더니 시어머니가 난처한 표정을 지으시며 며느리가 배고프다네~ 하시며 어른들 눈치를 살피신다. 내 행동이 변명이 필요할 정도로 잘못된 건가? 그 눈치까지 살폈어야 했나.
4. 조선 시대는 유교 국가 이념이지만 지금 대한민국은 유교 국가 이념이 아니다. 한국의 전통에서 유교적 가치가 있는 것이지 요즘 제사 문화도 남녀 구분 없이 세배를 하는 가정이 많다. 조상에게 예를 다 하는 것이 전통의 가치인 것이지 가부장적인 제사 형태는 계승할 가치를 전혀 느끼지 않는다.
5. 우리는 남녀가 동등하다고 학교에서 배운다. 나는 시집을 간 게 아니라, 지금의 남편과 결혼을 한 것이다. 남편과 내가 낳은 자식이 당연히 남편의 성씨를 따라야 하는 것도, 며느리가 당연히 남편 가족 제사를 우선시 챙겨야 하는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 내 나이 3N살인데, 조용히 하고 이 문화를 순응하고 있는 나 자신이 싫었다. 나는 내 가치관에 대해 말도 못 하는 머저리인 것 같이 느껴졌다.
6. 남편에게 이것에 대해 말하니 남편은 '거기 모이는 형수님들 내로라하는 교수님들이고 그분들이 몰라서 그러는 것 같냐, 좋게 좋게 하시는 거다'라고 한다. 하고 싶은 말도 못 하는 게 가족인가? 조용히 순응하면서 사는 게 가족 평화인가? 대통령이든 교수님이든 그것은 내가 느끼고 생각하는 가치가 중요한 것이다. 입 닥치고 사는 게 가족이 아니라 진정한 가족은 의견을 조율하는 것이고 진짜 사랑은 상대방을 이해하는 것이다.
7. 여기 모이는 모두가 설날 모임과 차례를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표정과 태도만 보면 알 수 있다. 하기 싫은 걸 억지로 하는 건 바람직한 일인가? 하기 싫었지만 했으니 내 소임을 다 한 것이다라고 떳떳하게 생각하는 것이 중요한 것인가? 유교에서 가르치는 건 허례허식이 아니다. 진정 효를 실천하는 정신에 기반한 예가 중요한 것이다.
8. 오늘 친정엄마를 만나 설날이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하니, 네가 한 게 뭐가 있어서 힘들다고 하냐 하신다. 나는 하는 게 없다. 그 부엌에서 눈치껏 설거지하고 도울뿐이다. 아무도 뭘 설명하진 않는다. 알아서 눈치껏. 그 작은 주방의 차디찬 바닥에서 잔뜩 시린 발을 웅크리며 눈치껏. 나는 나답지 않게 지단을 바닥에 떨어뜨린다던지 실수를 하고 시키는 일을 실수할 때가 있다. 허둥지둥 대는 나 자신이 싫다.
9. 그 안에 있는 게 도저히 힘들어서 남편에게 나가자고 하고 걸었다. 남편은 여기 올 때마다 도통 적응하지 못하고 불편해하는 내 모습을 보는 게 괴롭다고 했다. 그 말도 맞다. 얼마나 그게 불만이든, 얼마나 그게 가부장적이든 한나절 참을 수도 있는 것이다. 여기 어른들도 그런 마음으로 오는 것이란 걸 안다. 하지만 이것은 인내의 여부에 관한 것이 아니라 내 가치관에 관한 것이다. 대한민국은 남녀평등을 가르쳐놓고, 나는 서양의 개인주의 사상을 평생토록 배워놓고 명절만 되면 입 다물고 가부장제도에 순응하라 한다.
10. 이것은 결국 대한민국 전통을 고리타분한 것이고, 혐오하는 대상으로 만드는 것으로 귀결될 것이다. 나는 시댁의 작은 방에서 중학교, 고등학교 여자애들이 하는 얘기를 들었다. 엄마가 불쌍하단다. 2025년에, 10대 소녀의 눈에 설날은 우리 엄마가 고생하는 날이다. 내가 90년대에 느꼈던 똑같은 감정. 그것이 30년이 지나도 똑같다니. 엄마의 이런 모습을 본 아이들이 커서 결혼하고 싶을까? 난 아니었지만 어쨌든 지금 기혼자다.
11. 매년 내년 설에는 온갖 핑계를 대고 시아버지께 욕을 먹고서라도 안 가고 싶지만 시어머니가 밟히고, 가지 못한다고 말하지 못하는 남편의 마음이 밟힌다. 시어머니는 평생 이렇게 하셨을 것이다. 며느리 된 입장으로 시어머니께 죄송한 마음에 그 시간을 견딘다. 그런데 솔직히 안 하고 싶다.
12. 올해 설에는 시아버지가 손주 얘기를 꺼내셨다. 매번 우리 친정 가족이 다 함께 보이는 걸 아시는 시어머니는 모두 모이는 게 부럽다고 말씀하셨는데, 아버님이 대뜸 "손주가 있어야지"하시며 찬물을 끼얹으셨다. 어머니는 부드럽게 상황을 넘기셨지만, 나는 시아버님께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말하지 못한 이 얘기가 머릿속을 계속 맴돌아서 머리가 아프다. 그래서 여기에 쓴다.
"아버님. 저도 남편도 00살이나 먹었고, 저희 가정도 나름대로 사정 있고 계획이 있어요. 아버님이 말씀하시는 것 충분히 이해하지만 더 이상 말씀하지 않으셨으면 해요. 아버님 딸 00 씨 저와 동갑이잖아요. 00 씨에게 이런 말씀해 보신 적 있으세요? 결혼하라고 하신 적은 있으신가요? 그리고 저희 친정 식구 6명, 손주 없어도 만나면 즐거워요. 아이 낳는 거 의무 아닙니다. 제가 손주 낳으면 키워주실 건가요? 저 대신 먹여주시고 입혀주시고 해 주실 건가요? 저희 가정이 알아서 하겠습니다."
이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인 걸 어쩌나.
설 명절이 없어졌음 좋겠다.
설에는 서로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한다는데, 그 의미는 퇴색된지 오래인 것 같다.
누가 설을 좋아하나요? 조상님들? 시어머니들? 며느리들? 자식들?
제사를 지내고 싶다면 제사를 지내고 싶은 아버지들이 직접 음식을 준비하고 제사상을 차려서 진심을 다해 조상님께 마음을 다해서 진행하는 게 맞는 것 아닐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