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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MA에서, 한국 예술 굿즈 예찬론자의 끄적임

by 회사원Q Mar 11.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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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작년 봄이었던가, 옷에 큰 관심이 없는 남편이 해외 직구로 옷을 구매했다고 말했다. 국내 쇼핑몰도 아닌 해외 직배송이라니, 대체 어떤 옷인지 무척이나 궁금했다. 몇 주 뒤, 마침내 도착한 택배를 뜯어보니, 그 안에는 회색 후디가 들어 있었다. 회색 후디에 가슴에 MoMA 로고가 새겨진, 무척 평범한 옷이었다. "이거 왜 샀어?"라고 묻자, 남편은 자신이 팔로우하는 또래의 인스타그래머가 이 후디를 입은 모습을 보고 멋있어 따라 샀다고 했다. "근데 모마가 뉴욕 현대미술관인 거 알고 산 거야?" "아니, 첨엔 몰랐고 사고 나서 알았지"


 그 후, 뉴욕에 있는 모마에 직접 방문했을 때, 남편이 샀던 그 후디를 발견했다. 모마 지하 1층 기념품샵에는 후디뿐만 아니라 모자, 양말, 라글란 티셔츠, 스웻셔츠까지, 다양한 종류의 의류가 형형색색으로 진열되어 있었다. 어디 옷뿐이랴, 흔히 미술관에서 판매하는 전시 작품을 활용한 일반적인 굿즈 외에도 각종 브랜드와 협업한 제품들이 엄청나게 많아서, 그야말로 눈이 돌아갔다.


 그중에 내 눈을 사로잡았던 건 에코백이었다. 예쁘긴 참 예쁜데, 천의 두께가 너무나 얇아 물건을 몇 개만 담아도 금방 찢어질 것 같은 실용성 제로의 에코백이었다. 하지만 세계적인 미술관에서 실용성을 논하기엔 좀 교양이 떨어지지 않는가! 천 위에 프린팅 된 어느 예술가의 명언은, 이제 막 미술 전시를 흡족하게 마치고 온 사람의 말랑말랑해진 가슴을 그 어느 때보다 깊게 파고들어 감동을 선사함으로써, 절로 지갑을 열게 하는 고난도의 심리적 마술을 부렸다. 그뿐이 아니다. 전 세계 대표 미술관 중 하나가 아니랄까 봐 캔버스 천과 레터링의 색깔 조합이 미쳐버렸다. 다양한 컬러로 전시된 에코백 앞에서 하나하나씩 직접 매 본 내 모습을 상상하며 모두 다 사버리고 싶은 충동을 꾹 눌렀다. 한참을 고민한 끝에 여름에 포인트로 들면 좋을 두 개를 골라 한국으로 데려왔다.


 뉴욕의 미술관과 박물관은 인류 역사 속 걸작들을 직접 보고자 하는 전 세계의 방문객들로 항상 북적인다. 개관하기도 전에 입장을 기다리는 긴 줄이 늘어서 있고, 모마에 전시된 인기작품 중 하나인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를 사람들 뒤통수 없이 온전히 사진에 담으려면 오픈런을 해야 할 정도이다. 모마는 2022년~23년 한 해 약 270명의 관람객이 다녀갔다. 전시된 작품만으로도 방문객이 줄을 잇는 뉴욕의 미술관과 박물관이, 누가 세계 최강 자본주의 국가가 아니랄까 봐 굿즈 사업을 또 기가 막히게 잘하는 모습을 보면 내 나라의 미술관, 박물관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요 몇 년 사이 한국의 미술관, 박물관에서도 굿즈 사업을 활발하게 운영하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2022년 자체 브랜드 '뮷즈(뮤지엄+굿즈)'를 론칭한 이후, 우리나라 문화재를 기반한 굿즈의 수준이 한층 정교해지고 세련돼졌음을 실감한다. 홈페이지에서 굿즈들을 구경할 때마다 이른바 '국뽕'이 차오를 정도로 정말 멋져서, 미니멀리스트를 추구하고자 하는 내 결심이, 소장하고 싶은 사사로운 욕구로 마구 흔들린다. 반가사유상 굿즈는 한때 'MZ세들의 아이템'으로 SNS 피드를 장악했고, 나는 몇 달 전부터 석굴암 조명 굿즈를 구매하고 싶었지만 원하는 옵션이 번번이 품절되어 구매하지 못했다. 한 달 전에는 아빠 생신 선물로 '금동대향로 미니어처'를 구매했다. 부모님이 새로 장만한 식탁에 올려놓으면 멋진 오브제가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굿즈는 엔터테인먼트, 패션, 라인선스 산업 등 여러 분야에서 단순 제품 판매를 넘어서,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강화하고 소비자와의 유대감을 형성하는 중요한 매개체로 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미술관과 박물관을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요즘 나는 예술 분야에서 굿즈가 만들어내는 가치를 피부로 경험하고 있고, 이 사업이 발전하는 모습을 열렬히 응원하는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다.


  굿즈는 미술관과 박물관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예술품을 가장 근접한 형태로 사사롭게 기억할 수 있게 도와주는 매개체이다. 나는 전시실에서 기억하고 싶은 예술품의 사진을 찍는 편이긴 하지만, 사진을 찍는 행위 그 자체는, 이미 이곳을 방문하기 전에 책에서 본 이 예술품의 사진을 모방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오히려 휴대폰으로 찍은 사진은 미술관의 조명이나 작품 보호판 등으로 인해 작품의 진정성을 훼손한 모습을 남길뿐이다.  


 미술관에서 내가 그 작품을 마주할 때 느끼는 감동은 이미 책이나 TV에서 봤던 것과는 다르다. 그것은 실제로 그 작품을 내 눈으로 보고, 내 감각으로 경험할 때 비로소 느껴지는 실재감이다. 작품의 실제 크기, 색채의 깊이, 질감, 붓 터치와 같은 세밀한 디테일을 직접 경험하는 데에서 느끼는 신선한 자극이고 그로 인한 몰입의 즐거움이다. 따라서 그 작품을 다시 사진으로 찍는 것은 내가 경험했던 실재감 이전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과 같고, 이는 결국 작품을 처음 봤을 때의 감동의 순간을 잊어버리게 하는 행위가 되는 것이다.


 하여, 작품의 실재감, 예상과 달랐던 감각적 경험, 그리고 예술적 감동이 결합된 이 특별한 감동의 순간을 기억하기 위한 최선의 행동은, 전시가 끝난 후 그 미술관의 굿즈를 구매하는 것이 된다. 굿즈 자체가 이미 그 장소를 기념하는 의미를 갖기도 하지만, 미술관에서 느꼈던 감동과 영감의 일부를 봉인하는 것 같은 특별한 경험이 되기도 한다. 나는 에코백과 같이 실생활에서 자주 쓸 수 있는 굿즈를 좋아한다. 실용적인 굿즈는 나의 일상과 어우러져 나만의 개성을 더해주며 그 의미가 더욱 깊어지는 특별한 아이템이 된다.


 미술관 입장에서도 굿즈 판매는 지속적인 수익을 만들어내는 중요한 수입원이 된다. 우리나라 미술관의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전시의 주제가 일부 유명한 거장들로 편향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빈센트 반 고흐, 에드워드 호퍼, 구스타프 클림트, 파블로 피카소는 꾸준히 전시 주제로 다뤄지는 인물들이다. 물론 이들이 미술사에서 중요한 인물임은 분명하지만, 전시 예술의 범위가 한정되는 것 같아서 아쉬울 때가 많다. 물론, 지속적으로 방문객을 유입해야 하는 미술관의 고충을 생각하면, 한국 사람들에게 이미 잘 알려진 스타 거장들을 자주 다룰 수밖에 없는 것도 십분 이해한다. 나는 국립 미술관과 박물관의 예산 운영 구조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아마도 일정 수준의 방문자와 수익을 확보해야 예산을 받을 수 있는 국내 예산 정책도 한몫할 것이다.  


 이때 굿즈는 예술 업계의 한쪽으로 편향될 수 있는 전시 방향과 구조적 문제에 숨통을 트이게 하고, 수익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되며, 미술관과 박물관 브랜드 이미지를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 남편이 멋있어서 뜻도 모르고 구매한 모마의 후디처럼, 국립중앙박물관에 가지 않고도 홈페이지에서 금동대향로 미니어처를 구매했던 나처럼, 굿즈는 미술관과 박물관을 꼭 방문해야 하는 '한정된 장소'의 개념에서 벗어나, 방문하지 않아도 예술을 향유할 수 있게 하는 새로운 접근 방식을 제공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일상 속에서도 예술을 자유롭게 경험하게 된다.


 우리나라는 250년 된 미국의 역사의 20배가 되는 5,000년의 유구한 역사를 가졌다. 비록 임진왜란, 병인양요, 일제강점기와 같이 큰 전쟁을 겪으며 귀중한 문화재와 예술품이 소실되거나 약탈당했지만, 여전히 다양한 예술품을 소장하고 있고, 한국 고유한 역사와 사회적 가치를 지닌 현대예술은 다른 나라와 비교해도 그 경쟁력이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나는 국내 여행을 갈 때마다 그 지역의 미술관과 박물관을 꼭 방문한다. 그리고 놀랍게도, 우리나라에 참 다양한 미술관과 박물관이 있고, 높은 수준의 전시 기술을 갖추고 있는 것에 감탄하곤 한다. 하지만 그 멋진 전시관들이 텅 비어 있는 모습을 볼 때마다 한편으론 마음이 아프다.


 이번에 아빠께 드리며 함께 처음 본 3D 프린터로 제작된 '금동대향로 미니어처'굿즈는 대한민국 국보의 아름다움을 정교하게 담아냈다. 하늘로 치솟는 용이 향로를 떠받치고, 본체를 구성하는 입체적인 산세와 그 속에 새겨진 동물과 악사들, 그리고 꼭대기의 여의주를 품은 봉황의 모습까지, 백제 금속공예의 섬세한 아름다움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남편과 나는 이 굿즈를 한참 동안 뜯어보다가 이렇게 말한다.

"이번 주말에 부여에 가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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