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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감적 글쓰기

by 리틀 골드문트


마음이 쫄리면서도, 한편으로는 뭔가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묘한 설렘이 있다. 그럴 때면 쫄림마저 스릴처럼 느껴진다. '될까?', '말까?' 그 경계에서 스스로를 믿고 '된다!'의 느낌표로 향해 나아가는 순간. 0에서 1로의 변화를 목전에 두고 있다는 예감. 나는 그 찰나를 온몸으로 사랑한다.


학생 시절 나는 글쓰기 대회에 자주 나갔다.

정해진 시간 안에 글을 써야 하는 대회에 참여해서, 시작을 기다릴 때면 늘 심장이 일정하게 쿵쾅거렸다.


"이제 시작하세요."


감독관 선생님이 대회 시작을 알리면 비로소 시험지에 쓰인 활자와 마주할 수 있었다. 심장은 여전히 쿵쾅댔고, 내 눈동자는 글의 지문과 문제를 빠르지만 침착하게 잘근잘근 씹어 삼켰다. 급하게 했다간 아무것도 소화하지 못할 것이고, 그렇다고 천천히 했다간 모든 것이 소화되어 남는 것이 없을 것이다.


그 이후엔 쫄림의 시간이 시작된다.

어떻게 글을 써야 할지 글의 구성을 치열하게 고민하는 시간. 학교 국어 시간에 배운 지식과 책이나 신문에서 읽었던 정보들이 어지럽게 쌓여있는 정보의 더미에서 이 글의 주제와 연결할 어떤 조각을 찾아내야 했다. 조각이 스스로 턱 하니 떠올라 내게 찾아온 적도, 내가 조각을 쉽게 발견한 적도 없었다. 그래서 그 시간은 막막한 더미 속을 맨손으로 뒤지는 고독한 시간이다.


마침내 조각을 찾아내면 본격적으로 쫄리는 겪어야 했다. 서론, 본론, 결론까지의 글의 흐름을 짜야 한다. 이 시간은 빠르면 20분, 길게는 40분까지 걸렸다. 보통 2시간이 주어지는 대회 시간 중 40분 이상을 써버리면 대회의 승산이 급격히 떨어진다는 걸, 경험으로 나는 잘 알고 있었다. 20분을 소비한다면 여유가 있을 것이고, 40분을 쓴다면 남은 시간을 꽤 힘들게 보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건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운이라고 생각했다. 데드라인 40분이 중요했다.


40분 안에 단단한 글의 구조를 세우려면, 한 치의 의심도 용납하지 않는 자기 확신이 필요했다. 두려움이 공기처럼 퍼져 있는 그 시간엔, 확신 없는 태도로 임한다면, 결국 두려움으로 모든 걸 잃어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끊임없이 되뇌었다.

'어차피 나는 멋진 글을 구성할 것이고, 그 작품을 만드는 시간적 차이가 있을 뿐이야'


책상 위 겨우 한 뼘 남짓한 거리를 유지한 채, 나는 연필을 쥐고 글을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며 글의 방향, 논리, 연결성과 타당성을 갖춘 뼈대를 만들어갔다.


얄궂게도, 글의 뼈대를 일정한 속도로 만든 일은 없었다. 아무것도 써지지 않는 막막한 시간이 흐르다가, 별안간 한 가닥 실마리가 잡히면서 연필에 날개라도 달린 듯 글의 구성을 술술 써 내려간 때가 더 많았다.


글자 하나도 쓰지 못하는 5분이 1시간처럼, 10분이 심연의 시간처럼 느껴졌다. 자기확신만이 가득한 갈증에 몸이 가려워지기 시작했다. 조바심이 나서 미칠 것만 같은 시간을 견뎌야 했다.


그러다 물꼬가 트인다.

자기 확신이 구체적인 글로 형상화되기 시작하면 쿵쾅대던 심장도, 가려웠던 피부도, 빳빳해진 손가락도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외부의 소란함이 고요해지고 활자의 서걱거림만이 들리는 평화로운 시간이 찾아온다.


나는 언제나 완벽한 뼈대를 추구하지 않았다. 70% 정도의 만족스러운 뼈대만 있으면 괜찮았다. 나머지 30%는 글을 쓰는 과정에서 채워질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완벽한 준비란 없고, 점진적으로 완벽에 가까워질 수 있을 뿐이다. 그 '가까움'의 정도에 따라 승산이 달라졌다.


논리의 빈틈이 채워지고, 거칠었던 문장이 유연해지고, 엉성했던 글의 조직이 또렷해졌다. 머리는 내가 나아가야 할 길을 터주었고, 눈은 그 길에서 벗어나지 않게 지켜보았으며, 연필을 쥔 손이 바지런이 따라가고 있었다. 그 조화가 리듬을 타기 시작하면, 쾌감이 찾아왔다. 조금 전의 외로움, 가려움, 답답함의 기억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 쾌감을 느낄 때면 다 용서가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 한줄의 마침표를 찍을 때, 내가 늘 후련했는지 얼마간의 아쉬움이 있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분명한 건, 과정의 쾌감이 결과의 보람보다 더 강렬했다는 것이다.


어딜 가도 '얌전한 아이'라 불리던 조용한 소녀였던 내가, 실은 이 쾌감을 잊지 못해 글쓰기 대회에 꾸준히 나섰다는 사실은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 되돌아보아도 어쩐지 낯설게 느껴진다. 하지만 한편으론, 다소 기이한 열정을 품고 묵묵히 글을 써 내려갔던 그 시절의 나를 떠올리니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그때의 내가 있어, 지금도 나도 이렇게 글을 쓰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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