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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이지 Aug 14. 2023

낙상은 모든 것을 무너뜨렸다

걷는 게 문제가 아니었다

미루고 미뤄왔던 이야기를 시작하려 한다.

예쁜 치매 환자, 초긍정 명랑 캐릭터 엄마 이야기를 쓸 수 없는 날들이었다.

면회할 때마다 밥 먹고 가라는 엄마의 안타까운 목소리도 들은 지 오래다.  

한순간의 낙상은 모든 것을 무너뜨렸다. 지난 4월 3일 이후 엄마는 당신 발로 땅을 딛지 못했다.  




무슨 이야기부터 시작해야 할까.

막냇동생이 미국으로 돌아가고, 엄마는 일반병실에서 회복 중이었다. 이론상으로는 그래야 했다.

주치의는 엄마가 고령인 데다 골절되면서 신경이 늘어나서 회복이 더딜 거라고 했다. 재활 치료하고 다리에 보조기를 찰 수 있을 때 퇴원 가능한데, 엄마의 경우 두 달 정도 걸릴 것 같다고 한다. 큰일이다. 그 시간을 엄마가 견딜 수 있을까.


고관절 인공관절 수술이 힘든 수술이라는 얘기를 듣긴 했지만 엄마의 상태가 좋지 않았다. 중환자실에 계실 땐 대화도 가능하고 컨디션도 괜찮으셨는데 무슨 이유에선지 엄마는 나날이 야위어 갔다. 틀니를 빼서 그런지 얼굴도 달라 보였다.


내가 다가가자 엄마가 활짝 웃으신다.

“아이고 따님 왔다고 웃으시네.” 간병인이 말한다.

하지만 그 표정도 잠깐뿐이었다.

엄마는 그날도 겨우 두유 한 팩, 하모닐란 몇 모금 드신 게 다였다고 한다.  

엄마는 피곤한 듯 눈을 감으셨고 내게 한 말도 “물… 아파… 졸려… 어서 가”가 전부였다.

“엄마, 캐나다에 있는 오빠 오라고 할까?”

엄마는 그 정신에도 도리질을 한다. 괜찮다고, 뭘 이만한 일로 오빠를 성가시게 하느냐고 하시는 것 같다.


일반병실 면회는 하루 한 번, 저녁 7시부터 30분간이다. 보호자는 단 한 명만 들어갈 수 있다. 교대로 들어가면 좋으련만 안된단다.

동생과 나는 번갈아 가며 매일 엄마를 보러 갔지만 엄마는 반가워하는 그 표정도 점차 보여주지 않았다.

애써 눈을 감으시는 것 같기도 했고, 취한 듯 잠을 주무시는 것 같기도 했다. 갈수록 면회시간이 짧아졌다.

간호사에게 물어도, 치매 환자의 경우 수술 후에 아예 못 드시는 분들도 있다고 한다. 왜 치매 환자만 유독 회복이 더딘 걸까. 답답한 날들이 이어졌다.


자꾸만 한 장면이 떠올랐다. 일반병실에서 수술 날짜를 기다리던 때였다.

오래된 병원이라 그런가, 벽에 붙어 있는 얼룩덜룩한 게 영 거슬렸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미역 조각 같다.

간병인에게 물으니, 쓱쓱 닦으면서 대수롭지 않게 말한다.

“어르신이 자꾸만 뱉으세요. 그래서 묻었나 보네요.”

심지어 엄마가 음식물을 떠먹여 드리면 손으로 빼서 던진다고 했다. 믿을 수가 없다.

어려운 시절, 쉰 밥도 아까워 물로 헹궈 드셨다는 엄마, 우리에게 밥알 한 톨도 발우공양하듯 깨끗하게 먹으라는 했던 엄마가 아닌가.


갑자기 낯선 곳에 있으니 일시적으로 마음이 불편하셨나 보다 생각하고 넘겼는데 수술 후 다시 일반병실로 오신 다음에도 엄마의 식사 거부는 여전했다. 엄마가 못 드시는 게 혹시 연하장애가 있는 게 아닌가 물었더니, 간호사도 간병인도 아니란다. 못 넘기시는 게 아니라 엄마가 혀로 밀어낸단다. 대체 왜 그러시는 걸까. 엄마가 뭔가 맘에 안 드는 게 있는 것 같다.


생각 끝에 요양원 원장 카드를 쓰기로 했다. 누구보다 엄마를 잘 아는 사람. 엄마가 믿고 의지하는 사람. 동생이라고 의지하며 엄마가 하루 종일 졸졸 따라다니는 원장에게 면회를 부탁했다. 요양원에 있던 엄마 인형 춘심이도 가져갔건만 엄마가 처음엔 굳은 표정을 쉬 풀지 않으셨단다. 갖은 애교를 떨며 겨우 웃게 해 드렸다고 원장이 전한다. 아무래도 병실 환경이 견디기 힘드신 것 같다고, 빨리 회복해서 퇴원하시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조심스레 말한다.

 

그런데 이 상태로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까. 주치의는 곧 재활에 들어간다고 보조기를 벌써 주문 요청한 모양이다.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보조기 회사 직원이 왔다고, 엄마 사이즈를 재도 되느냐고. 사전에 들은 바가 없어 내가 당황스러워하니 보호자가 알아서 판단하란다. 도대체 주치의는 엄마 상태를 알기나 하는 걸까. 필요하다니까 그렇게 하라고 하고 계좌로 보조기 값을 입금한다.

그래, 엄마는 곧 회복하실 거야. 그러려면 저 보조기가 필요하겠지.


그러나 엄마의 상태는 갈수록 나빠졌다. 며칠 집에 내려가 있는 사이, 동생이 보내준 엄마 사진을 보고 기겁했다. 엄마가 물을 넘기지 못해 주르륵 목까지 흘러내린 모습. 너무도 파리한 얼굴. 다음날 당장 올라갔다.


저녁 면회 시간. 엄마는 힘들어 보였다. 그러나 안간힘을 쓰고 계시다는 걸 느꼈다. 아직 포기하신 건 아니다.

빨대를 빨 힘도 없어서 숟가락으로 물을 떠먹여 드렸다. 혀를 움직인다. 힘겹게 꿀꺽하신다. 엄마의 꿀꺽 소리에 박수를 친다. 그리고 안아드렸다. 잘하고 계시다고. 미안하다고.

병원 욕도 했다. 제대로 챙겨 주지도 않고 맘에 안 든다고. 퇴원하자는 말에 엄마가 반응을 보이신다.


그때 결심했다. 안 되겠다, 퇴원해야겠다. 언제까지 재활이 가능한 때를 기다릴 순 없다.

동생과 나는 엄마가 걷지 못하더라도 앉아서 식사만이라도 제대로 하셨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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