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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이지 Nov 06. 2023

오래도록 식집사가 되고 싶어

지금은 많이 서툴지만 말이야

그곳에 가는 게 아니었다. 딸이랑 ‘조인폴리아’에 갔다가 빠져들었다. 식집사의 길로.

식집사란, 반려 식물을 키우며 기쁨을 찾는 사람들이라는데 솔직히 나는 기뻤으되 내 식물들은 그렇지 못했다. 모든 게 서툰데 무모하기까지 한 나 때문이다.    


내가 이렇게 식물친화성이 떨어지는 건 성장 환경 탓 아닐까.

초등학교 3학년 때였나. 학교에서 식목일 기념 글짓기를 해오라고 숙제를 내줬다. 정말 쓸 말이 없었다. 그 당시 우리집엔 그 흔한 화분 하나 없었다. 사실 먹고살기 바쁜 때였으니 그랬으리리라. 아무튼 순진하고 정직한 난, 이러저러한 이유로 식물을 키울 수 없다고 썼다. 양옥집 조그만 마당도 시멘트 바닥이었으니 흙이 있어야 식물을 심지, 뭐 이렇게 썼던 것 같다. 선생님으로부터 예상치 못한 혹평을 받았지만 납득할 수 없었다.


몇 년 뒤 2층집으로 이사를 갔다. 드디어 우리집 마당에도 화단이 생겼다.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엄마가 장미 묘목을 심고 계셨다. 너무도 보기 좋은 풍경이었다. 그야말로 스위트홈 아닌가. 내 마음속에서 빨강 장미는 벌써 벽면 한가득 꽃을 피우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볕이 잘 안 든다는 거였다. 장미는 그해 한철이나 겨우 살았던가. 성격만큼이나 포기가 빠른 엄마는 그 뒤로 어떤 식물도 심지 않았다.


그렇게 나도 식물에 무심한 사람으로 살아갔다.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채소 모종 따위를 심긴 했지만, 고추에 벌레가 생기는 걸 보고 마음을 접었다. 아파트 베란다에서 뭔가를 키우는 건 힘든 일이라고 생각했다. 잘 못 키운다고 사양하는 내게 동네친구가 안겨준 오이 모종의 성장은 두렵기까지 했다. 그 자그만 싹이 <잭과 콩나무>에 나오는 콩나무처럼 줄기를 뻗어 베란다 창을 가득 덮더니 귀하디 귀한 열매 두 개를 남겼다. 나만큼이나 아무것도 모르는 B와 황당하게 오이 줄기를 바라보았던 기억이 난다.


이런 사람이 사무실 화분 따위에 눈길을 줄 리 없다. 마흔이 넘어 일하게 된 사무실엔 화분이 꽤 많았는데 물 주기 담당은 늘 다른 사람이었다. 자상했던 식집사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떠났을 때 아마도 가장 슬퍼한 건 식물들이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다 나만큼이나 초록식물에 관심 없는 인간들만 남게 됐다.

사무실을 찾은 사람들이 “아니, 이렇게 되도록 왜 물을 안 줘요?”라며 나무라는 일이 잦아졌다. 이미 식물 개체수가 급감하고 있었고, 어떤 난은 살려고 그랬는지 아이러니하게도 십여 년 만에 꽃을 피웠다. 졌다. 결국 내가 물조리개를 들었다.


그때 깨달았다. 관심이라는 것, 마음을 준다는 게 이런 느낌이라는 걸. 꼬박꼬박 물을 주고 자리를 바꿔 주는 것만으로도 초록의 때깔이 달라졌다. 영 회생이 불가능해 보이는 건 식물을 좀 아는 이에게 구조요청을 했다. 죽어가는 난 화분을 뒤집어 썩은 뿌리를 잘라주고 그렇게 살아남은 난뿌리를 모아 다시 심는 고수의 손동작은 경이롭기까지 했다. 주변엔 식물에 대해 아는 이들이 참 많았다. 내가 제일 무식한 거였다. 뒤늦게라도 깨달음을 얻었으니 다행이었을까.




퇴직한 뒤엔 새로운 취미, 관심거리를 가져야 한다고들 했다. 자유롭게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코로나 시대였고, 새로 이사한 집엔 햇빛이 가득 들어왔다.

그러다 딸이랑 식물농장에 갔던 거였다. 그곳은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나와 달리 일찍이 초록식물의 세계에 들어간 딸(그러니 지금껏 내가 쓴 성장스토리는 다 핑계다)은 스파티필름을 추천했다. 화려한 꽃화분만 들여다보는 내게 초보자는 이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했다. 지당한 말이었다. 오래도록 필 것 같은 꽃화분들은 하나둘 내 곁을 떠났다. 벌레 때문에, 과습 때문에, 통풍이 안 돼서, 분갈이를 잘못해줘서, 무모하게 삽목을 해서…. 스파티필름은 물만 줬는데도 잘 컸고, 풍성히 자라 두 개의 화분이 되었다.


식물을 키우다 보면 나눠주고 싶어지는 모양이다. 일 년에 한두 번 보는 고등학교 친구 하나는 만날 때마다 새순(이걸 뭐라 해야 하는지)들을 건넨다. 그렇게 받은 나비란과 만손초는 우리집을 거쳐 딸에게도 갔다. 딸이 씨를 뿌려 애지중지 키워낸 바질은 우리 집에서도 잘 자라 몇 개의 화분으로 늘어났다. 딸이 키우던 몬스테라에서 잘라온 녀석은 이름처럼 무섭게 성장해 우리집에서 가장 큰 식물이 되었다. 삽목에 성공한 우리집 페라고늄 2세는 딸아이 집에서 잘 크는 중이다.

딸과 나는 식물 이야기를 공유하고, 서로의 집을 방문할 때마다 식물들을 살핀다.  


그런데 이사는 식물들에게도 큰 변화였나 보다. 이사오기 전날, 화분들만 따로 챙겨 우리 차에 싣고 왔는데 지못미, 역부족이었다. 식물들이 견디기 힘든 한여름에 이사 온 탓인지, 일조량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집이어선지, 알 수 없는 이유로 하나둘 초록별로 떠났다. 시름시름 앓는 것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야말로 최강자들만 남았다.


이 집에선 식물 키우기가 힘들 것 같다고 마음을 내려놓았는데, 장날 꽃시장 주변에 갔다가 포인세티아에 마음을 빼앗겼다. 이제 곧 크리스마스가 다가오지 않나. 주인아저씨가 굳이 분갈이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는데 말 안 듣고 오자마자 화분부터 바꿨다. 며칠 거실에 뒀더니 아래쪽 이파리가 후드득 떨어진다. 볕이 부족한 듯싶어 안방 베란다로 옮긴다. 무모한 집사 때문에 또 고생시킨다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살아줬으면….   


초록별로 보낸 애들이 이렇게 많은데도 내가 식물을 좋아한다고 할 수 있을까. 식물 키우는 게 재밌는 일이라고 할 수 있을까.

분명한 건, 식물을 알지 못했다면 신비로운 이 생명력을 체험하지 못했으리라는 사실이다. 식물을 키우고 돌보는 마음이 이렇게 기쁘고 충만한 지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초록식물 덕분에 이렇게 나도 성장해 간다.

그래서 아직 여전히 많이 서툴지만 계속 식집사가 되고 싶다. 굳이 힘들게 쭈그려 앉아 흙을 퍼담고 난석을 씻고 분갈이해주는 수고를 오래도록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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