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수 수경의 신세계
내가 단번에 수영강습에 당첨되다니! 기쁜 소식을 딸 S에게 전했더니 새 수영복 사라고 현금을 보내 준다. 역시, 센스쟁이. 우리집에 사는 어떤 분보다 내 마음을 잘 안다.
S는 늘 이렇게 내게 힘을 준다. 처음 브런치 스토리에 도전해 봐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도 카페에 가서 글 쓰라고 커피숍 상품권을 보내줬다. 이게 별거 아닌 것 같지만 내겐 큰 지지이자 ‘별것’이다. S에게 ‘나이가 많아서’라거나, ‘이제 와서 뭘’이란 말을 했다가는 한소리 들을 각오를 해야 한다. 내가 이렇게 매주 글을 쓰게 된 것도, 운동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도, 새롭게 스페인어 공부를 시작한 것도 사실 S 공이 크다. S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재주가 있다.
수영강습 시작일까지는 아직 열흘의 시간이 남아 있다.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 아침형 인간 연습
이게 제일 힘든 과제다. 보통 아침 7시 전후에 눈을 뜨지만 저혈압이라는 핑계로 바로 일어나지 않는다. 포털 사이트에서 뉴스를 보다가 연관 검색어를 따라 쓸데없는 웹서핑을 하느라 시간을 보내곤 했다. 한때 큰맘 먹고 <모닝페이지> 글쓰기를 시도했으나 오래가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 7시는 수영강습이 시작되는 시각이다. 여유롭게 준비하려면 5시 45분에 일어나야 한다. 처음이니까 6시 15분 기상을 목표로 했다. 중요한 건 잠자리에서 미적거리지 말고 바로 일어나야 한다는 것. 그리고 몸을 움직여야 한다는 것. 반강제로 산책을 나가 본다. 내겐 무척 이른 시각인데 천변 산책길엔 아침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뿌듯하다. 내가 이렇게 부지런한 사람들 대열에 있다는 게.
# 수영복과 수모
수영복은 작년에 미국 여행 갈 때 하나 산 게 있긴 하다. 그동안은 여행을 가도 수영이 필수가 아닌지라 살짝 작은 수영복을 그냥 대충 입었다. 아마도 20년간 옷장에 있었으리라. 그래서 장만한 건데 입기도 불편하고 내 체형과 잘 안 맞는 것 같다. S가 예쁜 것 사라는데 일단 강습용 저가 수영복을 사기로 했다. 눈에 띄지 않는 검은색 U백 수영복에 수경과 수모까지 세트인 제품이다. 가격이 착하니 부담도 없다. 실제로 받아 보니 딱 가격 정도의 퀄리티. 입기 벗기 편하니 그런대로 만족하기로 한다. 더 좋은 건 3개월 강습 중간쯤에, 내게 주는 보상으로 하나 또 구입하리라 마음먹었다.
수영모자는 다 같은 줄 알았다. 아, 작다. 내 머리가 크기 때문인지도. 게다가 긴 머리라 어림도 없다. 후기에 수모가 작다는 글을 보긴 했는데 이 정도일 줄 몰랐다. 세트라고 좋아했는데 낭패다. 비상용으로라도 쓰려고 둘둘 말린 요가매트에 끼워 조금 늘여 놓았다. 쇼핑몰을 검색해 보니 롱헤어 빅사이즈 수모들이 많았다. 이왕 사는 김에 수모는 흰색으로 골랐다. 밋밋함에 포인트를 주는 민트색 캘리그래피 글씨가 맘에 든다.
# 수경
내가 수영을 싫어하는 이유는 불안함 때문이기도 하다. 안경을 벗으면 잘 안 보이니 수영장에서 여간 답답한 게 아니다. 무지하게 눈이 나쁜 건 아니지만 초등학교 4학년부터 안경을 쓰기 시작했으니 콘택트렌트를 꼈던 기간들을 제외해도 40년 이상 함께 한 셈이다. 나 같은 사람이 한둘이 아닐 텐데 도수가 있는 수경이 있지 않을까 싶어서 찾아보니, 있다! 이거야말로 신세계가 아닌가.
도수 수경을 파는 안경점을 검색해 바로 찾아갔다. 수경을 찾는 것 보니 새로운 수영 강습이 시작된 모양이라고 안경사가 반긴다. 먼저 기본 시력검사를 했다. 물속에서 쓰는 거라 내 시력에서 70~80% 정도 보이는 걸 추천한단다. 다행히 내 눈에 맞는 기존 제품이 있어서 기다릴 필요 없이 그냥 사가지고 왔다. 눈에 살짝 대 보았는데 잘 보인다. 세상에, 이렇게 간단한 거였다. 수영강습의 장애물이 하나 걷힌 느낌이다. 잘 보이기만 한다면 조금은 겁이 덜 날 것이다.
하루하루 수영강습 디데이가 다가온다. 과연 나는 아침형 인간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