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수영 선생님

“할 수 있어요!”

by 데이지

초등학교 때 주산학원을 몇 년 다녔다. 당시 꽤 유행이었던 것 같다. TV에 암산 잘하는 천재 아이가 나오던 시절이었다. 머리 좋아진다는 얘기에 솔깃하지 않을 엄마가 있으랴. 사교육에 열심인 엄마 덕분에 피아노에 이어 주산도 배우게 됐다.


“1원이요, 3원이요, 8원이요, 6원이요….”

선생님이 이렇게 리듬을 타며 숫자를 부르면 우리들은 열심히 주판알을 튕긴다. 좌르르 주판알을 가르고 한 개, 두 개 주판알을 올리는 소리는 꽤 경쾌하다. 워밍업처럼 다 함께 계산하는 시간이 끝나면 문제지가 배포된다. 숫자가 빽빽이 적혀 있는 이건 속도전이다. 무조건 친구들보다 빨리 풀어야 한다. 초집중하며 문제를 푸는 아이들을 하나하나 살피던 선생님은 몇몇 친구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곤 했다.


그게 뭐라고. 어린 나이에 선생님이 내 머리를 한 번 쓸어주길 얼마나 바랐던가. 손으로 하는 일이 늦지 않은 터라 재미있어했고 진도도 곧잘 따라갔던 것 같다. 강아지도 아닌데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선생님의 칭찬을 받고 싶었고, 덕분에 주산 실력은 쑥쑥 자랐다.


무언가를 배운 게 오랜만이어서일까. 그 시절, 주산 학원의 풍경이 갑자기 떠오른 건.

하지만 수영은 몸으로 하는 게 아닌가. 운동 신경도 무디고, 체력도 바닥인 나는 힘든 선택을 한 셈이다. 애초부터 잘할 수 없는 종목이다. 칭찬은커녕 진도만이라도 따라가면 다행이다.




“앞으로 가라고요? 걸어서요? 물에 몸을 띄우라고요? 왜 하필 제가 가장 먼저…. 무서워요.”

“제가 더 무서워요. 할 수 있어요.”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선생님 앞에선 한없이 작아진다. 생존 수영이긴 했지만 아무튼 왕년에 하긴 했는데, 초보 수영반에 들어가니 완전 리셋된 느낌이다.

내 옆에 있는 친구도 겁이 많은 모양이다. 자꾸만 뒤로 뒤로 이동한다. 그래도 피할 순 없다. 드디어 그 친구 차례가 됐다. 그렇게 겁을 내더니 생각보다 잘 나아간다. 학습이 더딘 이들은 서로를 잘 알아보는 법, 잘했다고 응원의 박수를 보내준다.


수영 이틀차. 오늘은 발차기와 음파 호흡법을 복습하고, 어린이 풀에서 몸을 띄우는 연습을 했다. 사실 내가 겁을 냈던 곳도 수위가 무릎 정도밖에 안 되는 어린이 전용 풀이었다.


수영의 기본은 발차기인 모양이다. 선생님의 발차기 시작! 구호에 맞춰 힘 있게 발을 움직인다. 그런데 대체 몇 분 동안 계속해야 하는 걸까. 풀 가장자리에 걸터앉아 물을 가볍게 튕기는 발차기는 그래도 할 만했다. 하지만 두 팔을 뒤로 하고 내 코어 힘으로 두 다리를 교차하며 움직이는 동작은 죽을 맛이다. 코어 근육이 없는 나는 그 동작을 흉내내기조차 어렵다. 선생님이 나를 본 걸까. 힘든 사람은 몸을 뒤로 젖히지 않고 해도 된단다. 휴, 이해해 주셔서 감사.


준비운동을 하는 동안 체력이 벌써 바닥난 듯하다. 여기저기에서 아이고 소리가 들린다. 이제 본격 수업. 모두들 어린이 풀로 이동하란다. 수영 초보들에게 선생님이 알기 쉽게 설명해 준다.

우리 몸의 상체는 폐가 있으니 물에서 자연히 뜬다. 다리 쪽은 아무것도 없으니 가라앉을 수밖에. 띄워줘야 한다. 어떻게? 발로 물살을 차면서. 따라서 머리를 물에 담그고 발차기를 하면 몸이 앞으로 나아간다. 자, 출발!

뜨거나 말거나, 아무튼 엎드려 본다. 선생님이 뒤에서 가볍게 밀어준다. 어, 진짜다. 그 작은 풀의 저쪽 끝까지 가지도 못하고 중간에 멈췄지만 발차기만으로 움직였다. 할 만하다.


초보 수업에 딱 맞는 수영 선생님을 만났다. 무엇보다 친절한 선생님이어서 좋다. 스파르타 식으로 가르치지 않을 것 같아서 좋다.

공부 외에 취미나 운동을 배운 게 얼마만일까. 대학시절 클래식 기타? 운전? 까마득한 옛날이다. 그런 의미에서 수영을 배우겠다고 마음먹은 건 잘한 것 같다. 곧 다가올 미래에 틀림없이 힘들다고 할테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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