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회식
“우리 둘이는 동갑이에요. 저 언니는 우리보다 한 살 많고요.”
새벽 7시 초급반 수영강습 첫날, 골목길 앞뒤에 주차하면서 처음 만나 얼굴을 익혔던 P가 들뜬 목소리로 말한다.
내 나이를 묻는 눈치인데, 그날은 그냥 넘어갔다. 내 나이가 더 많을 것 같아서 굳이 얘기하고 싶지 않았다.
다음날, 이번엔 P와 동갑이라는 K가 묻는다.
“몇 살인지 물어봐도 될까요?” “네…. ”
“어머나, 우리 셋이 같은 나이네.”
심지어 K는 나와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주변에서 카풀을 하지 그러냐는데 그와 나 사이엔 30분의 시차가 존재한다. 수영장 지하주차장에 여유 있게 주차하기 위해 매일 집에서 5시 45분에 출발한다는데, 나는 도저히 그 시각을 맞출 수가 없다. 내 몸이 기지개를 켜고 천천히 움직일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모르긴 해도 K는 부지런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동갑인데 엄청 젊어 보였다는 덕담을 서로 주고받으며 우린 삼총사가 됐다. 누가 봐도 시니어 그룹에 가깝지만 소녀 감성이 충만한 귀여운 친구들이다. 게다가 서로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폼이 너무 예뻐요, 잘하고 있어요….”
어느 날 K의 초대로 삼총사끼리 뭉쳤다. 주말 자유수영을 마친 직후였다. 머리카락을 가볍게 툭툭 말린 채, 편한 옷 그대로 꾸밈없이….
K가 정성을 다해 가꾼 ‘리틀 포레스트’는 내가 꿈꾸던 공간이었다. 농막이라 했지만 혼자 지내기 부족함 없는 작은 집이었다. 공간이 주는 따뜻함 때문이었을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각자가 걸어온 소박한 인생 이야기를 했고 갑작스레 닥친 돌봄의 시간들, 슬픔의 순간들을 공유했다. 서로의 어깨를 두드리며 애썼다고 위로했다.
삶이 엄청나게 다른 것 같지만, 풀어놓고 보니 엇비슷했다. 바쁜 일상 속에서 다들 하느라고 했지만 끝을 알 수 없기에 밀려오는 후회 한 자락을 간직하고 있는 삶들.
그저 수영이 배우고 싶어 왔을 뿐인데 이렇게 좋은 친구들을 만나게 됐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한 달간의 탐색기가 끝나자 수강생들이 그룹별로 뭉치기 시작했다. 비슷한 또래가 생긴다는 건 할 말이 많아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처음엔 레인에서 자기 차례를 기다릴 때 조용했는데 이젠 수다가 끊이지 않는다. 총 정원 30명으로 출발했지만 평균 출석 인원은 스무 명 안팎이니 누가 안 나왔는지, 자세가 얼마나 좋아졌는지 금방 안다.
자연스레 우리도 다 함께 오프라인 모임을 한번 하자, 회식하자는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그리고 드디어 초급반 3개월째를 맞은 첫날 저녁, 삼겹살 집에서 만나기로 했다.
두 달여 매일 만났지만 수영장 밖에서 만나니 어찌나 어색하던지. 수영모를 씌워 봐야 얼굴 확인이 될 것 같다고 우스갯소리를 던져 본다. 어디에나 있는 분위기 메이커 덕분에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선생님 옆에 앉은 김에 현재의 내 상태에 대해 물었다. 힘은 약한데 요령이 많이 늘었단다. 잘한다는 칭찬은 아닌 것 같고, 대충 중간은 간다는 얘기 아닐까. 다행이다. 술이 한 잔 들어간 김에 나도 선생님께 수영에 진심임을 어필했다. 처음 수강신청을 할 땐 딱 석 달만, 초급반만 하자는 마음이었는데 이제 가능하다면 중급반에 올라가고 싶다고. 수영 잘하려고 근육 운동도 조금씩 하고 있다고. 선생님의 입가에 살짝 웃음이 번진다. 나이 든 학생의 간절함과 열정을 조금은 인정해 주는 사인이 아닐까.
수영강습 3개월 차에 접어들자 초미의 관심사는 다음 단계에 올라갈 수 있느냐 여부이다. 중급반에서도 같은 선생님이 가르친다니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이다.
“올라가고 싶다고 모두 중급반에 갈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저도 어떡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어요.”
선생님은 선생님이다. 수영 친구들과 함께 중급반에 올라가고 싶어 하는 학생들에게 긴장을 놓지 말고 열심히 하라는 말씀. 나에겐 중요한 한 달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