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장의 귀인들

덕분에 배영 발차기를 해내다

by 데이지

수영을 배우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내 목표는 단순했다. 자유형 숨쉬기만 제대로 배우자.

하지만 호흡이 안 되는 사람이 자유형 동작이 바를 리 없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처음부터 다시, 발차기부터 차근차근 시작해야 했다. 주기적인 슬럼프를 거쳐 이제야 자유형을 익혀 가나 싶었는데, 난제가 나타났다.


초급반에선 3개월 동안 자유형과 배영을 배운다. 6시반은 진즉 배영 진도를 갔는데 우리 반은 3개월 차에 들어설 때쯤 배영을 배우기 시작했다.

사실 조금 기대했다. 왕년에 배영은 좀 더 수월하게 했던 기억이 있어서 웬만큼은 할 줄 알았다. 그러나 웬걸. 아무리 발차기를 해도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내 다리가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 선생님이 여기까지 발을 더 차올리라고 손바닥을 대주는데 힘이 잔뜩 들어간 다리는 차올리지를 못한다. 내 뒤에 따라오는 사람이 있는데 이렇게 속도가 나지 않으면 난감하기 이를 데 없다. 몇 번이나 다시 시도해 보지만 제자리. 레인 줄에 바짝 붙어 서서 다음 사람을 먼저 보낸다. 아무짝에도 소용없는 긴 다리라고 푸념하다 수업이 끝났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주 4일 수업이니 내 깐에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수영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토요일, 일요일에도 나와 연습한단다. 안 되겠다 싶어 나도 가급적 토요일에는 자유수영을 하러 간다. 배영 발차기로 시름에 빠졌던 한 주의 끝자락. 토요일에 연습하면 되겠거니 생각했는데 실패했다.

일요일 아침 일찍 미사를 드리고 또 수영장으로 향했다. 수영 친구들은 보이지 않는다. 매일 7시 수업에 오던 습관이 있어서 다들 7시 즈음에 와서 연습하고 갔을 것이다.


아는 사람도 없고, 혼자서 어설프게 배영 발차기를 하던 그때, 누군가 내게 뭐라고 하는 듯하다.

“그렇게 하면 안 되지. 무릎이 자꾸 구부러지네.”

60대 중후반으로 짐작되는, 카리스마 넘치는 허스키 보이스의 언니였다. 그러더니 내게 자유형을 한번 해보란다.

“역시 발차기가 문제네.”

처음부터 다시 연습해야 한다며 나더러 풀장 끝에 걸터앉으란다.

“몸에 힘 빼고, 넓적다리에 힘주고, 다리 구부리지 말고 이렇게 차 봐. 그렇지, 다리 근육이 움직이는 게 보이지? 내가 배울 땐 말이야, 얼마나 힘들게 발차기 연습을 했는지 수영 수업이 끝나면 다들 엉금어금 기어서 나갔어.”

금방 가봐야 한다는 분이 계속 나를 가르친다. 이제 그만 가시라고 해도 이미 늦었다고, 둔하고 둔한 사람에게 발차기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시범을 보이고, 내 자세를 계속 교정해 준다.


기본 발차기만 몇십 분 연습시키던 첫 번째 귀인 언니가 떠났다.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배영 발차기를 배워야 하는데 큰일 났다고 생각할 무렵, 또 다른 귀인이 나타났다. 우리 반 실력자. 내 또래쯤으로 보이는데 굳이 나이를 밝히지 않으니 언니로 생각하기로. 나로선 수영 잘하면 모두 언니.

이 사람으로 말할 것 같으면 첫 수업 때 내 옆에 앉아 있던 사람. 내가 얼마나 답답했던지, 내 다리를 교정해 주며 이렇게 하라고 알려줬던 사람. 몇 달 전에 손목 골절상을 당한 나로서는 모든 게 조심스러웠던 터라 뜨악했는데, 알고 보니 마음 따뜻한 사람. 우리 반 왕초보들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는 친구이다. 그가 보이길래 가르쳐 달라고 매달렸다. 흔쾌히 가르쳐 주겠단다.


“수업시간에 배웠죠? 골을 넣는 축구선수처럼, 뒤로 굽혔다가 차올린다 생각하고 다리를 뻗어 봐요. 그리고 물 가까이에선 발목을 가볍게 털어주듯이 툭!”

“다시, 다시! 조금 나아졌어요. 왼쪽 다리가 문제네. 그렇지….”

조금씩 감이 온다. 그러면서도 이 사람의 시간을 너무 많이 빼앗은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든다. 이제 됐다는데도 한 번만 더 해보잔다.

감동이다. 내 옆에 이렇게 자기 시간을 내어 가르쳐 주는 언니들이 있다는 게.

“힘 빼고, 왼쪽 다리와 오른쪽 다리를 교차시키면서 툭!”

삑~! 호루라기 소리가 울린다. 오전 자유수영이 끝나는 시간이다. 귀인들 덕분에 배영 발차기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제야 비로소 알 것 같다. 1시간만 연습하려고 했는데, 2시간 가까이 수영장에 머물렀다. 최장기록이다.


배영 발차기의 마지막 난관은 우리 반 다른 친구 덕분에 넘어설 수 있었다. 헬퍼를 차고 있어서 ‘거북이’라 불리는 친구가 내가 발차기하는 걸 보더니 서서 발을 차올리는 연습을 해보란다.

“언니, 가볍게 톡 발을 뻗어 봐요. 물방울이 일어나게. 그렇지!” 역시 초보의 문제는 초보가 잘 안다.

수영 친구들, 언니들 덕분에 또 한 번의 고비를 잘 넘어갔다.

수영하는 사람들은 정말 신기하다. 모든 이(처음엔 아는 사람이 저렇게 많나 싶었다)에게 아침 인사를 하며 에너지를 주는 사람, 샤워장에서 굳이 다름 사람의 등을 닦아주는 사람(솔직히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무지 시원하다), 왕초보들이 헤맬 때 뭐가 문제인지 한 마디 툭 던져 주는 사람, 굳이 자기 시간을 들여 기꺼이 가르쳐 주는 사람…. 그 사람들 덕분에 수영이 점점 좋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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