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형 하실 수 있잖아요?”
우리 반 수영 선생님한테 내가 제일 많이 듣는 말은 “더더더더~!”이다. 소리만 들으면 음주측정기를 들이대는 경찰관인 줄.
더 세게, 앞으로 더, 더 멀리가 함축된 “더더더더~!”
나도 그렇게 더 잘하고 싶지만 정말 힘들다. 자유형 호흡을 하는데도 숨이 차 죽겠고, 킥판 잡고 발차기하는 건 죽어라 안 나간다. 꾸준하게 25미터를 한 번에 죽 갔으면 좋겠건만 쉽지 않다.
진짜 초보들만 득시글거리는 반을 맡아 선생님이 고생이 많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저녁반 선생님은 뒤처지는 회원들에게 따로 가서 연습하라고 한다는데, 우리 반 선생님은 그들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래서 다들 우리 반 선생님을 부러워한다. 하지만 선생님이 매일 우리에게 던지는 코멘트에는 뼈가 있다. 지난주에도 틈만 나면 수다를 떠는 우리에게 매일 각자의 목표를 가지고 연습하지 않으면 늘지 않는다고 한소리 들었다. 친절하지만 호락호락하지 않다. 칭찬에도 인색하다.
며칠 전에도 그랬다.
“선생님, 왜 킥판 발차기가 잘 안 될까요?”
“근력이 없어서 그래요. 같이 계시는 그 나이대 분들이 다 그럴 걸요. 젊은 사람들도 힘들긴 마찬가지예요, 힘이 있어서 더 나갈 뿐.”
킥판 발차기는 원래 힘들다, 그러니 힘든 건 정상이다, 계속 열심히 하시라. 그렇게 정리하면 될 것 같다.
내가 예상한 답변이 아니라 멋쩍어서 “아, 팩폭인데요?”하고 웃었지만 살짝 내상이 있다. 감정이 담기지 않은 정확한 진단에, 내 나이가 어때서라고 반박하고 싶지만 안타깝게도 마음만큼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 내 체력을 보아 선생님이 내 나이대를 모를 리 없지만, 그래도 지난 회식 때 나이를 공개하자고 했던 누군가가 밉다.
그러나 달리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이 들어 뭔가를 한다는 건 힘든 일이구나. 내가 그걸 하루하루 해내고 있구나. 지금이라도 시작했으니 다행이다. 그렇게 마음을 달래 본다.
드디어 그날이 왔다. 다음 분기 수영회원을 모집한다는 공지가 뜬 것이다. 기존 초급반 수강생은 중급반에 우선적으로 신청할 수 있는 특혜가 있다. 게다가 우리 선생님이 그대로 중급반까지 가르친다니 다들 어떻게든 올라가고 싶어 한다. 단, 자유형, 배영이 가능해야 한다는 조건이 달려 있다. 그래서 선생님이 모두 중급반에 갈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여지를 남겼나 보다.
경계에 선 사람들은 불안하다. 초급반에 머물려면 다시 추첨이라는 바늘구멍을 통과해야 한다. 그렇지 않아도 못하는데 여기서 중단하면 아마도 수영과 영영 멀어질 것이다. 불확실한 전망이 펼쳐놓은 암울한 미래 때문에 다들 이 순간을 두려워하고 있다. 과연, 무난히 올라갈 수 있을까.
나는 약간 애매하다. 배영은 배우고 있는 중이니까 괜찮을 것 같고, 자유형은 하긴 하는데 스스로 평가해 봐도 미흡하다. 눈치 보다가 그냥 중급반으로 등록해 버릴까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굳이 미리 확인하고 싶었다. 실력이 안 되는데 올라가게 해달라고 하는 것도 자존심 상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동안 나름 열심히 했다는 자신감이 내 마음속 어디엔가 자리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수업이 끝나고 선생님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선생님, 저 승급이 가능할까요?“
“자유형 하실 수 있잖아요?”
“네…. (아싸!)”
“사실 자유형이 안 되는 회원님들은 한 번 더 배우는 걸 추천하는데, 저도 여러 가지로 생각이 많네요.”
하지만 수강생들의 간절함을 알기에 마음 약한 선생님이 졌다. 우리 반 누구에게도 한 번 더 초급반에서 배우시죠,라는 말을 못 하신 듯하다. 거북이(허리에 차는 부력보조기구를 하고 있어서 붙은 별명)도 중급반에 데리고 가달라고 귀엽게 카톡 메시지를 보내는데 매몰차게 안 된다고 하긴 어려우셨을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 반은 30명 중 23명(평균 출석인원이 그 정도이다)이 중급반으로 올라가게 됐다. 선생님은 진도가 더딘 수강생들 때문에 여전히 힘드실 것이다.
중급반에선 평영을 배운다. 자유형과 배영도 제대로 마스터하지 못했는데 걱정이다. 지금보다 몇 배는 더 힘든 고생길이 예상되지만, 3개월간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어 다행이다.
내일은 아침 기온이 14도까지 떨어진다고 한다. 아침 해도 점점 늦게 뜰 것이다. 처음 수영을 시작할 땐 여름 한철만 생각했는데 이제 다가올 겨울을 걱정한다. 새벽 기상의 벽을 넘었더니 내가 제일 싫어하는 추위가 다가온다. 쉽지 않은 날들이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