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아이가 될 수 있을까

해봐야지 될 수 있다.

by 리틀루이스

이전 일기에서 나는 어린아이에 불과하다는 결론으로 글을 마쳤다.


그러나 나는 진정한 어린아이라 할 수 없다.

내면에 지고 있는 짐이 무겁기 때문이다.


나는 경험한 것도 많고, 그만큼 두려워하는 것도 많다.

세상과 일상을 향해 일말의 호기심 없이 몸에 바짝 힘을 주고 웅크리고 있는 존재는 어린아이다운 존재라 할 수 없다.


어린아이는 잘 논다. 잘 먹는다. 그리고 잘 잔다.

나는 잘 놀지 못하고, 잘 먹지 못하며 잘 잠들지 못한다.


그렇다면 내 안에는 온전한 어린아이가 자리하고 있지 못한 거다.

병이 들거나 어디가 다친, 그래서 더 특별한 보살핌이 필요한 어린아이가 나의 내면에 있다.


나는 그 아이를 건강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 아이가 건강해지면, 진정 아이다워질 수 것이다.


감정도 잘 느끼고, 느낀 그 감정을 잘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감정의 괴리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감정의 괴리(뒤틀림)이 없다면, 불안도, 불안에서 이어지는 공황도 줄어들겠지.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간다.

어떻게 건강한 어린아이가 될 수 있을까.


나는 이미 병들었는데,


이미 효모가 들어가 부풀어버린 빵을

어떻게 효모 없는 빵으로 돌이킬 수 있단 말인가?


그건 불가능하다.


난 이제 순수한 어린아이는 못 될 것 같다.

그러기에는 아는 것이, 불편한 것이, 두려운 것이 너무 많다.


자연스러운 어린아이, 물속에서 공황에 빠지지 않고 자유로이 헤엄치는 2개월의 신생아가 되고 싶다.

하지만 난 그렇게 될 수 없다.


순수한 아이가 될 수 없다는 말이다.

부풀린 빵을 되돌릴 수는 없지 않겠는가.


그럼에도, 아무리 부풀어도 빵은 빵이고,

겁을 집어먹고 불안에 떨고 있어도 아이는 아이다.


빵은 빵대로 먹을 수 있는 방법이 있고

아이는 아이대로 아이다울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빵이 아닌 것은 아니다.

아이가 아닌 것은 아니다.


나는 겁을 잔뜩 집어먹은 나의 내면의 아이에게 이렇게 이야기 한다.

‘너는 작은 아이야.’ ‘세상을 짊어지지 않아도 괜찮아.’


더 나아가 이렇게 이야기 한다.

‘울어도 돼.’ ‘눈물 흘려도 돼.’ ‘슬픈 일에 슬퍼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야.’

‘웃고 싶으면 웃는 게 자연스러운 거야.’

‘화가 나면 성내도 되고.’

‘짜증나면 투정부려도 돼.’


그래도 된다.


화를 참고 인내하는 방법을 깨닫기 위해서는

우선 화를 낼 줄 알아야 한다.
화를 내보며, 화를 내도 된다는 사실을 자연스레 체득해야 한다.

그 다음에 참아 보는 거다.


낼 줄도 모르는 화를 벌써부터 참으려 하면

지금처럼 마음에 병 나는 거다.


그러니 그래도 된다. 괜찮다.


자연스레 피어나는 감정을 곧이곧대로 느끼는 것은

잘 안 된다. 두렵기도 하다. 평생 막아왔으니.


잘 안 되도 괜찮다.

시작은 원래 그런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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