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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틀루이스 Aug 01. 2022

떠나는 사람만의 행운

어제까지도 보이지 않던 머리카락이 보인다

휴지를 석 장 떼서는 장판을 훔친다

그것으로 모자라 걸레로 닦았다


싱크대 틈바구니에 핀 곰팡이가 눈에 띠어

고무장갑을 끼고 수세미로 박박 밀었다

찬장의 그릇도 고르게 정리해본다


물기가 가시지 않은 화장실을 또다시 둘러보고

양지에 말려둔 이불을 걷어 냄새도 맡아 본다

꽉 들어찬 냉장고가 오늘따라 작아 보인다


TV소리가 거실을 가득 메우고 있지만

내 시선은 도로 한 가운데에 가 있다

차에서 흥에 들떠 있는 너희들에게


너희들이 왔다

나의 사랑하는 식구들아

내 존재의 이유야


너희들이 시끄럽게 떠들고 까불거릴수록

집을 어지럽히고 음식을 거덜 내고

내게 배고프다며 소리칠수록


나는 행복하다

나의 어여쁜 종달새들아

내 기쁨의 샘물아


세 시간 같았던 사흘이 지나가고

너희들은 희희낙락대며 떠나가는 구나

나는 이렇게 남아 손을 흔들 뿐이로구나


돌아와 부리나케 너희들의 흔적을 치운다

너희들이 없는 너희들의 흔적을 나는

홀로 견딜 수가 없다


커다란 냉장고, 가지런히 쌓인 이불, 집은 그대로지만

이곳을 가득 매운 너희들의 향취는 낯설게 뛰놀고 있다

그래 난 일보러 나갈 테니 내년 이맘 때 어서 돌아와 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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