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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틀루이스 Sep 04. 2022

존재규명

하루는 나를 소개해보라는 질문을 받았다

나는 직장인이요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답했으나 가슴 한 곳에 바람이 든 것만 같아

만사 제쳐놓고 나를 찾는 여정을 떠나기로 했다


나는 아무나 쉽게 갈 수 없는 오지로 향했다

광활한 대지 진홍빛 하늘 그리고 붉은 바위

그곳에서 나를 규명하는 것에

모든 감각을 곤두세웠다


내가 돌아왔을 때 세상은 나를

탐험가라 불렀고 그건 내 바람이 아니었기에

나는 새로운 나를 찾기 위해 산으로 향했다

새소리와 계곡물의 노랫소리를 들은 뒤


내가 돌아왔을 때 세상은 나를

은둔자라 불렀고 나는 다시금 짐을 싸서는

바다로 향했다 또 다른 나를 찾기 위해

파도 위에서 수평선을 주시하고 별을 관측했다


내가 돌아왔을 때 세상은 나를

항해자라 칭했고 나는 고개를 떨어뜨렸다

탐험가 은둔자 항해자는 나 아닌

다른 사람도 될 수 있는 법, 혹여나 나는


이러다 나를 잃어버리게 될까 두려워

도시로 발걸음을 옮겨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들 틈사이로 어깨를 넣어보았다

이 수많은 사람들은 자기가 누구인지 알까


알고 사는 걸까 모르고 사는 걸까

알고 산대도 명확하게 아는 것일까

모르고 산대도 꼭 알아야만 하는 건가

각 사람의 머릿속에 들어가 보았다가


숨이 막혀와 길바닥에 널브러진 나를

일으켜준 사람은 다름 아닌 너였다

나를 부축하며 너는 내가 누군지 물었다

나는 나이기 때문에 나다하며 답했고


너는 내가 제정신인건지 빤히 바라보았다

그 대답은 아무런 설명이 되지 못한다고

너는 다시 물었다 내가 누군지

알아들을 수 있게 설명해달라고


나는 혼란에 잠겼다 너는 나를 보며

그 혼란을 읽을 수 있었을 것이다 나는 진심으로

나를 규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 내 눈에 들어온 것은 너의 눈동자였다


네 눈동자에 비친 나의 모습이었다

나는 섬광이 번뜩였다 그러고선

너에게 말했다 나는 도시 한복판 쓰러졌지만

낯선 존재에게 도움을 받은 자라고


너는 나의 설명이 못 미더운 듯 근처 쉴만한 곳에

나를 데려가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주었다 너는 정말

모르는 것 같았다 나의 전 존재를 찾은 이 놀라운

발견의 순간을. 내게 귀 기울이는 너에게 나는


나를 찾는 여정에 대해 들려주었고 너는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흥미로운 사람이라고

우리는 금방 친구가 되었다 곧 더 가까워져

오랜 시간을 함께 해도 될 사이가 되었다


너에게 나는 유일한 한 사람 아무나 될 수 없는

그런 사람이 되어 있었고 너와 나는 우리가 

되어 있었고 우리 주위에는 우리와 함께

웃고 떠들고 다투고 화해하는 이웃들이 있었다

     

그 이웃들은 아무나의 이웃이 아니다

우리의 이웃이며 우리는 아무나가 아니다

너와 내가 맞물린 사이며 나는 아무개가 아니다

나는 더 이상 자신이 누군지 모르는 사람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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