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틀루이스 Feb 28. 2020

타인의존 - 자유를 위협하는 해악?

바로 알자 타인의존

얼마 전 <<의존적인 사람이 이별에 임하는 자세>>라는 제목으로 글을 썼습니다. 많은 분들이 찾아 읽는 것을 보며 한 편으로는 많이 읽혀서 좋았고, 다른 한 편으로는 이별에 대한 아픔을 겪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방증에 맘이 안타까웠습니다.


그리고 그 중 눈에 띠었던 것이 있습니다. ‘의존’ 또는 ‘타인의존’이라는 키워드로 검색해 들어온 경우였습니다. 그 키워드를 보면서 문득 생각난 것이 있습니다. 굳이 연애를 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타인에 의존적일 수 있다는 사실 말입니다. 그리고 이 타인의존이 어쩌면 연애보다 우리를 더 자주 힘들게 하는 것은 아닐까하는 의문도 들게 되었습니다. 연인은 한 사람이고(여러 명 있는 경우도 있지만) 타인은 여러 사람이니까요. 또 연인은 늘 존재하는 것이 아니지만(애석하게도), 타인은 늘 존재하니까요.


오늘은 결론부터 말씀드리고 내용을 전개할까 합니다. 그게 이 글의 논지를 이어가기에 수월한 방법인 것 같아서요. 결론은 이렇습니다.


‘타인의존 자체는 문제가 없다. 다만 어떤 관점과 방식으로 의존하느냐에 따라 문제여부가 갈린다.’




의존은 자연스러운 것

우리는 일상 가운데서 타인의 의견을 듣기도 하고, 타인과 정서적이고 물리적인 도움을 주고받습니다. 내 방을 벗어난 방 밖의 모든 영역은 사실 타인이 만들어낸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만의 세계에 사는 것이 아닙니다. 심지어 방 안에 있을 때도 우리는 스마트폰을 통해 타인이 만들어낸 각종 컨텐츠를 이용하며 타인들과 교류하면서, 또는 컨텐츠 그 자체를 즐기며 살고 있습니다.


또한 타인은 나 자신을 비춰주는 거울이기도 합니다. ‘나’라는 개념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타자’라는 개념이 없고서야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타인에게 의존하지 않고 사는 사람은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의존성을 아예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적절하게 밸런스를 맞추는 것이지요. 타인의존이 우리의 자유를 위협하는 듯 느껴지는 것은 의존의 강도가 너무 강하기 때문이거나, 또는 그 강한 의존성을 부정적으로 여겨 그것을 아예 배척하려 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자유의 규약

하지만 자유에 대한 다양한 개념 중 한 부분을 짚고 넘어가자면, 자유는 어느 정도 틀과 규약이 있어야 존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로 ‘자유로운 직장’이라 했을 때, 우리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들이 있습니다. 성(性)이나 학력에 대한 차별이 없고, 눈치 보지 않고 연차를 쓸 수 있으며, 꼰대가 없고, 칼퇴를 보장하며, 쓸데없는 회의나 회식을 하지 않고, 때로는 과감하게 탄력근무를 도입하며 직원 복지를 챙기는 그런 회사의 모습 말이지요. 여기서 자유로운 직장을 있게 하는 상황은 쓸모없는 것들이 없어지는 경우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필요한 규칙, 문화, 제도가 있어야 자유로움 또한 느낄 수 있는 것이었지요.


비단 이 이슈는 직장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닙니다. 가족관계, 친구와의 만남, 취미활동, 여행 등 삶의 대부분의 상황에서 우리는 자유를 만끽하기 위해 필요로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저는 ‘자유’하면 떠오르는 영화가 있습니다. 교도소 탈출기를 다룬 <<쇼생크 탈출>>입니다. 주인공 ‘앤디’는 교도소를 탈출하여 자유를 누리게 됐을 때 아무 필요도 없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신분 세탁을 위해 법적 제도를 이용하고, 은행시스템을 이용하여 막대한 돈을 인출하여 그 돈으로 멕시코에 거처를 마련합니다. (제도나 돈 없이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히피’들 또한 함께하는 사람이 없다면 혼자서 아무것도 없이 행복할 수 있을까요?)


일상에서 답답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이 있습니다. ‘저기 날아가는 새가 참 부러워’라고 말이지요. 하지만 그들이 간과하는 것이 있습니다. 첫째, 날아가는 새 또한 공기저항과 기류 등,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지 않고 날고 있다는 것과, 새들에게도 타인(새의 사회)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새들이 무리를 지어 생활하며, 맹금이 아닌 이상 독단적으로 행동하게 될 때 자유가 아닌 위협을 받게 된다는 것이지요. 다만 그들이 우리와 다른 것은 자신의 존재가치를 타인의 기준에 맞추어 보지 않는다는 것에 있습니다.(애초에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부정적인 타인의존

타인을 의존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앞서 말씀드린바 우리는 무엇인가에 결속되고, 또 그것들을 누릴 수 있을 때 자유로움과 행복을 느낍니다. 인간관계를 보면 알 수 있지요 아기는 보호자와 함께 있을 때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학생은 가정의 안정적인 지지가 있어야 자신이 원하는 바를 실천에 옮길 수 있습니다. 성인은 건강한 사회관계를 지니고 있을 때 자신의 안녕 또는 행복을 느낄 수 있지요. 그리고 앞서 말한 보호와, 안정과 행복을 있게 하는 사람과의 윤택한 관계가 비틀리게 될 때, 우리가 말하는 부정적인 타인의존이 발생하게 됩니다.


타인을 의존함이 문제가 되기 위해서는 내 존재가치를 상정할 때의 타인의 중요성의 척도를 과장되게 상정(*어떤 상황을 가정적으로 생각하여 단정함)하면 됩니다. 그리고 그 가치를 과장되게 상정하는 일은 대게 무의식적으로 일어납니다. 예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남으로서 자신의 불행하고 무료한 일상에서의 탈출을 꿈꾸는 일, 혼자 있을 때의 외로움을 참지 못하며 타인과 연락을 주고받음으로서 내면의 불충족을 채우려 하는 일, 상대의(부모, 자식, 친구, 상사 등) 성격이나 사회적 배경이 갑작스레 변하여 나를 더 이상 불편하게 하지 않거나, 또는 그들의 변화가 내게 행복을 가져다주기를 바라는 일 등이 있습니다.




정서적 상태의 좌불안석

위에서 말한 일들은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거나, 아니면 우리 자신이 실제로 하고 있는 행위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내 존재가치를 타인에게 다 맡겨버리면, 타인에게 받는 부정적인 영향이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예로 외로움을 참지 못하며 타인과 연락을 주고받는 일을 멈추지 못하는 사람이, 자신에 대한 타인의 평가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처럼 말이지요. 그렇다고 해서 타인의 평가를 완전히 무시하고 사는 것이 무조건 좋다는 말이 아닙니다. 자신이 타인에게 피해를 주면서도 그것을 알아채지 못하거나, 설명을 듣더라도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또한 타인과 교류를 할 줄 모르는 외골수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래도 외골수적인 사람은 타인의 평가에 큰 영향을 받는 사람보다 정서적으로는 안정적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타인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는 사람의 입장이 훨씬 ‘좌불안석’(*불안하거나 걱정이 많은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타인의 평가는 사람마다 다르며, 또한 그것은 구체적이지도 않습니다. 쉽게 말해 안개 속의 야생동물 같은 것이지요. 그것이 얼마나 큰지, 어떻게 생겼는지, 위협적인지 아닌지 알 수 명확히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즉, 내가 어떤 존재이며 어떤 정서적 상태에 있는지 알기 위한 수단으로 타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면 각기 다른 평가와 정확하지 않은 정보로 인해 나 자신이 흔들릴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건강한 타인의존

커피의 순기능(장점)에 대한 주장을 펼치는 사람들도 커피를 과하게 많이 먹는 것에는 반대합니다. 우리는 타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그들이 나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모든 이야기를 다 수용하려고 하거나 더 나아가 나를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지는 않은지 공상할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는 타인의 목소리를 듣기 이전에 우리가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 필요합니다.

  

나는 완벽하지 않지만, 존재 자체로 귀하다


건강하지 못한 환경에서 자라나게 되면, 유연한 사고보다는 경직된 사고를 하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자신 내면에 자리한 수치를 가리기 위해 ‘완벽해지려’하거나, 수치에 잡아먹혀 자신을 ‘필요 없는 존재’로 여기게 되는 경향이 생겨나게 됩니다. 우리는 이런 극과 극을 달리는 사고의 방향을 바로 잡아줘야 할 것입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을, 나는 부족하지만 최악까지는 아니고 그 자체로 귀한 존재라는 말을 스스로에게 해줄 필요가 있지요.


우리는 완벽하지 않아 스스로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타인과 교류를 해야 하며 그들과 도움을 주고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존재 그 자체로 귀하기 때문에 타인의 영향으로 존재의 뿌리가 흔들릴 필요는 없습니다. 다시 말해 타인과 교류를 하면 할수록, 자신의 강점을 찾아 그것을 발전시키고 부족한 모습이 있다면 고쳐나가는 것이지요. 오직 강점만 찾아 나는 완벽하다고 자위하는 것이 아닌, 오직 단점만 찾아 내 존재는 무가치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고 말입니다.


가족과 친구들, 사회의 여러 사람들과 마음껏 교류하십시오. 그 가운데 실수도 할 수 있고, 또 실수를 통해 배움과 성장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자신의 약점을 보여줘도 괜찮습니다. 약점은 숨기려 할 때 더 짙은 약점이 됩니다. 오히려 보여주고 공유하면 약점에 대한 강박적인 사고는 사라지고 거기에서 자유로운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타인을 통해 자신의 삶이 드라마틱하게 바뀌거나, 자신의 마음상태가 나아지길 바라는 것은 상상일 뿐이지 현실이 아닙니다. 현실을 인정하고 마주하시기를 바랍니다. 당신이 성인이 된 이상, 당신의 마음상태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사람은 ‘당신 자신’입니다. 타인의 목소리보다 우선 건강한 자신의 목소리를 만드십시오. 건강한 자신의 목소리는 자신의 부족함을 숨기는 자기기만이 아닙니다. 건강한 자신의 목소리는 ‘진실됨’입니다. 진실 되게 자신을 바라보고, 오늘 내가 더 나아지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하고 그것을 실천하십시오.




대표이미지 - Pixabay로부터 입수된 suhsam님의 이미지 입니다. 

사진1 - Pixabay로부터 입수된 Claudia Beer님의 이미지 입니다. 

사진2 - Pixabay로부터 입수된 LOLOGO님의 이미지 입니다. 

사진3 - Pixabay로부터 입수된 marcisim님의 이미지 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자살유가족에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