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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틀루이스 Apr 24. 2020

내 친구 공황장애를 소개합니다.

불안과 공황장애를 혐오하는 사람들에게

안녕하세요. 여러분.

오늘은 여러분에게 소개하고 싶은 친구가 있어서 이렇게 글을 써요.


이 친구의 이름은 ‘공황’이에요. 저는 태어날 때부터 공황이랑 친구였어요. 그리고 이 친구와 알고 지낸지 20여년 정도 지났을 무렵, 공황과 저는 더 가까워지게 되었어요. 우리가 자주 만나게 되자 주위 사람들이 공황을 다른 이름으로 부르더라고요. ‘장애’라고 말이에요. 이제 공황에게 장애라는 딱지가 붙어버린 것이지요.  


그런데 그거 아세요? 공황은 아무하고나 친구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요. 저의 짧은 일생 지켜본 결과, 공황은 마음 여리고 수줍음이 많아서 여러모로 다른 사람들을 신경 쓰는, 마음이 따뜻한 사람에게 더 깊은 호감을 가지더라고요. 


각설하고, 제가 어쩌다 공황이랑 친해졌는지 그 이야기를 시작할게요!



     

“마음 착한 너가 대견스러워”     

어느 날, 공황이 내게 말을 걸어왔어요. 그 날은 면접을 완전 망친 날이었어요. 머리는 새하얘지고, 얼굴 근육은 떨리고, 말도 더듬고, 아무것도 못한 저는 절망한 채 집으로 걸어오고 있던 중이었지요.


“항상 보면 너는 너보다 상대방을 먼저 생각하는 거 같아. 그래서 한 편으로는 좋으면서 한 편으로는 아쉬워. 좋은 이유는 너의 마음이 착하기 때문이고, 아쉬운 이유는 너의 진심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이야”

저는 공황 때문에 면접을 망쳤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공황은 그걸 몰랐나봐요.


“오늘 면접을 망친 거는 공황, 너 때문이잖아”

저는 공황에게 사실을 알려주려 했어요.


“아니야, 망치지 않았어. 단지 얼굴이 빨개지고 말을 더듬었을 뿐이야”     


“그게 망친 게 아니면 뭐야? 그럼 넌 그걸 성공이라 불러?”

공황의 말을 들은 저는 치밀어 오는 짜증을 참을 수가 없었어요.


“얼굴 빨개지고 말을 더듬어도 면접에 합격한 사람들이 많이 있어. 면접관들은 오히려 너무 완벽해 보이는 사람들을 부담스러워 하기도 해. 얼굴이 붉어지면서 말실수도 좀 하는 사람을 매력적으로 봐. 정말이야. 통계자료도 있어.”


“아까는 매.력.적.인 수준을 완전히 벗어났잖아!!!”

저는 공황에게 소리를 질렀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그게 당연한 거라 생각했으니까요.      


“그 정도로 나쁜 수준은 아니었어. 너무 비관적으로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게 너가 할 소리야? 날 둘러싸서 아무것도 못하게 만든 거는 너였잖아.”


“아니야, 그건 내가 아니었어. 그리고 내가 원한 것도 아니었고”


“너가 아니면, 그 자리에 너 말고 누가 또 있었다는 거야?”


“너”


“나라고? 내가 나를 너(공황)한테 휩싸이게 만들었다고? 너는 그걸 원하지도 않았고?”


“응. 맞아 정확하게 얘기했어”     


“내가 너 때문에 여태까지 얼마나 고생했는데. 어떻게 그렇게 뻔뻔하게 말할 수 있어? 너 때문에 망친 발표가 수두룩해! 너 때문에 버스도 지하철도 못 타고, 너 때문에 사람 많은 곳을 얼마나 피해 다녔는데! 이제 와서 이게 다 내가 했던 거라고? 아니야!!!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데!.. 이 나쁜..! 얼마나 힘들었는데..! 난 너 같은 거는 원하지도 않았어. 그리고 이런 약해빠진 모습을 원하지도 않았다고!”

저의 얼굴은 눈물과 주름으로 얼룩지며 심하게 일그러졌어요. 그때 누군가 제 모습을 찍었다면, 아마도 평생의 흑역사로 남았을 거예요.


너가 나를 원하지 않았던 거는 맞아. 너는 나에게 휩싸이는 것을 원하지 않았어. 나도  알아. 그래서 슬펐어. 나는 너를 소중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너와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하고 싶었어. 내가 너에게 가깝게 붙어있는 것은 너에게 불행이니까. 그건 친구로서  짓이  되는 것을 아주  알고 있었어. 하지만 너는 나를 미워하면서도 너에게로 끌어당겼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어떻게 미워하는데 끌어당길 수 있다는 거야. 말이 되는 소리를 해”     


“불면증도 그 순간을 혐오할수록 잠에 들지 못하고 더 심해지는 거 알잖아”


“이제는 내 불면증까지 들먹이는 거야? 너무 한다 정말. 나 불면증 때문에 약 먹는 것도 알잖아. 그 말까지 해야겠어?”


“너를 상처주거나 화나게 하려고 말하는 게 아니야. 내가 너의 친구이기 때문에 솔직하게 말하는 거야”  


“상대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게 친구라는 거야? 이게 너가 원한 친구사이야?”  


“다시 아까로 되돌아왔네. 그건 내가 원하는 게 당연히 아니지. 너가 만약 나와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지내면 꼭 필요한 순간에만 적절한 불안을 느낄 수 있어. 그리고 그것은 너가 일상에서 조심성과 치밀함을 갖춰 일을 잘 해내게 만들기도 하고, 적절한 긴장으로 일을 잘 끝마친 뒤에 너는 더 큰 즐거움과 평온과 만족을 누릴 수 있게 돼.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있어야 해. 이게 내가 너와 원하는 관계야”   


“...”

저는 스스로 좀 차분하게 이야기 해야 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데?”


“음.. 예를 들어서 설명해야 할 것 같아. 너는 술을 먹으면 얼마만큼 먹어야 만족하지?” 


“기분 좋아질 때까지 먹지. 기분 좋으려면 맥주 3~4캔은 먹어야 하고, 친구들이랑 먹을 때는 더 많이 먹고”     


그렇지? 내가 일부로 질문을 얼마나 먹느냐고 했는데,  이유는 너가 술을 마시는 이유가 ‘ 자체를 좋아하기 때문이 아니어서야. 술을 먹음으로서 느껴지는 느낌,  ‘감각 원하기 때문이야. 그러니까,  먹기를 좋아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정말 술을 좋아하는  아니라 술을 먹으면서 느껴지는 기분 좋은 감각을 좋아하는 거지. 정말 술을 즐기는 사람은 술의 향기나 맛을 음미하느라 술을 얼마나 먹었는지, 기분이 얼마나 좋아졌는지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아.”


“내가 기분 좋으려고 술 먹는 거는 나도 알아. 그래서 그게 어쨌다는 거야?”


“기분 좋아지는 것, 즉 느낌만을 추구하게 되면 행위의 가치는 떨어지게 되서 그래. 머릿속은 느낌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버리게 되고, 그 기대를 충족시켜야 하기 때문에 행동을 좌지우지 할 수 없게 되는 거야. 그것은 좋은 느낌이든 나쁜 느낌이든 마찬가지야.”


“공황아 너 똑똑한 거는 알겠는데. 내가 이해할 수 있게 좀 얘기해줘. 불면증 얘기는 공감이 됐는데 나머지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알겠어. 세 가지를 예로 들어서 설명해볼게. 첫째로, 너 음악 듣는 걸 좋아하잖아? 특히 ‘제이슨 므라즈’의 'You and I Both'를 좋아하지. 그 노래를 들을 때면 예전에 너가 좋아했던 사람의 기억이 떠오르면서 평소에는 느끼지 못하는 심장을 부드럽게 두드리는 듯 하는 아련한 감정을 느끼잖아. 둘째로, 그 노래를 직접 듣지 않고 머릿속의 상상으로 떠올리게 되는 때는 어떻지? 그때도 앞서 말한 것과 비슷한 감정이 다가오는 것을 느낄 수 있지. 하지만 마지막으로, 그 노래는 생각지 않고 거기서 오던 감정만을 느끼려고 하면 어떻게 되지? 감정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아무것도 남지 않아.”     


“조금.. 알아들을 수 있을 거 같아. 내가 뭔가 느낄 수 있다는 것은, 느껴질 수 있는 대상이 존재하기 때문이라는 말이야?”


“응 맞아. 기쁨도 슬픔도 마찬가지야. 두려움 또한 그렇고. 대상이 없으면 그것들은 느껴지지 않아. 따라서 아무런 매개체 없이 기쁨이나 두려움 그 자체를 마주하려고 노력해도 느껴지는 거는 없는 거지. 오늘 면접도 그래. 불안을 일으키는 원인을 너가 스스로에게 계속 제공했기 때문에 나(공황)를 마주했던 거야. 다시 말해 너는 나를 원하지 않으면서도, ‘면접관에게 잘 못 보이면 안 된다.’ ‘나의 치부가 드러나서는 안 된다’ ‘준비한 것들을 틀리지 않고 완벽하게 말해야 한다’ 등의 생각을 스스로에게 계속 주문했어. 그 말들을 구체화된 언어로 말한 것은 아니지만, 습관화된 무의식이 감각적으로 압력을 밀어 넣은 거지.”  


“이해했어. 그럼 너(공황)를 느끼지 않으려면 어떡해야 돼?”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너 자신에 대해서 완전히 잊어버리는 거야. 마치 어린 아이가 얼굴 이곳저곳에 붙은 모래를 아랑곳 않고 모래성 쌓기에 집중하는 것처럼. 면접에서도 너의 복장이나 표정 등, 너가 어떻게 보여야 하는지 신경 쓰지 않고, 면접의 대화 내용에 완전히 몰입하는 거지” 


“아무래도 나는 그렇게 되기 어려울 거 같은데?”     


“그래도 괜찮아. 사실 타인과 있을 때 상대와 자신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은 세상에 단 한 명도 없을 거야. 그래서 가장 이상적인 방법이라고 얘기한 거야. 하지만, 완전히 몰입하지는 못하더라도 너의 시선을 ‘지금 하고 있는 행위’에 두면 불안에서 많이 떨어질 수 있을 거야. 그리고 아까 얘기 했듯이 부끄러워하고 얼굴 빨개지는 사람을 매력적으로 보니까. 굳이 이상적이 될 필요는 없어.”   


“나 아직 버스나 지하철 타면 조금 불안해하잖아. 이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나(공황)를 가까이 두게 만드는 생각습관에서 벗어나면 되겠지? 주위 사람들을 신경 쓰지도, 너 자신을 의식하지도 않는 거야. 그런데 이 방법은 어떤 것에 집중함으로써 가능하지. 사람은 어떻게든 의식에 영향을 끼치는 것들을 붙잡아야 살 수 있는 존재니까. 좋아하는 책을 봐도 좋고, 음악을 들어도 좋아. 만약 불안이 엄습해오면 거기서 도망치려 하지 말고, 불안을 마주해봐. 도망치려하면 발목을 붙잡히겠지만, 돌아서서 불안을 마주하고 그것(또는 공황)이 어떻게 생겼나 면밀히 살펴보려 하면 금방 사그라들거야.”  


“이제 어떡해야 하는지 알 거 같아. 그런데 너는 내 친구라면서 왜 너가 사라지는 방법을 알려주는 거야?”     


“나는 사라지는 게 아니야. 너와 거리를 두고 작아지는 거지. 그러다 너가 너 자신을 심하게 의식하게 될 때, 타인을 필요 이상으로 신경 쓰게 되는 순간 다시 가까워지게 될 거야.”     


“지금은 너가 예전만큼 밉지 않아.”


“고마워, 여태까지 들은 말 중에 최고의 칭찬이야! 그 말을 들으니 내가 점점 작아져가..”




메인이미지 - Pixabay로부터 입수된 愚木混株 Cdd20님의 이미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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