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들에 대한 숙배(肅拜)
1.
이모
이 새벽 이른 출근길
손이 곱아드는 찬공기에
지난밤 꿈
꼴딱 삼키는데
이모가 생각나대요.
이모라는 두 글자
목구멍에 앉히자마자
이모 팔십 평생이
눈고랑서 왈칵
볼을 타고 지나가요.
이모
문득 묻고 싶어요.
이모부 일찍 보내드리고
글씨도 쓸 줄 모르는
무학(無學)으로다가
두 아들 바라기로
살아오며
여태껏
어찌 살아왔더랬어요?
2.
곱상하니 잘나게
낳았어도
아픈 손가락
작은오빠 걱정에
양동 점쟁이
문지방이 다 닳도록
수십 년을 점사 보며
이모 마음 한 번쯤은
쉬었던 거겠죠?
한겨울 자정
인적 없는 산속 길에
제사상 차려놓고
그토록 애타게
이모가 풀어낸 건
오빠 꼬인 인생일까
뭉친 이모 마음일까
이제야 돼서
가늠해 봐요.
절로 점집으로
그리 헤매며
우리 형일이 좀
살게 해주쑈
피게 해주쑈
바라는 이모를
엄마는 미련하다
탓했었지만
그래도 두 자매는
두텁게 서로를
헤아렸기에
그 사랑 잇어다가
엄마 없던 시절
미력한 어린애를
그리 살뜰히
지켜냈겠죠.
3.
까아만 새벽에 한 번
어둑한 저녁에 한 번
우유배달
손수레 끌던
이모한테
심통내던 가시나
"이모가 가믄 어쩐당가!"
울매불매 쫒아나가던
가시나가
수능날 아침
학교로 출근하다가
달그림자 언뜻 보고
그때 이모
베지색 야쿠르트 잠바
얼핏 눈에
아른거렸던가 봐요
이모의 삶도
벅찼을 시절
우리 집은
집도 절도 아닌
풍비박산중
며칠이나 내내 굶다
모로 세운 몸
방바닥에 붙잡힌
엄마를 두고
여섯살 걸음으로
저녁내 걸어
용당동 이모집
용케 찾았죠
솜씨 좋은 당신이 차린
뽀얗던 밥상
망설이던 숟가락
오도가도 못했던건지
흰밥 위 꾸욱 눌러
올려주시던
곰곰하니 잘익은 황새기젓
"여엄병할 년"
덤으로 올린
푸진 한 상은
무력도 치욕도
견딜만 함을
그리 미리 뀌띔해준 것이었네요.
4.
이모 보내드리기
한 달 전
어찌 그리
시의적절하게도
이모를 '만나지러'
갔던 그날에
살기 바쁜 그 좋은 핑계
여러해 묵어
오랜만에 들른 시골집을
물어 찾는데
작은 돌담 아래
미리 마중 온
못내못내 꼿발딛는
이모 작은 키
치매가 깊게 온 것
몰라볼만큼
진__우_야_아__
길게 빼다
툭 던지는
여전한 곡조(曲調)
두 글자에 재워 둔
십수년 그리움
가슴에 돌부리 박혀
내내 무겁고 단단하네요.
경황이 없기도 했었거니와
신산스러운 삶에
내쫓긴 통에
마음의 여유
한치도 없어
버석버석 서걱이는
가슴 안고도
암시랑도 않은척 했었던거죠
정신이 왔다갔다
하시는 중에
나를 몰라봤다
다시 알아보며
떨어진 마른벼락은
"얼마나 보고싶었는디이"
이모의 통곡
꺼내진 그리움
바지춤에 다시 넣는
이모 두고서
발길 돌려
돌아온 길은
저리고
아리고
욱신했지만
"어쩔수 없어"
그 말만 되뇌인거죠.
보낸다는 서운함에
온 집안 털어
이도 저도 모두
챙겨 싸시길래
페트병 사이다 두 병으로
겨우 무마했었죠.
지쳤던 긴 여행
그리 닫아 걸었어도
마음은 요지부동
그 장면에 내내
붙들리대요.
한참을 더 살아보니
인자 알아졌어요.
이모가 준 사랑
보답드릴 내 사랑은
닥닥 긁어 보태어봐도
초라하고 옹색하고
숭할만큼 부끄러워
내밀 수도 없었었네요
애써 배운적 없는
이모의 그 사랑은
왜 이리도 깊은지!
어찌 이리 오래도록
끝나지 않고
변치도 않는지!
나 자신을
저주하고 미워했던
그때의 나는
믿을 수도
믿지 않을 수도
없었던 거죠.
이모집 거실등
스위치
위에
크게
내 번호
적는 것으로
애써 부채감
지우려 했지만
그렇게 이모는
멀리 가셨죠.
5.
작은오빠 먼저 보낸
그 해,
이모까지 보내드린
큰오빠는 말로는
나이 육십 다 된 마당에
아버지 어머니
동생까지 마저 잃어
천애고아 되었는데
훈히 하는 말마따나,
"시원섭섭한 그 마음이야"
말씀하시대요.
오빠가 있는
내 기억 먼 시작은
오골진 개구리 교련복
등굣길에도
나를 한껏 안아주던
늠름한 모습
초로가 다 된
큰 오빠는요
이모 이숙 좋은 점
많아 닮아
차분하고 다정했어요.
부모 잃은 그 마당에
나를 다독이는 애틋함은
다시 생각해도 따사롭네요.
6.
이모!
멀치감찌 떨어져서
동구 밖까지 나오시며
할 말 삼키던
이모
작고 동그마한 몸
오도카니 구부리더니
점점 먹먹해져
작은 점이 된
내 뒤에다
두 손 모아 합장하며
무슨 기도 하셨길래요
먼저 떠난 허망한
오빠를 품고
보답한 적도 없던
나를 녹여 품고
그렇게 미련한 사랑은
속터지게 오래도록
미력하게 끈덕지게
흐르고 있었네요.
가만,
내 어린 시절
아니,
내 평생
알게 모르게
켜켜이 꼼꼼히 발라놓은
이모의 사랑
그 비방(秘方)은
들뜨던 내 삶을
그나마 포도시
접합했었나봐요.
아니,
아니었네요
이모의 삶으로
품어 녹인 사랑은
장돌뱅이 같던 내 맘을
미련한 끈적임으로
이 삶에 딱 붙들어
살게 했네요.
7.
짜고쓰고시고맵고
그 떫은 맛
진저리나서
삶을 내치며
밀어 낸 동안은
미움 속에 사랑,
환난 속의 기쁨을
몰랐었어요.
그런데
아니,
아니었어요
사랑은
투박하게 미련하게
애쓰거나 집착하며
갈망하며 낙망하며
애달프고 추구하며
아프고 속 터지는
그 시시각각의 지난함!
그 순간순간의 부진함!
그 가운데서만!
애틋한 부대낌으로로
우러 나는 것이었음을!
그것이
있는
그대로의
사랑임을!
이제야 포도시
알아보네요.
당신은
삶의 미진함을
재료 삼아
살아본 적 없는
제 삶 안에서
이토록 생생하게
이처럼 애틋하게
켜켜이 살뜰하게
빈틈없이 딱 붙어
본새 좋고 쓰임 좋게
내 삶의 물길을 터요.
8.
이모!
이모라고 부르면,
나는 마음이 말캉해져요
말캉하다 못해
녹아내려요.
내 볼을 비비고
귀를 깨물며
이뻐죽노라
꾹꾹 눌러담아
뭘 먹였길래
이모라는
진언(嗔言)을
불러 볼래요
이모!
두 글자가
개운한 눈물로
오늘의 고단함을 헹궈요
이모!
두 글자로
당신이 살았던
하루하루를
염주알 삼아
108 번뇌 녹아나는
찰나의 해탈을
내가 살께요
이모!
당신이 없었을
내 삶을
어찌 삶이라고 하겠어요?
이모!
당신이 없어도
이 삶은
당신으로 내내 살아지니
비로소
삶이라고 하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