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상시 같으면 눈부신 햇빛 탓에
잠에서 깨어날 시간인데
오늘은 반대로 햇빛이 들지 않는
어두움에 이끌려 눈을 떴다.
아직은 차가운 새벽 공기에
이불을 몸에 두른 채로
창문을 열어 보았다.
역시 내 예상이 맞아떨어지듯
하늘은 온통 잿빛이었고,
햇빛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단 하나 내 예상을
뒤엎는 존재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눈이었다.
창밖에는 첫눈이 내리고 있었다.
잿빛 하늘에서 새하얀 눈이
쉬지 않고 쏟아지는 모습은
정말로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문득 눈송이 하나가 내 손등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정작 내려앉음과 동시에
곧장 사라져 버렸다.
그저 내 손등 위에 작은 물방울만이
나에게 눈송이가 앉았다는 사실을
증명해 줄 뿐이었다.
하염없이 내리는 눈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다.
시간이 멈추었다.
이내 나는 시간을 돌린다.
아니, 나를 돌린다.
그렇게 시간을 돌리어
예전의 나로 돌아간다.
지금까지 줄곧 그러했듯이
바보처럼 또다시…
언제부터였을까.
너의 SNS는 다른 남자의 이야기로
가득 차 있었고,
결국 네가 그 남자 때문에
나를 저버렸다는 현실을
알게 되었을 무렵부터
나는 시간을 돌리기 시작했다.
누가 보아도 너는
바람난 나쁜 여자였지만,
나는 시간을 돌리어
우리가 처음 만나고,
우리가 처음 고백하고,
우리가 처음 사귀었던
그때로 돌아가기 위해 애썼다.
단순히 기억을 되짚는 행위가 아닌
마치 편집증 환자라도 되는 양
네가 당시에 입었던 옷,
너와 내가 먹었던 음식,
내가 너에게 했던 말과 행동 하나하나,
이 모두를 세세히 떠올려 낸다.
그리고 돌아간 그 시간들 속에서
나는 나의 잘못을 찾는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 이별의 이유를 찾는다.
지난 두 달 동안
나는 이렇게 이별의 이유를
찾아 보았다.
때로는 멍청하게 서서,
때로는 죽은 듯이 누워서.
하지만 아무리 찾아도
우리가 이별할 만한
결정적인 이유는 없었고,
내 주변에서는 다들
다른 남자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오늘도 어김없이
다시 한번 시간을 돌리어
우리 이별의 이유를 찾아 본다.
찾고 찾고 또 찾다가 너무 지쳐
이제는 시간을 돌릴 힘도 없어질 때면
나는 너를 욕하고 미워할까.
잠시 회상을 멈추고 창밖을 내다보자
어느새 눈은 거짓말처럼 그치어 있었다.
‘누군가가 나에게 와서
눈이 내리지 않았다고
우기면 어떻게 하나…’
이런 말도 안 되는 걱정이 들 만큼
첫눈은 금세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내가 봤으면 그만이지.
내 눈에 첫눈을 담았으면 그만이지.
뭐, 내가 좋았으면 된 거지.’
내 기억력은 너무 짧다.
하물며 너무 어리석다.
분명히 이별의 이유가 있을 텐데
나는 그것을 기억해 내지 못한다.
생각에 생각,
또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다
마침내 나는 결론에 이르고 말았다.
그래, 우리 이별에는 이유가 없다.
이별의 이유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 그냥 헤어진 거야.”
그리고 오늘은 틀림없이 첫눈이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