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인 줄 몰랐다.
처음에는 네가 아닌 줄 알고
눈길을 돌렸다.
하지만 너였다.
지금 내 눈앞에 있는 것은
분명 너였다.
마치 아무 일도 없던 사이인 양
자연스럽게 내 맞은편에 앉아
환한 웃음을 지어 보이는 너.
나는 넋이 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그런 너를 바라보고 있었고,
너는 예전처럼 마냥 웃고만 있었다.
뒤늦게 차를 주문하고
찻잔이 나오기까지 몇 분…
나는 어떠한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 없었다.
네 짧았던 단발머리는
이제 찰랑거리는 긴 생머리가
되어 있었다.
내가 처음 보는 옷을 입고 있는 너,
내가 처음 보는 신발을 신고 있는 너.
지금 내 앞에 너는
내가 전혀 모르는
또 하나의 너였다.
‘그만큼 많은 시간이 흘렀구나.’
내가 알던 예전의 네 모습을
떠올리고 있는 동안,
향기 진한 홍차가
테이블 위에 놓였고
그제야 우리는 입을 열었다.
형식뿐인 인사와 어색한 눈 맞춤.
“머리…”
나는 두 번째 손가락으로
너의 머리카락을 가리켰고,
너는 비단결같이 고운 머리를 매만지며
수줍은 듯 웃어 보였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너의 모든 것은 변하였지만,
그 웃음만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웃을 때마다 초승달처럼 가늘어지는
너의 커다란 눈,
두 뺨 위에 아련히 번지는
연분홍빛 보조개,
얇은 입술 사이로 살포시 비치는
무딘 송곳니,
… 어느 것 하나 변한 것이 없었다.
홍차 향이 가득히 퍼질 수 있는
딱 그 정도의 작은 공간 속,
그리고 우리에게 허락된
딱 그 정도의 작은 시간 속,
그 안에서 너는 나에게
지난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나 역시 그런 너의 이야기를 들으며
네게 무언가를 전해 주고 싶었지만,
이제 내게는 예전과 같이
너를 재미나게 또 웃음 짓게 할 말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았다.
내가 너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너의 이야기 하나하나에
귀 기울이는 일.
… 단지 그뿐이었다.
시간이 흐르고
우리 앞에 있는 홍차가
차갑게 식어 갈 무렵,
너는 자리에서 일어나
한사코 나에게 밖으로 나가자며
떼를 썼다.
열 번, 백 번, 천 번이라도 나가고 싶었다.
너와 함께 나가서 어디든 거닐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또 한 번 바보같이
약속이 있다는 뻔한 핑계로
너를 단념시켰다.
네가 떠난 후,
나는 그 자리에
한참을 멈추어 있었다.
내 앞자리에 놓인
작고 예쁜 찻잔과 잔 받침에
시선을 빼앗긴 채
그렇게 말없이 멈추어 있었다.
기억 속의 너…
내 기억 속의 너는
늘 웃고 있었다.
세상 무엇보다 아름다웠던 네 웃음,
언제나 나를 향해 지어 주던 네 웃음.
그 웃음은 나를 울게도 웃게도 만들었고,
때로는 미치게도 만들었다.
……
웃을 때마다 초승달처럼 가늘어지는
너의 커다란 눈,
… 나는 그것이 참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