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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첫 문장의 두려움

첫걸음의 두려움

by 기기

첫 문장의 두려움. 이것은 전혀 알지 못하는 길을 가야 하는 두려움과 같다. 이 길이 어디로 이어지는지, 혹은 갈림길은 있는지조차 알 수 없다. 그저 무작정 나아갈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첫 번째 문장은 첫 번째 걸음과 같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발을 옮기기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두려움이 가득한 상태에서 조심스럽게 움직여야, 그러니까 조심스럽게 써야 한다.


하지만 일단 길을 따라 걷기 시작하면 모든 게 순조로워 보인다. 저 길 끝에 내가 기다리는 곳이 있을 것만 같다. 그래서 기분이 좋아진 상태로 길을 걸어간다. 명랑하기 그지없다. 그렇게 명랑하게 길을 걸으며 별의별 짓을 다한다. 가다 서서 사방을 둘러보기도 하고, 지나온 길을 돌아보기도 하고, 이 길이 또 어디로 이어지나 목을 빼 앞을 보려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명랑함은 오래가지 않는다. 끝없이 이어지는 길. 도저히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어떻게 가야 하는지도 모르기에 다시 두려움이 찾아온다. 그래서 왔던 길을 되돌아 가기도 하고, 주저앉아 울기도 한다. 심한 경우엔 그냥 길을 벗어나 버린다.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 두려움을 극복한다면, 첫 번째 발걸음의 두려움과 도중에 찾아오는 두려움을 극복한다면, 결국 길 끝에 다다를 수 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이 사실을 모른다. 두려움을 억누르고 그저 꾸준히 걷다 보면 목적지가 나타난다는 걸. 도중에 길을 벗어나 방황하거나 잠시 체념할 수도 있다. 그 장애물들을 넘어서면, 목적지가, 완성된 글이 나타난다.


목적지에 도달했다고, 글이 완성됐다고 기뻐하기엔 이르다. 자신이 걸어온 길을 다시 돌아봐야 하기 때문이다. 길을 걸으며 남겼던 발자국들을 다시 봐야 한다. 발자국이 길을 따라 쭉 이어져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누구나 방황했고 누구나 멈춰 섰고 누구나 다시 돌아가려 했기 때문이다. 그런 자신의 발자국을 보며 다음에 이 길을 걸을 때, 혹은 누군가 다른 사람이 이 길을 걸을 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발자국을 바로 잡아야 한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쓴다. 오타, 오류, 주제를 벗어난 문장, 이런 것들을 그대로 남겨 놓으면 다음에도 그런 일을 반복하게 된다. 내가 갔던 길을 따라오는, 내가 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짜증, 혼란, 불쾌감, 혹은 불안감을 안겨줄 수 있는 것들이기에 다시 고쳐야 한다. 이게 내가 하는 퇴고다. 이 것이 나의 퇴고 방식이다.


첫 문장의 두려움. 그것으로 인한 고민과 걱정. 하지만 일단 쓰기 시작하면 모든 고민과 걱정이 사라진다. 어느 순간 글이 막히기 전까지는. 그렇게 되면 그것들은 나를 다시 찾아온다. 첫 문장의 두려움이 나를 다시 찾아온다. 그것을 극복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회피할 수도 있다. 다시 무작정 써 볼 수도 있다. 아니면 휴식을 위해 다른 글을 읽을 수도 있다. 만약 극복하지 못한다면, 그 글은 버려지는 것과 다름없다. 그런 짓만은 하지 말자. 자신이 쓴 글은 자신이 끝까지 써야 한다. 다른 사람에게 조언을 바라는 것은 상관없지만, 그 사람에게 글의 끝을 물어보거나 그저 막연히 어찌해야 할지를 물어보지는 말자. 직접 써야 한다. 그래야 그 글이 자신의 글이 된다. 그래야 나중에 다시 그런 일이 생겼을 때 스스로 극복할 수 있다.


52주 즉흥 글쓰기 훈련의 첫 번째 글입니다. 이번이 첫 번째 주네요. 이제 51주, 51개의 글이 남았습니다.

다음 주 주제는 '당신의 첫 장이나 에세이, 단편에 대해 가까운 사람에게 편지를 써라(단, 보내지는 마라).'입니다.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가 되겠군요. 그러나 보내지는 않는 그런 편지. 재밌을 것 같습니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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