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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낙담

by 기기

사람은 바라던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았을 때 낙담한다. 그래서 실망이나 좌절의 상태나 그와 비슷한 때에 자주 겪게 된다. 무언가 시도해 보았거나 바랬던 것이 있었던 사람이라면 반드시 겪어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 나도 겪어 보았다. 수없이 많이 겪었었다. 장난감을 사지 못했기에 낙담했었고, 게임을 못했기에 낙담했었으며, 시험 성적이 못 나와서 낙담했었다. 그렇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다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질 뿐이다.


지나 보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낙담했을 당시에는 정말로 크게 다가왔었다. 장난감을 사지 못했을 때의 그 슬픔, 안타까움을 잊을 수가 없다. 2~3만 원 짜리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걸 사기 위해 나는 용돈이란 용돈은 다 긁어모은 상태였다. 그러나 부모님은 단호하셨다. 장난감을 살 수 있다는 기대에 부풀어 있던 나는 풀이 죽었다. '도대체 왜 못 사는 거야?'라는 생각만이 머리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억울했다. 하지만 마냥 떼를 쓸 수는 없었다. 엄마에게 혼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결국 나는 몇 주 뒤에 그 장난감을 살 수 있었다. 내 속상함과 억울함은 눈 녹듯이 사라졌다.


중학생이 되었을 때 낙담은 나를 다시 찾아왔다. 이번에도 꽤나 컸다. 어머니가 내 꿈에 대해 하신 말씀 한 마디가 날 낙담하게 했다. 그 한 마디가 나를 낙담시켰다. 왜냐고? 그야 당연했다. 15살, 중학교 2학년이었던 내겐 부모님이 아주 큰 영향을 주었으니까. 나의 사상, 철학, 종교, 가치관. 이 모든 것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이 어머니였다. 그러니 겨우 말 한 마디에 낙담하는 건 무리가 아니었다. 그때까지 나를 지지해 주시고 응원해 주시던 내게는 너무나 커다란 그런 존재가, 한순간 나를 떠난 것만 같았다. 마음속에 커다란 구멍이 생긴 것만 같았다. 그 충격이 아주 컸었다. 정말, 많이 컸다. 그렇지만 이제는 안다. 왜 어머니께서 반대하실 수밖에 없는지를, 왜 나를 지지해주실 수 없는 지를. 이젠 안다.


그리고 고등학생이 되어서 나는 또다시 낙담하고 있다. 이번에는 조금 다른 이유다. 글. 글을 쓰면서 나는 낙담하기 시작했다. 읽을 때에도 마찬가지다. 언제나 행복과 좌절이 교차한다. 좋은 글을 읽을 때면 왜 나는 이런 글을 쓰지 못하나 싶은 좌절감이 든다. 글을 쓰고 나면 내 글은 왜 이런가 싶은 비슷한 종류의 좌절감이 든다. 그러나 언제나 낙담하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좋은 글을 읽을 때면 나도 이런 글을 써내야지 하는 희망이 생긴다. 글을 쓰고 나면 다음엔 더 좋은 글을 써야 한다는 희망이 생긴다. 조금씩은 나아지리라 믿으며, 더 좋은 글을 쓰게 되리라 믿으면서 나는 글을 쓴다. 낙담한다. 희망한다. 다시 낙담하고, 또다시 희망한다.


저번 주말에 부산 여행을 갔다 왔네요. 늦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스스로에게 한 약속을 못 지켜서 아쉽네요.

다섯 번째 주제, 다음 글에서 다룰 주제는 '곤경에 처한 경험'입니다. 저번 주제에 이어서 계속 좌절이나 절망같은 부정적인 경험에 대한 글이 되겠네요.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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