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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작은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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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기 Jul 30. 2016

나비를 따라가 보았다

낯선 경험

  토요일 한 낮, 나는 운동을 끝내고 집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너무 더워서 짜증이 났지만 하늘의 구름들은 더위를 잊게 할 정도로 예쁘지는 않았다. 그렇게 걷다가 길 구석의 꽃 위에 앉아있는 나비를 보았다. 흰나비였다. 나비는 꽃 위에 앉아 있다가 날아올랐다. 그러고선 내 주위를 맴돌았다. 나는 처음엔 웬 나비가 갑자기 내 주위를 도나 싶었다. 그러다가 문득 나비가 멀찍이 날아갔을 때, 나는 나비를 따라갔다. 계속 따라갔다. 나비는 내가 전에는 가본 적 없는 길로 나를 이끌었다.


  그렇게 나비를 따라가다 보니 더위는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그리고 나비를 따라가 보니 전엔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볼 수 있었다. 나는 길 구석에도 이렇게 예쁜 꽃들이 피어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조그맣고 예쁜 노란 꽃들. 어떤 꽃이었는지는 몰라도 너무 예뻤다. 나비는 잠시 그 꽃 위에 앉아 식사를 하는 듯했다. 그러더니 다시 날아올랐다. 나도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나비는 계속 내 눈에 보이는 곳으로 날아갔다.


  나비는 그렇게 날아가다가 돌연 방향을 바꾸더니 붉은 벽돌 담장 너머로 날아가 버렸다. 나는 나비가 날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다시 그 낯선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길을 따라가며 소소하지만 큰 것들을 보았다. 그래서 나비가 떠나간 아쉬움을 지울 수 있었다. 나는 골목 사이 사이를 덮은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들을 보았다. 무거운 짐을 낑낑 거리며 들고 가던 여자애도 보았고, 있는지조차 몰랐던 북 카페도 보았다. 더 걸어가자 어느덧 조금 익숙한 길이 나타났다. 내가 평소에 다니던 골목길이었다. 이제 낯선 곳에서 벗어나 익숙한 곳으로 돌아갈 때라고 생각됐다. 나비를 따라 걸은지 30분이나 되었던 것이다. 부모님께서 걱정하실 거라 생각한 나는 서둘러 집으로 갔다.


 이날 이후 나는 길가의 꽃들을 유심히 살펴보고 있다. 흰나비가 보이면 쫓아갔고, 보이지 않으면 꽃구경을 실컷 했다. 내 눈앞에 날아든 나비 한 마리 덕에 나는 낯선 골목길을 걷고 길가의 들꽃들을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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