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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바이킹 May 09. 2017

너, 얼굴 좋아졌다!

16/  이직에 대한 몇 가지 오해



"야, 너 얼굴 진짜 좋아졌다."

오랜만에 만난 그녀는 진지한 눈빛으로 내 얼굴 여기저기를 뜯어보았다. 얘 표정 핀 것 좀 봐. 역시, 회사를 나가니까 얼굴 빛깔이 딱 달라지네. 어, 그럴 리가 없는데. 며칠 밤을 샜고, 스트레스에 아무거나 막 주워 먹었고, 그놈의 막내를 또 하느라고 마음이 꼬질꼬질 말이 아니었는데. 너 OO님 알지? 그래, 그 XX 회사 가신 분. 지난주에 우연히 마주쳤는데 역시나, 얼굴에서 광이 나더라 광이. 역시, 회사를 나가니까...! 예전 직장 근처 카페에 앉아 한참을 부러움 섞인 그녀의 '역시나...!'를 듣고 있는데, 지나가던 또 다른 동료가 크게 아는 체를 했다. "어머, 이게 누구야? 얼굴 지인짜 좋아졌네~ 못 알아볼 뻔했잖아!"


집으로 가는 길, 지하철 출입문에 비친 내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래, 몰라볼 수도 있었겠네. 웬 시커먼 팬더가 하나 어둠의 기운을 뻗치며 서 있었으니. 역시나...! 난 또, 기대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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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직 리프팅 효과


퇴근길 회전문을 밀고 나오면서부터 느껴지듯 조금만 회사를 벗어나도 얼굴이 좋아지기는 한다. 단 며칠의 휴가만으로도 우린 얼굴에 마스크팩 열 장쯤의 물광 효과를 줄 수 있다. 종일 한 자리에 새우처럼 오므려 앉아 긴장 타지 않아도 되고, 입술이 곶감처럼 허옇게 일어나는 건조함에 눈을 부릅떠 가며 모니터를 노려보지 않아도 되고, 무엇보다 툭하면 내 안의 악마를 흔들어 깨우는 그 인간을 안 봐도 되고.


그러나 그 '물오른 얼굴'은 이처럼 잠시나마 우리를 괴롭게 하는 업무 환경과 스트레스로부터 멀어졌기 때문이지, 반영구적 '이직 리프팅 효과'는 아니다. 지난달 퇴사한 김 대리는 드라마 속 도깨비처럼 영원불멸의 불로소득자로 변신한 것이 아니라, 오늘부터 또 다른 회사의 김 과장이 되어 폭풍 야근을 했다. 이직은 말 그대로 이 회사를 나가 저 회사로 가는 것이다. 아마 당신의 옆자리엔 저 회사를 떠나 이 회사로 온 동료도 있을 것이다. 그의 목적지가 어디이건, 앞으로의 걸음 걸음에 어떤 어려움이 놓였건, 이직자의 뒷모습은 이 곳의 현실을 즈려밟고 떠났다는 사실 하나로 그저 아름답게만 비춰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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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한 그 애는 꽃길만 걷고 있을까


패기 넘치게 입사한 새로운 회사에서의 첫 일 년. 나는 매일 새롭게 넋이 나갔고, 너무 졸렸고, 자주 숨이 턱 막혔고, 무엇보다 미치게 외로웠다. 걱정했던 동기들과의 나이 차는 정작 별 문제가 되지 않았는데, 문제는 경험의 시차에 있었다. 주변 동기들이 신나게(?) 야근을 마치고 삼삼오오 모여 서로의 낯선 기쁨과 슬픔에 대해 한풀이를 할 때, 이미 가슴 쫄리는 신입부터 마의 3년 차까지를 지나 온 나는 아무도 대답해줄 수 없는 고민들을 혼자서 잘근잘근 씹어야 했다. 두 번째 신입사원이자 이직 1년 차, 그리고 직장인 4년 차라는 '듣보잡'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던 탓에 나의 고민들에도 딱히 이렇다 할 근본이 없었다. 속 모르는 친구들은 그저 어깨를 도닥도닥 해줄 뿐이었고, 어쩌다 선배들에게 주섬주섬 속내를 털어놓으면 '아직 고민할 연차 아니다'라는 대답과 '그쯤은 각오하고 선택한 거 아니냐'는 대답이 번갈아 돌아왔다. 특히나 광고회사라는, 신입이라면 으레 '똘끼' 충만해야 하는 곳에서 늘 입만 열면 고민 타령인 참 재미도 없는 신입사원은 때때로 쉽게 '진지충'이 되었다.


모두의 부러움과 우려를 등에 지고 온 당시의 나는 꽃길은커녕 사방이 장애물인 진흙길을 유격 자세로 기고 있었다. 그 길이 더 빨라서도, 스릴 넘쳐서도 아닌 다만 내가 선택한 길이라는 이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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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일 하는데 뭐가 힘들어


'이직을 했으니 당연히 얼굴이 좋아지겠지.'라는 생각은 그것이 적어도 '본인의 선택'이라는 사실에 근거한다. 그래도 난/넌 하고 싶었던 일을 하게 됐잖아. 그러니까 죽지 못해 일하는 지금보단 낫겠지.

퇴사와 이직이 맞물리는 그 시점에서만 보자면 맞는 이야기일 수 있다. 밤새 고열과 오한에 시달리다 새벽같이 달려가서 해열제 한 방 딱 맞은 것처럼, 사표를 딱 던지는 순간엔 그간의 고생이 일시에 녹아내리며 앞으로는 뭐든 다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된다.


하지만 우리가 살면서 선택한 것들이 항상 그래 왔던 것처럼, 이직이라는 선택도 모든 고민을 해결해주는 마스터 키가 되지는 않는다. 뽀얀 새 연봉계약서에 사인을 하는 순간, 그것은 이야기의 끝이 아니라 지금부터 새롭게 써 나가야 할 또 다른 긴 긴 챕터의 시작이다. 오히려 누구를 탓할 수 없기 때문에, 아무도 등 떠밀지 않은 압박 열차에 올라 스스로를 채찍질한다. 쌓인 연차가 높을수록, 연봉이나 대우를 더 좋게 받고 간 사람일수록, 어느 정도 적응이 될 때까지는 주위와 본인 스스로의 기대치로 인한 부담감에 얼굴이 패인다.


무조건 이 회사를 그만두기만 하면 얼굴이 꽃같이 필 거라는 생각은 위험하다. 이직의 진짜 의미는 어떤 한 순간이 아니라, 앞으로도 내가 하루하루 쌓아가야 할 착실한 시간에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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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자는 다 능력자인가


'오늘 또 퇴사자 송별회. 그래, 나만 빼고 다 나가라!'

언니의 카톡은 단단히 뿔이 나 있었다. 직장인 11년 차 원 과장의 라이언은 노을 지는 바닷가에 쪼그리고 앉아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직장인으로서 이 회사 말고도 '갈 데'가 있다는 사실은 일단 부럽다. 남겨진 나의 책상이 한없이 초라해 보이기도 한다. 그렇기에 누군가의 이직 소식이 들릴 때면, '잘난 사람들은 다 나가고 나만 남는다'는 자조 섞인 농담도 따라 들린다. 괜찮아, 언니는 임원 될 거야. 나는 그녀에게 그렇게 버티는 당신이 더 대단하다며 씨알도 안 먹힐 소리를 했다. 헌데 그건 위로가 아니라 진심이었다. 두 회사를 모두 합해 이제 만 7년을 조금 넘긴 내게, 처음 신입으로 입사한 곳에서 단 한 번도 멈추지 않고 하루, 또 하루 일해 온 원 과장님의 11년은 너무나 엄청난 나머지 초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새 둥지를 찾아 떠나는 것만큼이나, 온갖 풍파를 이겨 내며 하나의 둥지를 지키는 것에도 사실 어마 무시한 능력이 필요하다. 그것은 단순히 '자리'를 지키는 것을 넘어 끝없는 자기계발과 꾸준한 동기 부여를 통해 직장에서의 '자존감'을 지켜 내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우리 주변에 '저 사람이 대체 어떻게 경력으로 왔을까'싶은 생각이 드는 '월급 루팡'들이 꽤 많은 걸 보면 [이직 성공 = 대박 능력자]라는 공식은 검산이 좀 필요하다.


오늘 송별회의 주인공도 곧 새로운 곳에서의 자신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할 것이다. 결국 능력자의 기준이란 어디서 일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일하느냐의 문제다. 10년 동안 성실히 다진 '내진 설계'로, 작은 흔들림은 있으되 한 번도 크게 꺾인 적 없는 '능력자' 원 과장님은 위로받을 이유가 없었다.



이직은 jump up이 아니라 change다

이직에 대해서 일반적으로 가장 쉽게 품는 오해는 그것이 반드시 'jump up'이라야 한다는 것이다. 더 많은 돈, 더 높은 직위, 더 큰 영향력 등 '회사원으로서의 성공'을 직장생활의 목표로 삼았다면 더욱이. 하지만 이직이란 'jump up'이라기보다는 'change'다. 더 높은 점수를 따기 위한 모두의 필수 과목이 아니라, 더 맞는 삶으로 변화하려는 개인의 선택인 거다. 설사 성공한 직장인이 최종 목표라 해도, 그에 도달하기 위한 과정은 선형적이지 않다. 어떤 산업 분야를 두루 거쳐 갈 것인가, 어떤 직무들을 경험해 볼 것인가, 어떤 환경(해외 취업이라든지)에서 일하고자 하는가 등에 따라 각자의 커리어는 모두 다른 변곡점을 그린다.


누군가 '회사 옮겨 보니 어떻더냐' 물으면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회사가 아니라, 삶의 색깔을 바꾼 거라고.

에세이를 쓰고, 강연을 하고, 칼럼을 기고하고, 책을 쓰고... 언젠간 꼭 해보고 싶었지만 너무나 막막하고 멀게만 느껴졌던 모든 일들이, '비즈니스맨'에서 '크리에이터'로 방향 전환을 한 이후 어느샌가 내가 걷고 있는 궤도 위에 자연스레 들어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제는 일이 힘들 때라도 더 이상 '한번 때려치고 왔는데 또 때려치고 싶으면 어떡하지!' 하며 전전긍긍하지 않는다. 여전히 얼굴이 좋아졌다가 푹푹 썩어 들어갔다가 하는 사이, 내 안에는 '직장인 몇 년차'가 아닌 '생각하고 표현하는 사람'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이 자리 잡았다.


요즘 거울을 보면 내 얼굴, 약간 좋아졌나 싶기도 하다. 다만 그건 이직 적응기가 끝나서가 아니라, 아직은 뚜렷하진 않아도 내 색깔을 찾아가고 있다는 확신이 있어서다. 앞으로 뭐가 될려고 그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러한 삶의 색깔 안에서 또 다른 일들을 해낼 수 있겠다는 믿음이 있다. 열심히 무거운 하루하루를 들어 올리고 있는 스스로의 근육이 뿌듯하다. 이직은 과정이다.





| 신입 영업사원, 신입 카피라이터로 두 번 입사한 8년 차 직장인. 여전히 변비 같은 진로 고민 진행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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