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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마마녀 Sep 07. 2020

1/48627125의 인연

200점짜리 신랑

 

 1/48627125는 1/365를 3승 한 값이다. 200점짜리 신랑은 어떤 신랑일까? 첫 딸을 낳고, 아들을 낳으면 흔히 200점짜리 부른다. 여기에 우리 집은 결혼기념일, 애들 둘의 생일도 한 날이다. 그 외에도 몇 가지 연이 더 있다.


   

  얼마 전 신랑이 병원 신세를 지면서, 이제는 병원에 들락거려야 하는 나이 때가 된 것을 느끼면서 상실감도 크게 와 닿았다. 그러면서 우리의 지난 20년을 되돌아보았다. 두 번의 강산이 바뀌면서 굽이굽이 삶의 굴곡이 그려졌었다.     



  “OO 아, 이리 와서 골라봐”라며 엄마는 나에게 2개의 날짜를 내밀었다. 24일과 30일 중에서 나는 30일을 골랐다. 나의 몸 상태와 여러 가지를 고려한 결정이었다. 그렇게 나는 4월 30일에 봄 신부가 되었다. 결혼 날짜를 고를 때만 해도 결혼기념일에 아이들 생일 초까지 불 줄은 몰랐다.     



  2년 연애 끝에 결혼했지만, 그 당시로써는 늦은 나이에 한 결혼이었다. 신랑도 나도 또래 친구들 사이에서는 늦은 결혼이었고, 30살 이전에 아이를 출산하고 싶었던 나는 4달의 짧은 신혼 기간을 가졌다. 결혼과 동시에 육아 책을 보고 있어서 봄에 아이를 출산하는 것이 좋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 계획 임신을 하였다. 건강한 정자를 위하여 신랑에게 한 달 동안 술, 담배도 줄여 달라고 했고, 내 생각대로 딸은 그렇게 찾아왔다. 육아서적 덕에 개월 수에 따른 태교도 잘하였고, 뱃속 태아에게 책 읽어주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신랑을 설득해서 동화책도 읽어주곤 하였다. 그렇게 10달을 채웠고, 딸의 예정일은 4월 24일이었다. 예정일을 넘어도 소식이 없어, 결국 유도분만을 시도했다. 유도분만으로 자궁은 열렸지만, 아이는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반나절 이상을 진통에 시달렸지만, 자연분만으로 태어난 애가 면역력이 조금 더 낫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의사에게 시간을 더 달라고 했다. 또다시 반나절이 흐르고, 의사는 이제 나와 아이 모두 위험하기에 결정을 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수술실로 들어가면서 나름의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면서 울었다. 딸은 그렇게 나의 첫 결혼기념일에 나에게 찾아왔다.



<오붓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산비둘기>



  자신의 뼈대를 많이 닮은 딸에 신랑은 무척이나 좋아했다. 그리고는 슬며시 빠져나가 우리의 첫 결혼기념일 꽃다발을 사 와서 나에게 내밀었다. 자연분만을 시도하다 수술까지 한 터라 나의 몸은 더디게 회복되었고, 딸에게 젖을 제때 물려주지 못해서 심한 젖몸살을 앓기도 했다. 병원에 있는 내내 비가 와서 아이를 출산하면서 겪은 안타까운 순간이 계속 떠올라서 슬펐는데, 신랑이 건네준 빨간 장미가 나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주는 듯했다.  


    

  큰 애를 그리 낳아서인지 모르지만, 그 후 나는 자궁에 문제가 생겨 치료를 받았다. 작은 아이도 비슷한 시기에 낳고 싶어서 큰애 때처럼 시도했지만, 쉽지 않았다. 이때 나는 여러 가지로 심리적인 압박을 많이 받았다. 신랑은 딸 하나로 만족하자고 했지만, 나는 혼자는 외롭다고 둘을 고집했고, 시어머니가 남자애를 원하는 것, 경제 문제, 거의 독박 육아 등 여러 문제가 있었다. 그렇게 몇 달을 노력해도 안 되어서 포기하려던 찰나 아이가 찾아왔다. 기쁨도 잠시 임신 4개월에 문제가 생겨 딸은 친정엄마가 봐주게 되었고, 그렇게 몇 개월을 조심했지만, 임신 7개월에 조산기가 찾아왔다. 그 후 병원에서 한 달, 집에서 한 달 그렇게 두 달을 누워 있다가 만 9개월에 아이는 태어났다. 나는 아이가 인큐베이터에 들어가지 않아서 안도의 숨을 내쉬었지만, 큰애만큼 태교를 못 해서 너무 미안했다. 태교를 할 수 없는 몸 상태여서, 임신 기간 내내 아무 탈 없이 건강하게만 태어나게 해달라고 빌었다. 그렇게 둘째 아이도 4월 30일의 생일을 갖게 되었다. 세 번째 결혼기념일에는 대형 병원에서의 출산이라 결혼기념일 꽃다발은 받지 못했고, 처음 둘째를 보러 갔을 때는 체격도, 몸무게도 너무 적게 나가 나는 오열했다. 두 아이의 엄마라는 사실이 나를 일으켜 세웠다.     



  몇 년 전 나는 가족관계 증명서를 보다가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결혼기념일과 아이들의 생일이 4월 30일인 것은 당연했지만, 이 세 건의 신고 날짜가 다 5월 10일 한 날짜로 되어있는 것을 알았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지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방송에도 나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365일의 3승분의 1의 확률로 3개의 날짜가 같다는 것은 하늘의 뜻일까 하는 생각도 든다. 두 건의 계획된 임신이긴 하지만, 날짜까지 그날로 되기는 힘들다. 신고 날짜에 대해 신랑 보고 물으니 본인도 모른다고 한다. 우린 그렇게 기적에 기적을 쌓았다.     



  이제부터 얘기하는 것은 더 기가 막힌다. 신랑과 친정아버지의 생일은 음력으로 8월 12일이고, 둘 다 음력 생일을 지낸다. 신혼 초 몇 년간은 친정아버지 생일상에 사위도 같이 축하를 받았으나, 지금은 본인의 생일상을 제대로 받고 있다. 신랑 말처럼 200점짜리여서 이런 것이 가능했을까? 그런 것은 아닌 것 같은데, 신랑이 우기니 200점에 200점을 더해 400점짜리 신랑이라고 해주어야 할 거 같다.     



 기막힌 인연의 끝은 양가 어머니 성이 ‘진주 강 씨’라는 것이다. 성이 같다는 것도 신기한데, 본관까지 같아서 더 놀랍다. 진짜 신랑과 나는 하늘이 맺어준 연일까? 어찌 이럴 수가 있을까? 재미 삼아 TV에 한 번 나가야 하는 생각도 가끔 들곤 한다.      



  신랑과 나는 이렇게 6개의 교집합을 가지고 있다. 흔히 하는 이야기로 부부의 연은 전생에 원수 아니면 은인의 관계였을 것이라고 한다. 이 말은 전생에 좋은 영향을 주었던 나쁜 영향을 주었던 서로에게 영향을 주었기에 이생에서 잘 풀어보라고 연을 맺어준다는 의미도 있다는 것이다. 이 말에 월하노인의 붉은 실도 생각난다. 신랑과 나는 어떤 붉은 실로 맺어졌을까?     



 “중국 당나라 시대의 이복언이 지은 '속현괴록(續玄怪錄)'에 등장하는 '월하노인(月下老人, 또는 월하빙인月下氷人)' 이야기가 가장 오래된 기록. 언젠가 맺어질 남녀는 보이지 않는 운명의 붉은 실로 서로 이어져 있다는 믿음으로, 월하노인이라 불리는 노인이 있어 그가 붉은 끈으로 발목을 묶은 남녀는 아무리 원수지간이라 하여도 반드시 맺어진다는 이야기에서 비롯되었다.”(출처 : https://namu.wiki/w/운명의 붉은 실)



 신랑과 나는 취미도, 좋아하는 맛, 사고방식 등 여러 가지가 다르다. 삶의 굽이마다 교집합은 머릿속에서 금방 지워졌으며, 어깨동무보다는 붉은 실을 원망하며 교집합이 없는 벤다이어그램을 그리기도 했었다. 아이들의 빠른 독립으로 다른 집보다는 자식을 일찍 출가시키는 부모의 마음을 느끼면서 처음 붉은 실에 혹했을 때처럼 또다시 붉은 실에 기웃거리고 있다. 예전에는 강렬하고 튼튼한 붉은 실이었지만, 지금은 가늘고 옅은 색의 붉은 실인 듯하다. 잘 끊어지는 않는 실이면 가늘어도, 빛이 바래도 이어져 있으니 실로써 그 역할을 다 할 수 있다.     


<신랑이 가끔 갖다 주는 네 잎 클로버>



  신랑과 나의 관계는 처음 설레고, 들뜬 감정이 아닌 오늘 삶을 같이 살아나가는 전우, 동지 같으며, 이제는 눈빛이나 손짓만 보아도 알 거 같은 느낌이다. 군대에서 느끼는 전우애를 느끼며 지금까지 치러왔던 전투처럼 앞으로의 전투도 잘 치러 나가기를 바라본다. 각각 쭈글쭈글해져 가던 벤다이어그램은 신랑의 병원 신세로 인하여 또다시 교집합을 상기하며, 서로에게 기대며 탱글탱글한 벤다이어그램이 되어가려 한다. 예전에는 서로 자기 뜻대로 하려고 영역을 넓히려고 했지만, 지금은 내 뜻대로 아닌 서로의 뜻을 모아 조율하며 예쁜 그림을 그려볼까 한다. 진흙 속에서 예쁜 연꽃이 피어나지만, 결코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 혼자 외로이 피워있는 것보다는 같이 피어 있어서 더 아름답고, 더 고귀하지 않을까 생각하며 나와 신랑도 같이 예쁜 연꽃을 피웠으면 하는 바람이다. 월하노인이 맺어준 연(緣)이 연꽃(蓮꽃)으로 핀다면 이생에서의 연에 충실했으니 그것으로 족하며, 때가 되면 연(鳶)이 되어 하늘로 날아가는 것도 좋을 듯하다. 또다시 강산이 바뀌는 세월이 지나면 지금 이 순간이 떠오를거 같고, 붉은 실이 어찌 변할지도 궁금하다.      



자기야, 커피 한잔 할까? 가끔은 한 잔도 좋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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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사진 출처 : pixabay



같이 읽으면 좋은 시 : 중년의 사랑


 https://brunch.co.kr/@littlewt8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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