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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맅업 Litup May 13. 2021

단 한 사람을 위한 양복의 가치

(2)정통 영국 양복을 만드는 테일러 김동현 님

지난 1편에 이어 2편으로 인터뷰가 연재됩니다.

(1)배트맨 슈트를 만든 자, 한국에 오다



인홍: 영국은 양복 문화의 시작이기도 하지만 맞춤 양복을 만드는 시간이 오래 걸리고 값이 비싸도 맞춤 양복만의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많은데요. 이와 비교해서 한국에서는 아직 맞춤 양복 하면 그냥 몸에 맞는 양복 정도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동현: 일단 시간적으로 보았을 때, 영국 런던 세빌로에서 맞춤 양복을 만드는 시간은 3개월 정도 걸리고 한국 같은 경우는 보통 한 달에서 한 달 반 정도 소요되는데요. 이건 고객과 가게 주인 간의 사회적 합의인 것 같아요. 영국 사람들은 맞춤 양복을 자신만 입는 옷이 아닌 자식들에게 물려주는 옷으로 인식하고, 3개월이란 시간을 길지 않은 시간이라고 생각하는데요. 한국은 옷이 빨리빨리 나와야 한다는 인식이 더 강한 것 같아요. 


물론, 시간적으로 빠르게 옷이 나와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옷을 만드는 사람들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지 않고 재촉한다면 보이지 않는 맞춤 양복의 디테일들이 떨어지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제 생각엔 정말 좋은 옷을 사고 싶다면 충분한 시간과 그에 맞는 합당한 금액을 지불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또 주인은 고객이 지불한 금액과 시간에 맞는 정말 고품질의 상품을 제공을 해줘야 하고요. 서로 진실한 사회적 합의가 있어야 맞춤 양복과 같은 수공예 시장이 잘 돌아갈 수 있는 것 같아요. 영국을 비롯한 유럽에서는 이와 같은 사회적 합의가 자리 잡았는데 우리나라는 이러한 사회적 합의가 자리 잡는 시간이 아직은 필요한 것 같아요.



*한 땀 한 땀 공을 들여 양복을 만드는 테일러 김동현 님(사진제공: 김동현)



인홍: 하나의 마스터피스를 만들기 위해선 투자하는 시간과 노력이 사회적으로 합의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드네요. 동현 님께서는 과거부터 계승된 전통적인 방법으로 옷을 만드는 일을 하시는 거잖아요. 개인적으로, 손수 양복을 바느질해서 만드는 과정 또한 공예, 도자기를 만드는 장인과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영국에선 테일러라는 직업의 위상이 높다고 들었는데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어떻나요? 


동현: 네, 영국에서는 테일러라는 직업 자체가 굉장히 멋진 직업이거든요. 영국은 장인을 높이 대우해주고 어느 정도 기술과 경험이 있는 테일러 분들에 대해서는 우리나라에서 선망의 직업으로 꼽히는 의사와 동등하게 생각하거나 더 높게 생각해주시는 분들도 많이 있죠.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테일러를 단순 기술직, 봉제공으로 치우쳐서 보는 인식이 있는 것 같아요.  


인홍: 그렇군요. 그렇다면 테일러라는 직업은 양복을 만드는 기술자를 넘어 예술가일까요? 


동현: 음, 전 사회적으로 테일러라는 직업 자체에 대해서는 예술가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양복은 무조건 기능성과 실용성을 바탕으로 한 옷이기 때문에 새로운 창작에 중점을 둔 예술작품과는 거리가 있는 것 같아요. 제 생각엔, 양복은 공예품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또 양복은 사회적 보편성과 지역성이 담긴 유니폼이기 때문에 양복 자체에 규격이 정해져 있기도 하고요.


하지만 저는 사회적인 관점에서 양복을 만드는 사람이고 테크니션, 기술공예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개인적으론 개인적인 예술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단순 기술적으로 양복을 만드는 게 아니라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하는 거죠. 그렇지만 제가 새로운 시도를 한 것을 사회적으로 사람들이 입는 옷에 바로 대입하긴 어렵기 때문에 혼자 개인 프로젝트를 하면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어요.





인홍: 그럼 양복을 매개로 한 예술가로서 살아가기 위해 개인적으로 어떤 노력을 하고 계신가요? 


동현: 사실 양복이 제 삶의 전부인데요. 그동안 우리나라 양복이 왜 발전하지 못했고 오래 양복을 만드신 분이 작업실 뒤쪽으로 물러나면서 촌스러운 양복이 되었을까라는 생각을 계속해왔어요. 영국에서 말하는 맞춤 양복을 클래식하다고 부르는데, 클래식하다는 것은 시대와 무관하게 이어오는 우아함과 아름다움이거든요.


그런데 클래식을 지키려면 시대 흐름에 가만히 안주하는 게 아니라 계속 움직여야 해요. 전 이런 시대 흐름이 문화적인 것으로 생각해서 양복에 관한 글을 실생활과 연결해 많이 적고 과거 역사에 담긴 인문학과 현재의 문화에 대해 공부를 하고 있어요.  


테일러 김동현 님의 개인 블로그 글: 양복은 예술인가, 아닌가


인홍: 클래식하다는 말이 참 좋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이 가치를 함께 잃지 않는다는 게 어려운 것 같아요. 그렇다면 동현 님께서는 정통 영국 양복을 만드시면서 전통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신가요? 


동현: 전통이라는 게 바뀌지 않아야 하는 가치들이 있는데 전통에만 목메다 보면 전통에 갇히게 되는 것 같아요. 이건 전통을 계승한다는 의미와는 동떨어진 것이죠. 


예를 들어, 과거에 전통적인 옷을 만들 때, 똑같은 바느질을 했다면 이젠 컴퓨터 미싱으로 그 옷을 만들지만 현재의 방식으로 전통을 계승해가는 거죠. 그래서 기술의 선진화가 있으면 빨리 받아들이고 전통이 가진 가치를 어떻게 이어나갈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하는 것 같아요. 




인터뷰어 소개
인홍 | INHONG
영국 런던에서 문화예술을 공부하고 있어요.
조금 더 좋은 세상에서 살기 위해 오늘도 귀찮은 일을 즐겁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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