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맅업 Litup May 17. 2021

우리나라 서울의 멋을 양복에 담다

(3)정통 영국양복을 만드는 테일러 김동현 님

지난 1편과 2편에 이어 3편으로 이어집니다. 


(1)배트맨 슈트를 만든 자, 한국에 오다 

(2)단 한 사람을 위한 양복의 가치



인홍: 동현 님께서 테일러로서 양복을 계속 만들고 계시는데 개인적으로 작업해보고 싶다고 생각한 일이 있을까요? 


동현: 음, 이건 좀 웃긴 발상인데요. 저 스스로 '왜 한국이나 아시아에서는 양복을 못 만들었을까. 왜 제복이 안 나왔을까?' 그런 질문을 해봤어요. 한국, 중국, 일본을 포함해 아시아의 옷들은 조형이 없어요. 한국적인 옷인 한복, 장삼, 혹은 일본의 기모노는 긴 나무 막대기에 다 걸리죠. 박물관에 가서 이러한 옷들이 전시된 것을 보면 전시효과가 굉장히 좋고, 옷들이 바람에 확 불면 미학적으로 운치가 있죠. 하지만 영국과 같은 유럽, 즉 서양의 옷들은 소매가 있고 어깨 패드와 가슴이 들어가 있기 때문에 긴 나무 막대기에 안 걸려요. 이런 옷들은 마네킹에 입혀야 해요. 



*우리나라 전통 한복이 긴 막대기에 결려있는 모습


 

 동양은 옷을 사람 몸에 입히든, 나뭇가지에 걸어놓든 항상 바뀔 수 있는 선적인 이미지로, 자연스럽게 바람이 불면 그냥 흩어져버릴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반면, 양복이나 제복 같은 경우는 인체가 자연이기 때문에 인간이 만들어낼 수 있는 조형을 생산해낸 것이라고 느껴졌어요. 


이런 생각이 꼬리를 물어 서양에서 양복을 만드는 것은 자연에 대한 도전, 인체에 대한 도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저 스스로 동양인으로서 동양적인 옷이 아닌 서양의 옷을 왜 만들고 있지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그래서 개인 프로젝트로 영국식으로 양복을 만들면서 배웠던 재봉 방식에 한국에서 전통 옷을 만들 때, 사용하는 면이랑 비단이 섞인 춘포라는 소재를 사용해 하이브리드적인 옷을 만들고 있어요. 



인홍: 서양적인 양복을 만드는 방식과 한국적인 옷감의 조화. 개인 프로젝트가 흥미로운데 옷감 말고도 다른 부분에서 동양적인 요소를 가져오신 게 있을까요? 


*테일러 김동현 님 개인 프로젝트에 사용될 단추                   (사진제공: 김동현 님)

동현: 제가 영국 런던 세빌로에서 정통 영국 맞춤 양복을 만들다 보니, 보통 단추가 양복에서 화룡점정이거든요. 그래서 개인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옷에 포인트로 단추를 어떻게 만들까 고민을 했어요. 저는 이 옷에 도자기를 만드는 방식으로 제작된 단추를 달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단추를 영국 웨일스에서 백자를 만들고 계신 이재준 작가님께 도자기 단추를 만들어달라고 부탁드렸어요. 그런데 제가 단추의 사이즈나 규격을 정해드린 것이 아니라 작가님의 느낌대로 만들어달라고 말했는데요. 단추를 보시면 사이즈가 같아도 모양이 미세하게 다 달라요. 도자기 단추에 작가님만의 생각이 담겨있는 거죠. 테두리가 들어간 것도 있고, 굽이 있는 것도 있고, 모서리가 깎인 것도 있고, 거친 것도 있고. 




테일러 김동현 님의 기고글: 월간 도예 10월호 <동양의 옷, 서양의 옷>



인홍: 나중에 동현 님께서 작업하신 개인 프로젝트가 완성되면 정말 보고 싶네요. 그러면 이제 다시 양복으로 돌아와 보통 양복 하면 영국, 이태리, 미국 이런 식으로 특징적인 점을 잡아 구분하는데 한국만의 양복은 어떤 특징이 있을까요?  


동현: 일단 영국에서 양복 문화가 시작돼서 미국, 이태리, 독일, 프랑스, 그리고 아시아권에서 중국, 일본까지도 영향을 미쳐 양복이 지역화가 되었죠. 우리나라 양복은 보통 일본을 통해서 양복이 들어왔는데요. 과거 식민지 시대 당시, 우리나라에 양복이 들어와 일본 사람의 시각을 거친 패턴, 도면을 사용해왔어요. 6.25 전쟁 후엔 미군의 영향으로 우리나라 양복에 미국 스타일이 조금 더 혼합되었죠. 또 요즘은 이태리 양복이 대세이기 때문에 맞춤 양복들이 이태리 옷을 많이 따라가는 추세이고, 지금 우리가 트렌디하다고 말하는 양복은 이태리 양복을 많이 카피하는 경우도 있는데요.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어떤 양복이 한국만의 스타일이라고 정의 내리기는 힘든 부분이 있어요. 



*테일러 김동현 님이 직접 제작해서 입고 촬영한 정통 영국  양복(사진제공: 김동현 님)



인홍: 그렇군요. 보통 우리가 외국에 여행을 가면 그 나라 도시에서만 입는, 볼 수 있는 패션들이 있는데요. 동현 님이 생각하는 우리나라 서울의 옷은 어떤 느낌인가요?


동현: 음, 서울 하면 등산복과 기능성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실제 제가 느낀 그대로예요.


인홍: 요즘 기능성 의류가 한국에서 많이 인기가 있죠. 


동현: 과거엔 옷감에 폴리에스테르나 나일론이 들어가면 값싼 옷으로 봤거든요. 현재, 제가 런던에서 서울로 돌아와 양복을 만드는 곳에서 하는 작업이 굉장히 좋은 기능성 원단으로 양복을 만드는 거예요. 영국 런던에서는 천연소재인 옷감으로 양복을 만들었다면 우리나라 서울에선 입고 벗기 쉬운 양복을 만드는 거죠. 또 이탈리아와 달리, 우리나라 서울에선 옷에 색을 많이 안 쓰기에 무채색 계통의 양복 스타일을 고민하고 있어요. 


 예전에 제가 이탈리아에 놀러 갔던 적이 있었는데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영국 런던 스타일의 양복 재킷을 입고 있으니까 참 이것만큼 우스운 게 없더라고요. 그곳에서는 나폴리식의 재킷이 정말 어울려요. 반면, 영국 런던에서 나폴리식의 재킷을 입고 있는 사람을 보면 또 멋이 없어요. 그냥 시골뜨기 같아요. 



인홍: 양복 한 벌을 만드시는데 정말 많은 생각과 고민, 그리고 노력이 들어가는 것 같아요. 그런데 한국만의 양복은 아직 없는 거네요? 


동현: 사실 우리나라에 양복이 들어온 지 100년이 넘었거든요. 그런데 아직도 우리나라에선 우리나라만의 양복을 꾸준히 만들 생각보단 수입품 카피를 많이 하고 있어요. 그래서 저는 양복을 만드는 근무시간 이외에 오후 6시부터 개인적인 예술성을 쌓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무엇이 한국만의 양복인 건지, 어떻게 서울에 맞는 옷을 만들 수 있을지 이런 생각들을 하고 영국에서 배우고 경험한 것들을 바탕으로 시도해보려고 하고 있죠. 이제는 우리나라 양복도 이탈리아 스타일, 영국 스타일을 따라가는 게 아닌 서울 스타일이 필요한 거죠. 



*서울 말리본 가게 내 테일러 김동현 님 작업대   

인홍: 맞아요. 우리나라만이 가진 고유의 특징을 살린 양복이 있으면 참 좋겠네요. 이제 마지막으로 동현 님께서 만드신 양복만의 특징은 무엇이 있을까요?  


동현: 저는 검이불루(儉而不陋) 화이불치(華而不侈), '검소하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나 사치스럽지 않다.'라는 말을 제 양복에 담고자 노력해요. 또 저 스스로 새로운 것을 창조해낸다고 생각하지만, 기본 없이 절대로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렇다고 모방에 머물면 힘들겠지만, 모방이라는 건 철저한 기본에 대한 이해와 답습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만의 양복은 원형과 오리지널리티에 대한 이해와 서울, 그리고 현재가 될 것 같아요. 





인홍: 동현 님께서 영국 런던에서 한국인 최초로 정통 영국 양복을 만드는 테일러라고 많이 알려졌는데요. 앞으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테일러가 됐으면 좋겠어요. 언젠가 동현 님께서 만든 한국만의 양복, 서울 하면 떠오르는 양복을 많은 사람이 보고 입어서 한국인 최초의 영국 런던 세빌로 테일러가 아닌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테일러가 됐으면 하는 게 저의 소망입니다. 


동현: 감사합니다.



인터뷰어 소개

인홍 | INHONG
영국 런던에서 문화예술을 공부하고 있어요.
조금 더 좋은 세상에서 살기 위해 오늘도 귀찮은 일을 즐겁게 합니다.

맅업은 호기심 많은 어른이를 위한 세상을 읽는 문화예술 뉴스레터입니다. 
맅업을 통해 누구나 다양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길 바랍니다. 
매주 월요일 오전 8시 20분마다 메일함에서 '맅업' 을 만나보세요! 


이전 05화 단 한 사람을 위한 양복의 가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