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겐 특별한 박 대리

네가 나 때문에 우는 게 좋아 - 4

by 립나




어제는 성준의 입사 동기들과 식사를 하기로 한 날이었다. 사내 연애에 특별한 제재나 권고가 없는 분위기지만, 직장에서 연애 문제로 주목받는 게 싫어 서로의 관계를 비밀에 부쳤던 둘은 만남이 반년을 넘어가자 결국 가까운 주변 동료에게는 연애 사실을 밝히기로 했다. 평소 만나는 사람이 있다는 정도만 얘기하고 상대에 대한 말은 아끼는 모습을 보며 주변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건 당연했지만, 특히나 성준의 입사동기들은 거의 집착에 가까운 궁금증을 보였다. 이 딱딱하고 재미없고 맨날 집에만 있고 멀쩡한 허우대를 전혀 활용하지 못하는 목석을 연애하게 만든 장본인이 누군지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다.


결국 성준은 본인을 포함해서 5명이 속해있는 절친한 동기 채팅방에 시간과 장소를 올리게 된 것이다. 이번 주 금요일 6시 30분. 회사 뒤편 한정식 집에서 보자. 퇴근 시간과 30분밖에 차이 나지 않는 약속 시각을 보고 동기들은 ‘여자 친구분이 우리 회사 쪽으로 와주시려면 너무 촉박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비쳤지만 성준은 그저 그때 보자고만 할 뿐이었다.








약속한 시각이 되어 성준의 이름으로 예약된 한정식 모란실에 들어선 동기들은 성준의 뒤에서 긴장한 채 빼꼼히 고개를 내민 낯익은 얼굴을 마주할 수 있었다. 어 저분은... 정 주임님?



“안녕하세요.”



소윤이 멋쩍게 웃으며 인사하자 다들 얼떨떨해하면서도 반갑게 마주 인사했다. 와 박 대리. 사내 연애 중이었어? 그렇게 맨날 야근한다더니 딴맘이 있었구만. 묘하게 배신감 어린 목소리로 성토하는 동기들의 말을 들으며 성준은 그저 소윤의 얼굴을 살피고 손등을 잔잔히 두드려 줄 뿐이었다.



“이제 누군지 봤으니까 됐지. 소문내지 말고 더 물어보지도 말고.”



식사를 시작하고 가볍게 질문들에 대답한 성준은 조금은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평소 본인 얘기를 잘하지 않는 성준이 이렇게 따로 자리까지 마련해서 소개를 했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잘 아는 동기들은 군말 없이 수긍하고 식사를 이어나갔다. 식사 도중엔 성준과 소윤에 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회사나 각자의 일상에 대해서도 말을 꺼냈는데 평소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소윤은 금세 적응해서 함께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눴다. 회사에서 안면만 있던 소윤의 생기 있는 모습을 보며 편해진 성준의 동기들은 소윤에게 짓궂은 질문을 하면서 장난을 치기도 했다.



“아 근데 진짜 저는 성준이가 사내 연애할지는 상상도 못 했어요.”


“맞아. 그동안 사내 연애는 절대 안 한다고 거의 학을 뗐잖아.”


“그니까. 막 누가 좀만 관심 보여도 다 철벽 치고 그런 얘기 좀만 나오면 자기는 사내 연애는 정~말 위험하다고 생각한다고. 일로 만난 사람한테는 그런 마음 안 든다면서.”



성준이 연애를, 그것도 사내 연애를 한다는 게 놀라운지 여전히 믿기지 않는 듯한 동기들은 그렇게 느낄 수밖에 없는 이유를 줄줄이 댔다.



“전에 누구 아예 고백한 직원도 있지 않았나?”



그러다 선을 지키지 못한 동기 1의 발언으로 방안이 잠시 멎었다. 동기 1은 말이 뱉어지는 동시에 본인이 실수했다는 걸 깨닫고 허둥지둥 수습하려 애썼다. 아, 퇴사, 퇴사한 걸로 알고 있는데 암튼, 근데 그때도 거절했어요 성준이가! 연신 손을 퍼덕퍼덕 흔들며 변명 아닌 변명을 하는 동기 1은 적잖게 당황했는지 거의 식은땀이 흐르는 게 보일 것만 같았다.



“아이, 박 대리님 인기 많은 거 알죠~ 그랬는데도 저랑 만난다니까 좋은데요?”



소윤이 넉살 좋게 말했다. 다들 안도가 섞인 숨을 뱉으며 와하하 웃었다. 소윤은 정말로 괜찮았다. 자신이 정신없는 인턴생활 중에도 짝사랑을 시작할 정도로 성준은 멋진 사람이었고 그걸 본인만 알 거라는 생각은 한 적 없었다. 그렇게 고백했다는 직원이 아직 함께 일한다면 신경 쓰였겠지만 퇴사까지 했다는데 뭐… 오히려 성준이 연애 경험이 너무 많지는 않을까 가끔 궁금하기도 했었는데 그게 아니라는 걸 알았으니 기분이 더 나아질 정도였다. 풀어진 분위기에 모두가 다시 편하게 식사를 마무리하는 와중에 성준만 조금 빤히 소윤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소윤은 성준의 그런 시선이 자신의 기분을 살피기 위해서라고 생각했다.








본식사를 마치고 마무리 식사와 후식이 나올 즈음 동기 3이 소윤에게 물었다.



“근데 성준이를 ‘박 대리님’이라고 부르세요? 저희랑 같이 있어서 그러신 건가?”



동기 3은 성준의 부서와 업무적으로 얽혀있고 교류가 잦은 팀에 속해있어서 동기 중에도 특히 성준과 친하게 지내는 편이었는데, 그래서 소윤이 내심 신경을 쓰고 있는 사람이었다. 두 사람 사이의 기류나 태도가 아주 담백하기 그지없어서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건 잘 알고 있었지만 그냥 괜히 혼자서 의식이 되는 사람이라고 할까.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소윤에게는 약간 동경의 대상인 사람이었는데 그런 사람이 자신의 연인과 가까운 사이라는 게 자꾸만 마음이 쓰였다.


동기 3은 성준보다 나이도 많고, 어른스럽고 업무적으로도 능력이 있어서 이미 회사에서 인정받는 인재였다. 게다가 성숙하고 여유로운 분위기가 있어서 인턴 시절에 회사에서 마주칠 때면 마음속으로 ‘와 김 대리님 진짜 멋있으시다. 나도 몇 년 뒤엔 저랬으면 좋겠다’ 생각했었는데 그가 늘 팀에 방문하는 목적이 박 대리라서 마음이 싱숭생숭해지곤 했었다.


게다가 호칭에 대한 질문이라니. 동기들 모두 회사에서는 칼같이 직급으로 서로를 불렀지만 사석에서는 편하게 이름을 불렀는데 그렇다 보니 성준은 자연스레 연상인 김 대리에게 누나라고 부르게 되었고, 오늘 식사자리에서 그 ‘누나’ 소리를 처음 들어본 소윤은 괜히 갈비찜을 더 꼭꼭 씹었다.



“아, 네. 둘이 있을 땐 가끔 ‘성준 씨’라고도 하는데 그래도 거의 대리님이라고 해요. 혹시 회사에서 실수로 잘못 부를까 봐요. 그동안 익숙해지기도 했고..”



소윤이 괜히 쑥스러워서 볼을 긁으며 대답했다. 성준은 그사이 곱게 발라진 보리굴비 살을 소윤의 접시 위에 올려주었다.



“그렇구나. 그래도 좀 아쉬우시겠어요. ‘박 대리’는 다들 부를 수 있는 거잖아요.”



옆에서 동기 1이 말을 보탰다. 다른 사람이랑은 다르지. 성준이 보리굴비의 가시를 들어내면서 무심히 말했다. 소윤도 정말 그렇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대리님’이라고 부를 때 ‘네에’하고 부드럽게 늘어지는 말끝으로 대답해주는 성준은 절대로 모두와 같지 않았기 때문에. 회사의 모든 사람들이 성준을 ‘박 대리님’이라고 부르지만 그런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건 소윤뿐이라는 걸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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