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나 때문에 우는 게 좋아

네가 나 때문에 우는 게 좋아 - 3

by 립나




소윤은 떡집 직원에게 떡을 건네받고 돌아서자마자 사람들이 적은 쪽으로 피해 나오며 떡포장을 뜯었다. 이런 건 나오자마자 따뜻할 때 먹어줘야지. 따끈하고 말랑한 떡이 입에 들어가자마자 흐뭇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새까만 찰떡 위로 덮인 까맣고 포슬포슬한 흑임자 고물이 고소하고 은은히 달큰했다. 지하철에 타기 전까지 연신 떡을 꺼내먹으며 냠냠거린 소윤은 1초라도 빨리 집에 도착해서 이 맛을 제대로 음미하고 싶었다. 사진도 찍고 가방에 있는 따뜻한 차도 다시 데워서 같이 먹어야지. 비 내리는 창밖을 보며 떡에 대한 결연한 의지만 다졌다.








집에 거의 도착해서도 우산을 접고 손이 자유로워지자마자 건물 현관에서 냉큼 흑임자 인절미 하나를 입에 쏙 집어넣은 소윤은 자신의 집 앞 복도에 서 있는 성준을 발견했다. 아씨 망했다. 대리님 오늘 3시쯤 끝난다고 하지 않았나. 왜 벌써 왔지.



“소윤 씨”


“...”



늘 담담했던 눈을 조금 애처롭게 늘어뜨린 성준이 소윤에게 성큼 다가왔다. 코트 차림의 손에 들려있는 어울리지 않는 흰 봉지에는 얼마 전 함께 다녀왔던 떡집의 상호가 새겨져 있었다. 저기 호박 인절미 맛있는데. 소윤의 화를 풀어주려 사 온 모양이었다.


성준과의 만남이 몇 시간 당겨진 것이 조금 당황스럽기는 했지만 그만큼 반갑기도 했기 때문에 사실 그건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지금 정말 당황스러운 문제는 바로 방금 전까지 아주 곱고 새카만 고물이 묻은 떡을 입에 넣은 참이라는 것이었다. 둘의 만남이 시작된 이후로 처음 있었던 다툼이었던 데다 소윤이 심각하게 분위기를 잡은 상황이었는데 갑자기 이렇게 얼룩덜룩 까맣게 물든 이로 우습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게다가 어제 그렇게 단호하게 혼자 정리 좀 하겠다고 차가운 척은 다 해놓고 일찍부터 따끈말랑한 떡을 사러 다녀온 것도 좀 모양 빠지는 것 같았다. 심지어 저 사람도 화 풀어주겠다고 떡을 사 왔는데, 나도 이 와중에 떡을 사 온 게 되면 너무 떡이면 다 되는 사람 같잖아! 물론 맞지만 아무튼!


결국 소윤은 잠시 성준을 바라본 후 말없이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을 택했다. 조심스러운 박 대리님이 혹시나 뜻을 오해할까 봐 따라 들어올 수 있도록 현관에 발을 디딜 때까지 문을 잡아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러는 와중에도 혹시 입가에 고물이 묻지는 않았을까, 무심결에 이를 보이지는 않을까 표정관리에 온 정신을 집중하며 발을 옮겼다.








현관문이 닫히고 소윤은 부랴부랴 방으로 들어갔다. 성준이 다급히 소윤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 잽싸게 문까지 닫았다.



“잠시만요. 지금 잠깐... 들어오지 말아 봐요. 금방 다시 나갈게요.”



소윤은 닫힌 문밖으로 인기척이 멈춘 것을 생각할 틈도 없이 가방에서 텀블러를 꺼내 급하게 국화차를 입에 부었다. 차를 입속에서 굴리며 화장대 거울로 고물이 묻은 곳은 없는지 꼼꼼히 확인했다. 몇 번 입을 헹구고 확인해봐도 기분 탓인지 괜히 치아나 입술이 조금 검게 물든 것 같은 느낌에 티슈를 뽑아 문질러보기도 했다. 그러던 중 문밖에서 성준의 목소리가 들렸다.



“소윤 씨. 나 좀 들어가도 돼요?”


“어... 네.. 네 들어오세요.”



성준의 말에 대답하며 고개를 돌리자 침대 위에 가방과 함께 던져놓은 떡 봉지가 보였다. 소윤은 급하게 이불 한쪽을 걷어 그 위로 덮으며 이불이 걷어진 자리에 풀썩 앉았다. 다시 일어날 틈도 없이 문이 열리며 성준이 천천히 들어왔다.



“소윤 씨.”


“아 대리님. 일이 생각보다 일찍 끝났나 보네요.”


“네. 어디 다녀온 거예요?”


“그냥... 밖에요.”



난감한 질문에 소윤이 시선을 피하며 대충 대답을 얼버무리자 성준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잠시 손끝을 내려다보던 소윤이 고개를 들어 성준을 바라보자 성준의 눈이 순식간에 울망해졌다.



“대리님?”



성준의 눈에 차오르는 눈물에 당황한 소윤이 몸을 일으키려고 했으나 그 앞에 주저앉는 성준이 좀 더 빨랐다. 성준은 침대에 걸터앉은 소윤 앞에 꿇어앉아 소윤의 두 손을 잡고 그 위에 얼굴을 묻었다.



“소윤 씨. 미안해요. 내가 잘못했어요.”


“대리님 울어요?”



소윤의 말에 고개를 든 성준은 붙잡고 있던 소윤의 한쪽 손을 펴서 본인의 얼굴에 가져다 대고 볼을 부볐다. 잠시 동안 말없이 소윤을 올려다보던 그의 눈에 가득 차 있던 눈물이 결국 방울져 뚝뚝 떨어졌다. 소리도 없이 눈물만 흘리던 성준은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내가 잘못했어요. 앞으로 그런 일 없을 거예요. 소윤 씨 서운할 일 절대 만들지 않을게요. 나 미워하지 말아요…”


“대리님 왜 울어요. 울지 마세요. 제가 대리님을 왜 미워해요.”



당황한 소윤이 다른 손을 들어 성준의 눈물을 닦아주려고 했다. 정말 그럴 생각이었다. 진짜로 그러려고 했다. 그런데 사랑하는 사람이 슬퍼하는 모습을 보면서 느끼는 측은한 마음보다 더 압도적이고 격렬한 감정이 소윤을 뒤덮으며 성준의 얼굴로 향하려는 손목을 끌어내렸다. 대리님이 우는 모습도 잘생겨서 그런가? 아니다. 이건 그런 잘생김에서 오는 설렘이 아니라... 일종의 희열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 때문에, 나를 사랑하는 마음 때문에 이렇게 안달 내고 흔들리고 휘청거리고 눈물까지 쏟아내는 상황이 지독하게 짜릿했다.


뭐야 나 미쳤나 봐. 진짜 변태인가 봐. 평소에 대리님 넥타이 한 거 볼 때마다 눈 돌아갈 때부터 느꼈지만 진짜 나 어떡해. 자신의 감정에 당황스러움이 급하게 끼어들었지만 그래도 눈동자가 성준의 눈물을 쫓는 건 멈출 수가 없었다. 가까스로 정신 차린 소윤이 조심스레 손을 들어 살며시 성준의 눈물을 닦아내자 성준이 작게 숨을 내쉬며 눈을 내리감았다. 여지없이 넘쳐 떨어지는 눈물에 소윤이 입술을 꾹 깨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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