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나 때문에 우는 게 좋아 - 7
금요일 퇴근 시간 직전의 사무실은 비장할 만큼 조용했다. 아무래도 분사에서 주요 행사가 있는 날인 데다 본사의 직원들도 꽤 많은 인원이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내려간 상황이라 남아있는 직원들은 빠진 인원의 업무 공백을 적당히 메꾸면서 다가오는 주말만 열심히 기다리고 있었다. 성준에게서는 오전에 행사장에 도착했다는 메시지 이후로 연락이 없었다. 평소에도 업무시간에는 용건이 없는 이상 굳이 연락을 하지 않던 두 사람이었기 때문에 소윤은 크게 개의치 않았다. 그저 평소였다면 두 사람이 함께 주말을 준비했을 금요일 저녁에 성준을 볼 수 없다는 것이 아쉬워서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할 뿐이었다.
6시가 지나고 썰물처럼 직원들이 빠져나갔다. 소윤은 오랜만에 잡은 친구와의 저녁 약속 시간 때문에 잠시 사무실에 남아있었다. 야근시킬 상사가 있는 것도 아니고, 느긋하면서도 지루한 기분으로 탕비실에서 가져온 과자를 우물거리며 자리에 편하게 늘어져 있었다. 그때 소윤의 사수 격인 윤 주임에게서 전화가 왔다. 퇴근 시간이 지나서 연락할 사람이 아니라 의아한 마음으로 전화를 받으니 윤 주임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 주임님, 퇴근했어요? 혹시 아직 사무실이에요? 와, 다행이다. 내 PC 켜서 바탕화면에 있는 ‘제출자료’ 폴더 좀 압축해서 지금 메일로 보내줄 수 있을까요? 어제 검토 실컷 해놓고 막상 메일로는 지난 버전만 전달했지 뭐야, 진짜 나 미쳤나 봐. 윤 주임의 목소리에 난감함이 가득 담겨 있었다. 네네, 저 사무실이에요. 지금 바로 보내드릴게요. 소윤이 대답하자 PC 켜지고 나면 보안 패스워드를 불러줄 테니 말해달라는 윤 주임의 말이 수화기를 타고 넘어왔다. 윤 주임의 컴퓨터가 켜지는 동안 소윤은 가볍게 안부를 물었다. 행사는 다 끝난 거예요?
[네, 다 마무리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회식 가려는데 여기 담당자가 자료 취합하다가 이상한 것 같다고 말해줘서 나 진짜 깜짝 놀랐잖아요. 이거 바로 위에 보고 되는 건데.]
“큰일 날 뻔했네요. 그분이 확인해주셔서 다행이에요.”
[그러니까요. 아, 마침 또 사무실에 있었네. 너무 고마워요. 진짜 어떡하면 좋아.]
윤 주임은 크게 안도했는지 연신 고마워했고, 말투에는 거의 애교가 묻어날 정도였다. 물론 소윤에겐 그런 윤 주임의 상황보다 성준과 같은 행사에 참석 중이었다는 사실이 더 중요했다. 그럼 이제 진짜 다들 회식 가겠구나. 윤 주임의 말을 들으며 성준의 동선을 대강 파악한 소윤은 출장지에서 일어나는 상황에 관해 묻고 싶은 게 많아 입이 근질거렸다.
혹시 박성준 대리님 보셨나요? 오늘 행사 참여한다고 또 단정하게 갖춰 입었을 텐데 역시 엄청 멋있었나요? 다른 직원들이 관심을 보이지는 않던가요? 유독 친해 보이는 직원은 없었나요? 행사장에서는 누구와 함께 있었나요? 홍보팀 김 대리님이랑 둘이 다니던가요? 물을 수도 없는 질문들이 넘쳐났지만 마침 윤 주임의 컴퓨터가 켜진 바람에 소윤은 궁금증을 삼켜내며 PC 로그인에 집중했다.
“주임님, 보냈어요. 용량이 좀 돼서 조금 있다가 확인해보시면 될 것 같아요.”
[네네, 소윤 주임 덕분에 살았어요. 진짜 고마워요. 이건 그냥 넘어갈 수가 없네, 정말. 제가 다음 주에 점심 한번 살게요.]
“아이, 이런 걸로 뭘요. 잘 전달하시고 회식 잘 다녀오세요. 이번에 예산 꽤 크게 잡은 것 같던데 비싼 거 많이 드시고요!”
[맞아요. 소고기 먹으러 간다더라고요. 제가 소윤 주임 몫까지 다 먹고 올게요. 아, 그리고 오늘 행사 때 떡 돌렸는데 다음 주에 본사에도 돌린대요. 그때 제꺼 소윤 주임 줄게요. 저는 여기서 먹었으니까. 그럼 정 주임도 저녁 맛있게 먹어요. 월요일에 봐요!]
꼬일 뻔한 일이 뜻밖에 무난히 해결되어서 그런지 윤 주임의 기분이 특히 좋아 보였다. 마지막에는 거의 ‘맛있게 먹어요옹, 월요일에 봐용!’으로 들릴 정도였다. 하여간 극적인 사람이라니까. 가끔은 오버스러울 정도로 활기찬 윤 주임은 특히나 소윤을 아꼈는데, 본인의 입사 1년 만에 들어온 후임이라서 각별히 챙기는 듯했다. 게다가 얼마 전 여자 친구와의 기념일 때 소윤이 추천한 선물로 이벤트를 성공적으로 마치기도 했고, 오늘 이렇게 한 번 더 소윤에게 신세를 지게 되었으니 당분간 내리사랑은 계속 이어질 게 뻔했다.
윤 주임과 전화를 끊고 다시 의자에 늘어져 무료하게 친구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는데 성준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이제 회식자리로 이동해요.’ 보내는 사람을 닮아 담백한 메시지에서는 성준의 차분한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아, 대리님 보고 싶다. 괜히 구구절절 답장을 썼다가는 자기도 모르게 투정을 부리게 될까 봐 응원하는 이모티콘 하나만 보냈다. 성준에게는 술을 조금만 마시라고 했지만, 아무래도 자신은 오늘 술을 좀 마셔야 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