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가 필요해

네가 나 때문에 우는 게 좋아 - 9

by 립나




한참을 뒤척이느라 잠을 설친 소윤은 뻑뻑한 눈을 꾹꾹 눌렀다. 식탁에 앉은 소윤 앞에는 모락모락 김이 올라오는 국화차 한잔이 놓여있었는데, 입을 대지 않아 그저 국화향만 퍼지고 있었다. 소윤은 피곤한 얼굴로 하루의 계획을 정리했다. 대리님은 점심쯤 도착할 테니까 그전에 일단 씻은 다음, 연락해놓고 미리 집에 가 있던가 해야겠다. 성준이 보고 싶으면서도 어제 일로 아직 화가 나서 마음이 복잡했다. 심란함이 가득 담긴 한숨을 뱉으면서 성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싸늘한 얼굴과는 달리 메시지 창에 써지는 말들은 다정하기 그지없었다.








간단히 씻고 나와서 미지근해진 국화차를 마셨다. 다 마신 컵을 설거지하고 있는데 물소리에 현관 벨 소리가 섞였다. 이 아침에 누구지? 의아함을 안고 인터폰을 확인해보니 성준이 우뚝 서 있었다.



“대리님?”



후다닥 현관문을 열자 성준이 답지 않게 성큼 걸음을 디뎠다.



“왜 이렇게 일찍 왔어요?”



소윤을 지나쳐 거실까지 불쑥 들어온 성준의 등에 대고 물었더니 돌아보는 얼굴이 버석했다. 마주쳐오는 눈빛에 왠지 원망스러움이 담겨있는 것 같아서 소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소윤 씨.”


“네.”


“정말 아무렇지도 않아요?”


“네? 뭐가요?”



성준의 행동이나 말투가 단호해서 꼭 화가 난 것처럼 보였지만 막상 마주치는 눈에는 울음기가 가득했다. 소윤은 그 눈과 시선을 맞춘 자신의 눈빛이 불안하게 떨리는 걸 느꼈다. 어젯밤 성준과 전화를 끊고 훌쩍였던 울음이 다시 한번 목을 타고 차오르는 것 같아서, 급하게 다가오는 불안과 함께 꿀꺽 삼켰다.



“저 연락 안 되고 그런 거 아무렇지 않냐구요.”



소윤이 더 이상 말없이 눈만 깜박이고 있으니 성준이 한 걸음 다가서며 말했다. 그리 빠르지 않은 말투였는데 이상하게도 꼭 조급한 것처럼 들렸다.



“저는 자꾸 걱정되고 불안해요. 소윤 씨에 대한 건 아무렇지 않은 게 안 돼요.”



성준이 더 가까이 눈을 맞춰오며 소윤의 양팔을 붙들었다. 살며시 팔뚝을 감싸는 그 손길이 너무 조심스러워서 오히려 소윤이 주먹을 꽉 쥐었다.



“처음엔 소윤 씨의 다정함을 받는 사람들 중 한 명인 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어요, 진짜 그랬는데.”



말을 잇는 성준의 어깨가 낮게 처져 있었다. 눈을 맞추기 버거운지 소윤의 어깨쯤으로 시선을 내린 성준의 얼굴이 처연했다.



“점점 아쉽고 자꾸 욕심나요. 제가 소윤 씨한테 가장 신경 쓰이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



성준이 시선을 들어 소윤을 바라봤다. 눈물이 조금씩 차오르는 눈동자가 간절했다.



“소윤 씨가 절 걱정했으면 좋겠어요.”



소윤은 숨을 깊게 내쉬었다. 자신 때문에 감정적으로 동요하는 성준의 모습이 마음속에 묻어놓았던 희열의 흔적을 파헤쳤다. 자신의 애정에 갈급한 성준을 마냥 귀엽게 보기엔 그간 자신이 앓아왔던 맘고생이 가볍지 않았다. 억울한 마음이 들면서도, 차곡차곡 슬픔이 쌓이는 성준의 얼굴이 안쓰러워서 속이 복잡했다.


내가 그렇게 확신을 주지 못했나? 돌이켜보면 시끄러운 마음과는 다르게 성준을 대하는 자신의 태도는 늘 태연했었다. 왜냐면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 평소에 누구에게나 무던한 성준이 자신에게만은 유독 따뜻하고 다정했던 것에 비해, 막상 모두에게 친절한 자신은 성준에게도 여전히 그만큼 친절했었다. 애써 숨겼던 마음을 보여달라며 눈물을 머금는 성준을 보자 억지로 누르고 감춰놓은 애정의 증거는 금방이라도 자물쇠를 부수고 나올 것처럼 쾅쾅거렸다. 정말 솔직히 보여줘도 괜찮은 걸까? 소윤은 불안했다. 안 그래도 어리게 느껴질까 봐 신경 쓰이는데 유치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싫고, 사사건건 초조해하는 모습으로 질리게 만들고 싶지도 않았다.








소윤이 말없이 생각에 잠기자 상처 받은 얼굴을 한 성준이 천천히 소윤의 팔을 놓았다. 성준의 팔이 스르르 떨어지는 순간, 소윤이 황급히 성준의 손을 잡았다.



“대리님.”



소윤은 지난번 자신의 손에 얼굴을 묻고 눈물 흘리던 성준을 떠올렸다. 고작 반나절 연락이 되지 않은 자신 때문에 기꺼이 무릎을 꿇고 손을 붙잡아오던 성준의 투명했던 눈이 겹쳐졌다. 자신이 성준 앞에서 거리낌 없이 눈물을 보였던 적이 있었나 생각해봐도, 어쭙잖은 수작을 부린답시고 틀었던 다큐멘터리를 보면서나 울었지 성준 때문에 휘청이는 모습을 보인 적은 없었다. 그때 일로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 때문에 안달 내고 흔들리는 게 얼마나 큰 충족감을 주는지 알게 되었으면서도 자신은 성준에게 그런 기회를 준 적이 없었다. 다소 격한 분위기에 고조된 감정이 끓어 넘쳤다. 마음의 자물쇠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대리님은 본인이… 얼마나 사람 미치게 만드는지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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